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는 책
『히끄네 집』, 『가만한 당신』, 『그레이스』
눈길이 머무는 책, 손길을 잡아끄는 책,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죠. ‘책읽아웃이 소개하는 이주의 책’ 코너입니다. (2017.11. 23)
『히끄네 집』
이신아 저 | 야옹서가
이미 이 책을 알고 계시거나, 출간을 기다리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책의 주인공인 고양이 ‘히끄’가 인스타그램 10만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이기 때문인데요. 히끄를 모르는 분들도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빵실빵실 귀여운 고양이가 단번에 시선을 강탈하기 때문이죠. 히끄는 서귀포 시골마을의 길고양이었는데요. 저자인 이신아 씨를 집사로 간택하면서 묘생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히끄와 처음 만난 저자는, 희끄무레한 털을 가진 이 고양이에게 ‘히끄히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밥을 챙겨주면서 친해졌지만, 같이 살 계획은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히끄가 사라진지 20일 만에 다친 몸으로 나타났고, 고민 끝에 입양을 결정하게 된 거죠. 결국 ‘아부지’를 자처하면서 히끄와 동거하게 됐는데 이 작은 존재와의 만남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합니다. 도망치듯 찾아온 제주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고, 길고양이와 유기견 등 다른 생명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게 된 건데요. 『히끄네 집』을 읽다 보면 특유의 넉살과 애교, 개그까지 장착한 히끄의 모습에 미소가 번집니다. 아부지 이신아 씨의 센스 만점 태그 드립에 빵 터지기도 하는데요. 그 사이로 슬며시, 따뜻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팍팍한 세상을 버텨내던 두 존재가 만나 함께 사는 삶을 꿈꾸고, 서로를 향해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가만한 당신』
최윤필 저 | 마음산책
이 책에는 서른다섯 명의 부고가 실려 있는데요. 인권, 자유, 차별 철폐 등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이 주인공입니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콩고의 마마’로 불렸던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인데요. 그녀는 전쟁 중에 강간당한 여성과 고아,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녀 자신도 강간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보면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땅 위에서 홀로 그 가치를 지켜냈죠. 『가만한 당신』에 담긴 것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빈 ‘존 마이클 도어’, 세계적인 군비경쟁 실태를 폭로한 ‘루스 레거 시버드’, 여성 할례 금지 운동에 앞장선 ‘에푸아 도케누’ 등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생을 거의 완전 연소한 이들입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대신 우리보다 앞서 싸워준 이들이죠. 이 책을 쓴 최윤필 <한국일보> 선임기자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일보>에 동명의 부고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특히 기억하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를 실었다고 하고요. 그들의 삶을 거듭해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35명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삶이 그렇듯, 지금의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 또한 뜨거운 책입니다.
『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저/이은선 역 | 민음사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그레이스』입니다. 2000년에 부커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인데요. 이 작품은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실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요. 1843년, 캐나다의 시골 마을에서 하인과 하녀가 공모해 집주인과 그의 정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그레이스는 매력적인 용모의 열여섯 살 소녀였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범인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죠. 재판 결과 그녀는 종신형으로 감형됐고, 30년 동안 교도소와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사면으로 풀려났는데요. 석방 이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소설은 그레이스가 수감된 후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사이먼 조던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그레이스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그녀의 삶과 행적이 드러나죠. 애트우드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이잖아요. 부커상 수상작인 『눈먼 암살자』를 비롯해서 『시녀 이야기』, 『도둑 신부』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질곡을 다뤄왔는데요. 『그레이스』에서도 여성을 향해 가해지는 남성들의 폭력적인 시선을 읽어냅니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그녀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준 이유도 거기에 있는데요. 남성들의 눈을 거치지 않은 진짜 진실은 무엇이었을지, 소설 『그레이스』 안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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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