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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베개를 베고 자고 있겠지

시인 유계영 호두알처럼 단단한 호두와 함께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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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다. 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고, 동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아파할 수밖에 없는지를. 표정만 보아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이고, 몸짓만 보아도 원하는 것이 들리기 때문이다. 표정과 몸짓이 말이 되기 때문이다. (2018.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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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작고 약했다. 죽을까봐 무서웠다.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언제라도 깊은 슬픔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인데, 어쩌면 그 슬픔은 내가 이 작은 개를 가장 사랑하고 있을 때 찾아올 것 같았다. 내게 사랑은 그런 거였다. 나의 연약함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한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 한동안은 쉽게 만지지도 못했다. 눈곱을 떼어주려다 눈을 다치게 할 것 같았고, 목욕을 시키다가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가서 죽을 것 같았다. 호두의 어린 시절 사진이 죄 꼬질꼬질한 것은 이런 이유이다. 모르겠다. 그냥 자꾸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병아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유 없이 죽을 것 같았다. 이유가 있지만 내가 눈치를 못 채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잠든 사이에 강아지가 죽을까 봐 며칠 동안 거의 잠을 못 잤다. 잠든 강아지가 깽깽거리는 소리라도 내면 눈이 벌게져서 검색을 하고 또 했다(잠꼬대였다). 이름은 오직 그런 바람으로 지었다. 꼭 단단해져라, 호두알처럼. 호두는 이름처럼 단단하고 꿋꿋한 강아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 느꼈던 조급한 비애가 우습다고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사이는 유쾌하고 충만하다. 호두와 함께 사는 일 어디에도 슬프고 두려운 구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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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알게 된 많은 것 중 내 삶을 가장 크게 흔든 것은, 이 땅의 동물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연히 지구에 인간만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밑에 고양이들이 엎드려있고, 누더기 개가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고, 동물원엔 각종 동물이, 그저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정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호두와 생활을 함께하며 알게 되었다. 동물은 감정이 참 다양하다. 슬픔을 알고 허전함을 느끼고 신이 나고 즐겁고 장난을 꾸미고 불안하고 분노하고 위로한다. 이보다 많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동물의 정서적 풍요로움을 알게 된 이후로 동물은 그저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자동차 밑의 고양이는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숨긴 것이며 제 삶터를 잃은 것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랬다. 더러운 몰골의 누더기 개도 그냥 거기 있는 게 아니었다. 호두가 알려준 이 엄청난 사실 때문에 내 인생에 슬픈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태 공감 능력이 바닥이던 바보가 하나 줄어든 것도 틀림없다. 그러면 이제 호두가 얼마나 놀라운 강아지인지 설명할 차례인가. 아니, 동물이 얼마나 섬세한 정서를 가진 존재인지 말할 차례인가. 둘은 결국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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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짜 강아지는 이상한 식사법을 가지고 있다. 하다못해 밑반찬을 바꾸는 것으로라도 섭식 생활의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과는 달리, 개들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늘 같은 식감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료만 먹는다. 그래서 호두는 나름의 식문화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먼저 사료를 한 알 물어다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방석 위에 올려놓는다. 그 후 밥그릇으로 가 나머지를 먹는다. 방석 위에 올려둔 마지막 한 알은 모든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최대한 오래 냄새를 맡고 들여다본 후 천천히 먹는다. 마지막 한 알의 사료가 디저트인 것일까. 사료 한 그릇 안에서도 코스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강아지가 아닐 수 없다. 가끔은 사료를 한입 물어다가 텔레비전 앞에 뱉어놓을 때도 있다. 접시에 코 박는 허겁지겁 식사는 하지 않겠다는 거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사료를 조금씩 깨물어 먹는다. 화면 속의 인간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관심 없지만,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네모난 화면을 본다. 좀 짓궂은 취미도 있다. 마감에 정신이 팔려 방문을 닫고 있으면, 호두가 방문을 긁고 난리다. 열어달라는 거다. 쉬었다가 할 겸 좀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 닫으면 다시 반복. 한창 ‘벨튀(벨 누르고 튀기)’가 재미있을 나이라고는 해도 좀 너무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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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의 분량상 전부 다 말할 수 없지만 동물과 함께 사는 일상의 다채로움과 그 경이는, 동물을 그냥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다. 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고, 동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아파할 수밖에 없는지를. 표정만 보아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이고, 몸짓만 보아도 원하는 것이 들리기 때문이다. 표정과 몸짓이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한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일 테다. 두 발을 붙이고 사는 것과 네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의 차이만큼의 크고 작은 차이를 제외하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작은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같다. 내가 사람인 것을 빼면 호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작고 무른 강아지가 차돌처럼 단단해지기를 바라면서 호두라고 불렀다. 그런데 단단해진 것은 오히려 내 쪽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장 연약한 곳으로 흐르는 마음이 나를 씩씩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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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계영(시인)

1985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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