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 “저는 ‘낭만적 인간’이에요”
첫 에세이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 펴내
한 번 생긴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정말 힘들지만, 그걸 만드는 것도 굉장히 힘들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이미지를 얻은 셈이죠. 그게 원하는 것이었든 원하지 않는 것이었든. 그러니까 굳이 그걸 부수거나 변명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계속 해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2018. 01. 16)
조PD가 첫 책을 썼다. 에세이의 제목은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 그는 “이 책은 나의 삶과 음악, 내가 경험한 사람과 사건이라는 종유석의 종단면”이라고 적었다. 단순히 ‘시간의 조각들’을 나열한 게 아니었다. ‘생각의 조각들’을 담아둔 것에 가까웠다. 가수 조PD를 포함하는 인간 조중훈이라는 존재, 그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매우 다양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신이 생각하고 있던 조PD의 모습과는 사뭇(혹은 몹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요?
첫 책을 쓰신 소감이 궁금해요.
저는 책은 못 쓰겠더라고요(웃음). 너무 어려워요. 글발이 조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죠.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자다가 가위에 눌릴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가사를 쓸 때와는 또 다르던가요?
완전 다르더라고요. 초등학생이랑 대학생의 차이인 것 같아요.
가사를 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요. 함축적으로 전달해야 하잖아요.
함축적으로 쓰는 노하우는 조금 필요해요. 노래랑 같이 들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외에, 필력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차이가 크더라고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웃음).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닌가요(웃음). 책에 담긴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속도감 있게 읽히고요.
저도 놀란 부분이었어요. 친구들한테 책을 선물했는데 두 시간 정도면 다 읽더라고요.
인터뷰어가 돼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셨어요.
목차를 정하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요. 그때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인터뷰 포맷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책을 빌미로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섭외할 수 있으니까 좋더라고요(웃음).
첫 번째 인터뷰이가 ‘험온’의 최병익 대표예요. 허밍만으로 작곡을 해주는 앱을 개발한 분이시죠. AI가 음악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음악 산업뿐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 경제 전반에 있어서 중개 역할을 없애는 거니까 당연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제작부터 소비까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 없어지는 것과 새로 생길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그런 부분에서 관심이 시작된 거죠.
혁신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세요?
전문가들과 접촉을 해볼수록 확고해지는 진실이 있다면, 현재는 AI가 걸음마 단계라는 거죠. 지금 이걸 가지고 뛰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 건 거짓말인데, 그렇다고 그런 시기가 안 오지는 않을 거라는 거예요. AI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늦은 시점은 아니고요. 또 하나는 윤리죠. 윤리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서 인류에게 굉장히 큰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됐어요.
처음으로 인터뷰어가 되어본 느낌은 어땠나요?
음... 잘 맞는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으시니까, 즐기면서 하셨을 것 같아요.
성격상 뭘 하나 들으면 가지 치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까 잘 맞더라고요.
윤일상 작곡가와는 굉장히 친밀한 사이잖아요. 인터뷰 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나요?
되게 어색했죠(웃음).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어요. “대중은 아티스트와 상업 음악가를 구분하잖아”,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같은. 스스로에게도 화두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희는 그 질문들에 대한 정의를 굉장히 일찍 내렸어요. 특히 일상이 형 같은 경우는, 비판하려고 하면 그럴 거리가 많아요. 상업 작곡가라고 할 수도 있고 맞춤 작곡가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게 어떤 대상에 딱 들어맞는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인데, 항상 사람들은 반대로 비꼬아서 비판하잖아요. 실제로 일상이 형은 초기에 많은 압박을 받기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정도 이슈를 가지고 저희가 심각하게 소주를 기울인다거나 하지는 않아요(웃음). 이제 그럴 정도의 상태는 많이 지났죠. 어떤 음악가로 남고 싶으냐는 것도 조금 넘어선 것 같아요.
초연해지신 거예요?
네(웃음). 다 때가 있더라고요.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거기에 연연하던 때도 있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버린 거예요. 그리고 일상이 형을 보면 매일 바빠요. 항상 일에 치여 있죠. 늘 그렇게 사니까 이상할 것도 없고 감상적일 것도 없어요.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아요
에세이를 통해서 대중이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거나 편견을 부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생각은 별로 없어 보여요.
그렇죠. 이 책을 쓴 데는 다른 목적성이 없어요. 진짜 제 이야기이고, 그걸 친한 사람들한테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평소에 제 이야기를 안 하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책을 보시고서 ‘아, 우리 아들이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셨대요(웃음).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담아낸 거죠.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이라는 제목이 딱딱하고 무겁지 않나요? 판매에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어요(웃음).
사실 저는 앨범을 낼 때도 홍보를 많이 안 해요. 그런 버릇이 들었어요. 데뷔할 때부터 PC 통신에서 반응을 얻으면서 홍보가 됐잖아요. 그런 배경이 있다 보니까 앨범을 내면 어느 정도 팔리는 아티스트로 안착이 됐고, 홍보에 그렇게 열을 올려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게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좋게 만들자, 그러면 어떤 계기가 생겨서 빛을 보게 될 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였고요. 책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2년 넘게 음반 활동을 안 했는데,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조금씩 더 알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공들여 만든 앨범도 홍보가 부족해서 묻힐 수 있잖아요. 초조하지 않으세요?
초조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너무 느긋하신 거 아닌가요(웃음).
음... 될 때는 또 되더라고요(웃음).
‘조PD는 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 이미지가 잘 안 바뀌어요.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다는 생각 안 드세요?
중간에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한 번 생긴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정말 힘들지만, 그걸 만드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이미지를 얻은 셈이죠. 마케팅으로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으면 광고를 얼마나 많이 해야 했겠어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타이밍이나 여러 가지 여건이 잘 맞아서,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거잖아요. 그게 원하는 것이었든 원하지 않는 것이었든. 그러니까 굳이 그걸 부수거나 변명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계속 해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괴리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나요?
싸이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 이미지가 참 편한 것 같다고요. 사실 저희는 X세대 래퍼, 세기말 래퍼라는 이미지 때문에 많은 걸 용서받았죠(웃음). 면죄부가 주어졌죠. 그래서 편하게 다녔어요. 잘하면 칭찬 받고, 못하면 생긴 대로 논다는 이야기 듣고(웃음). 그래서 나쁘지는 않았어요.
직접 뵈니까 굉장히 부드러운 이미지인데요? 이렇게 잘 웃으시고 상냥하신 분인지 몰랐어요.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이 너무 다르신 거 아니에요(웃음)?
이중적이라는 이야기는 초반부터 많이 들었어요. DJ DOC처럼 실생활에서도 악동으로 살아야 된다고도 하는데, 저는 DOC 형들이랑 친하지만 사고방식이 달라요. 하늘이 형이나 창렬이 형이 그래요. 너는 너무 이중적이야.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제 음악이 더 세다고 말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다짐을 해도 총각 시절과 똑같은 감성을 내기가 쉽지는 않다”고 쓰셨어요. 이것 때문에 고민하신 적도 있나요?
20대 초반의 열정으로 하는 에너지는 나중에 재생이 안 돼요. 그런 부분이 있는 건 맞아요. 물론 기승전결 정리가 세련되지 않고 톤도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네 마디 여덟 마디의 아이디어는 그때만 나올 수 있는 거거든요. 총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50대, 60대에게는 원숙미가 있다고 하지만 20~30년을 해왔는데 원숙미가 있는 건 당연한 거죠. 그건 자연스럽게 세월에 따라오는 거잖아요. 프로듀서는 20대의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잘 취합해서 자신이 가진 원숙미랑 버무리고, 그렇게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새로운 것과 소통해야 하고 자기를 갈고 닦아서 (기량을) 잘 유지시키는 일도 게을리 하면 안 되죠.
힙합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죠
직관을 믿으신다고요. 음악을 만들 때 대중이 좋아할지, 지금의 유행에 맞는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으세요?
트렌드를 해법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초기에는 그걸 너무 싫어했고, 지금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차트 중심으로 만드는 음악은 잘하지도 못하고, 제 길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제 음악을 하고 싶은데,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차적으로 차별화되는 음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는 거라면, 그건 맞는 것 같아요.
아이돌 제작을 하실 때는 어땠나요?
사실 아이돌 음악은, 아주 유명 브랜드가 있지 않으면 음원 차트 100위권에 안 들어가요. 그런데 회사를 유지하려면 어쨌든 성과를 내야 하잖아요. 팬 카페 가입률도 높여야 하고 실시간 검색에도 올라야 되고 여러 가지 팬을 늘리기 위한 활동들을 해야 하는데요. 제가 택했던 방법은 트렌드를 따를 게 아니라 아예 차별화하자는 거였어요. 그래야 방송을 한 번 나가도 실검 1위를 해요. 같은 지점에서 경쟁하면 엑소가 1위를 하지, 우리가 1위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런 것처럼 아이디어로 해야 돼요. 돈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되고요.
‘매직 모멘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일 텐데요. 자주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시즌에는 자주 와요(웃음).
성수기가 있군요(웃음).
네, 성수기가 있어요(웃음). 그때는 자주 와요.
20대 때는 작업실을 떠나지 않으셨다면서요? 그 순간을 놓칠까 봐. 요즘에는 어떻게 하세요?
요즘은 아예 안 해요. 지금은 제가 그럴 때가 아니에요. 20대에는 그걸 할 때라고 생각해서 한 거예요. 다시 안 올 시간이기 때문에. 서른 이후에도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시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고, 그 다음부터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경험도 쌓고, 사업도 해보고요. 그러니까 20대 때는 어설프게 어디 나갈 필요가 없었던 거죠. 나중에 실컷 나갈 테니까. 지금 그렇게 하면 손해가 커지죠. 만날 사람도 많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작업하고 있으면 안 되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매직 모멘트’가 찾아오면 메모를 하나요?
멜로디가 나올 때는 그냥 휴대폰에 녹음하면 되는데요. 가사는 그런 식으로 안 나와요. 고민을 해야 나오는 거거든요.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잘하면 한 곡 정도는 나와요. 어제도 그렇게 해서 두 곡을 썼어요.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다”고 쓰셨잖아요. 그래도 ‘그 경험은 안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게 있지 않나요?
어제 쓴 두 번째 곡이 그 내용이에요. 후회할 만한 경험을 여자로 비유해서 썼는데요. 간주까지는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쁘다’는 내용이 나오다가, 코러스에서는 ‘애당초 안 만났어야 됐다, 다시 태어나면 유유히 옆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가사가 나와요. 그런데 어떤 경험을 함으로써 보완을 거쳐서 더 좋은 성과를 이뤄낼 수도 있잖아요. 그걸 액땜이라고 하죠. 그 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자빠져버리면, 그건 나를 죽이는 경험이니까 안 하는 게 낫겠죠. 그게 아니라 더 잘 될 자신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든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죽이지 않을 정도의 경험은.
“힙합 정신이란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의 힙합 문화와 아티스트를 볼 때 아쉬운 점이 있나요?
그렇죠... 힙합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죠.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너무 인스턴트화 됐죠. 정통을 추구하고 무대 하나를 만들어도 영화를 연출하는 것처럼 하고, 그런 게 이제 없어졌죠. 사실 그럴 만한 투자를 안 하죠. 어떻게 보면 이제는 다 클립으로 가는 음악이 돼버린 거예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호흡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라이브를 하더라고요. 그냥 팬이 한 명 무대에 올라와서 하는 거나 똑같았어요. 작년에 제일 히트했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는데도요. 물론 켄드릭 라마나 드레이크처럼 현상 유지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올해의 신인이 끊긴지가 너무 오래된 거죠. 그냥 소비되는 사람들, 한 곡만 히트시킨 원 히트 원더들만 있죠. 그런 걸 봤을 때는 장르가 퇴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장르가 넘겨받겠죠.
모두가 아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블락비와의 결별에 대해서도 쓰셨어요. “사건의 배후에는 멤버들을 선동하고 부추긴 이들이 있었다”는 표현도 있는데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을 것 같은데, 굳이 꺼내신 이유가 있나요?
이미 다 기사로 나왔던 이야기예요. 법정 공방이 있을 때요. 또 멤버들이 스스로 조작했다고 하면 블락비한테 더 안 좋은 거잖아요. 나쁜 어른들이 그렇게 했다고 밝히는 게 그 아이들한테 더 낫지 않나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쓴 거고요.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 이야기는 쓰지 맙시다’라고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직도 오해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당시 소속사에서 블락비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고요.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소문이 무성한 업계이기도 하고, 거기다 우리는 거의 언론재판을 한 거예요. 모든 기자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요. 그러니까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고 싶으면 어떤 언론사든 발췌해낼 수 있는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게 그렇게 헤드라인 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3~4년 전의 철 지난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어떤 계기로든,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앞에 있었던 족적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굳이 ‘한 번 더 들어봐 주세요, 그런 일 아니었어요’ 하고 확성기 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방송계와 음악 산업의 문제점이라고 할까요. 아쉽게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유 중 하나였나요?
힘든 건 극복할 수가 있고, 또 어지간히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한 번 잘되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인데, 그걸 다음으로 이어가면서 계속 지속하는 게 되게 힘들어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시장 논리가 바뀌어 버리면 일개 회사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기획사의 한계를 본 거죠. 만약에 제가 블락비와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 뒤에 만든 이블이랑 탑독이라는 팀이 다 잘 됐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느 정도 실력과 브랜드가 바탕이 된 상황에서 앨범을 출시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업계 4~5위 정도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면, 그래도 결국에는 딜레마에 봉착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4~5년 지속할 걸 10~20년으로 늘릴 뿐이겠죠. 그렇게 살았으면 오히려 더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전이 있는 거죠.
음원 수익이 분배되는 과정의 문제도 있잖아요. 책에 쓰신 내용을 예로 들면, 지난해 상반기에 ‘볼빨간사춘기’가 받은 음원 수익이 7000만원이라고 해요. 스트리밍 횟수가 2억 건이 넘는데 말이죠.
기사에서 발췌했던 수치인데요. 사실 가수 인세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죠.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몇몇 스타플레이들처럼 자기 비즈니스로 하지 않는 한, 순수한 창작자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이잖아요. 이런 관행이 굉장히 널리 퍼져 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저희가 앞서 AI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AI나 블록체인 같은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하면 중개자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유통사나 기획사 없이 창작자와 시장이 바로 만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시기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련된 플랫폼을 만들고 싶은가요?
블록체인을 플랫폼이라고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물론 정리 정도는 하겠죠. 창작자와 시장이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대한 지형은 만들어질 텐데, 거기 일조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시는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요. ‘아빠를 아는 사람들이 전부 아빠를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한 적이 있으시다면서요? 부모로서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한테 ‘우리는 다 친구’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기사에서 보셨다는 이야기도 그런 발상의 연장인 것 같아요. 다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했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때 약간 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첫째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조금 튀는 차를 타고 학원에 데리러 가면 일부러 선생님들하고 다른 길로 가요. 그리고 혼자 다시 돌아와서 차에 타는 거예요. 그런데 둘째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어도 옆에 앉아서 ‘우리 아빠 조PD예요’라고 말해요(웃음).
사람한테 착착 감기는 아이에요.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사람들이 아빠를 알 수는 있는데, 아빠를 아는 사람이 다 아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알고 있어’라고 말한 거예요.
아이가 이해하던가요?
당시에 저희에게는 당연한 분위기였어요. 아내는 이야기 잘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이들이랑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시네요. 보통 어른들은 ‘아이가 이걸 이해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잖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이해가 부족하지 않아요. 전혀 안 그래요. 아이들을 너무 애 취급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낭만적 인간
촛불 집회 무대에 오르셨었어요. 윤일상 작곡가와 음원도 발표하셨고요.
우연치 않게 한 일이었어요.
윤일상 작곡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죠?
네, 그 형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고요.
음원 발표를 제안한 건 윤일상 작곡가였나요?
제안을 주고받은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작업을 했던 거예요. ‘할래?’라고 안 하고 ‘하자!’라고 했던 거죠.
그 전까지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잖아요.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어요?
정치의 문제가 아니죠, 이건. 강남에 최순실 같은 아줌마들 많이 있잖아요. 안하무인에 갑질하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 보면서 뭘 믿고 저러나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많이 쌓여있기도 했고요. 최순실이 대통령이랑 관계가 있다는 걸 보니까 ‘돈으로 과시할 만하고 청와대까지 접수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겠구나’ 생각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저 아줌마가 나라를 좌지우지할 만한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나라 꼴이 말이 아니구나’ 싶었던 거죠.
‘우리 애들이 살아갈 세상인데’라는 생각도 하셨어요? 그게 촛불집회에 함께하는 이유로 작용했나요?
안하무인을 만나면 저는 싸우거나 협상을 했을 테지만, 아이들한테까지 그런 걸 물려주기는 싫은 거죠.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그런 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고 있으면, 이건 아니잖아요. 그런 걸 비판한 거죠.
콜라보했던 뮤지션들에 대한 이야기도 쓰셨어요. 후배 중에서는 라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는데, 최근에 지켜보고 있는 뮤지션이 있나요? 러브콜을 보내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음... 요즘 ‘예지’라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디제잉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외의 친구들은 만나기 싫은 게 아니고, 요즘은 기회들이 너무 많잖아요. 라디만 하더라도 악기가 필요해서 저를 찾아왔던 거였거든요. 악기를 지원 받고 싶다고요. 그런데 요즘은 소프트웨어가 다 있고 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창구도 많기 때문에, 그런 수준의 도움은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예지는 일단 뉴욕에 있고, 한국과의 접점을 찾을 때는 제가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디는 하루의 대부분을 작업하는 데 쓴다면서요?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셨던 것 같아요. 후배들을 볼 때, 재능보다도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네, 노력하는 것만 봤어요. 제가 음악을 열심히 할 때는 컴퓨터 바로 앞에 침대를 놓고 지냈어요. 작업하다가 지치면 바로 자고, 또 일어나서 작업하고, 그런 거였죠. 그런데 라디가 딱 그랬어요. 집에 가봤더니 구도가 똑같더라고요. 그런 거야말로 밥 먹고 음악만 한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거죠. 그게 좋았죠. 그런데 의외로 그런 경우가 드물어요. 많지 않아요.
데뷔 초기의 앨범을 들을 때도 있나요?
아뇨, 못 들어요. 못 듣겠어요.
왜요?
너무 이상해서(웃음). 가끔 음악 하는 동생들이 오면서 형 노래 들었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해요(웃음).
음악적으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음악적인 건 많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다행인 거죠. 말씀드렸던 것처럼 젊을 때의 감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세월에 따라서 더 좋아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톤이나 딜리버리, 저만의 호흡 같은, 그런 건 좋아졌죠.
‘조PD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뭘까요? 책에서 꼽는다면요?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에요. 낭만적 인간.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풍류를 좋아한다고 할까요.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조PD 저 | 스리체어스(threechairs)
청각 기관은 음표 단위로 분절된 소리 자극을 순서대로 감지하지만 앞선 음과의 조화, 지속이 곡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한다. 지속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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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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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속하는 동시에 변화한다.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던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갱신하는 존재다.”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은 가수 조PD(본명 조중훈)의 첫 에세이집이다. 유년 시절과 데뷔 에피소드, 사업 이야기 같은 자전적 내용과 함께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담았다. 창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