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홍승찬의 클래식 대가를 만나다
이별의 노래
가곡에 담긴 마음
그 무엇도 영영 붙들 수 없고 그 누구도 한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나는 있고 너만 가는 게 아니라 너도 가고 나도 간다. (2017.10.24)
언스플래쉬
이별의 노래
박목월 시, 김성태 곡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에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 노래는 시인 박목월이 친구였던 작곡가 김성태에게 주어서 곡을 붙인 가곡이다. 목월이 한때 너무나도 사랑했으나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헤어졌으나 결코 잊을 수 없었던 한 여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박목월이 피난 시절 대구에서 알게 된 자매가 있었다. 자매가 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목월을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휴전이 되자 목월은 가족을 두고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서울의 대학들이 다시 문을 열면서 자매도 함께 상경했다. 그러는 사이 언니는 서울에서 결혼을 했고 이번에는 동생이 혼자 목월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관계가 깊어졌고,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목월은 이미 두 사람 사이를 알고 있던 지인에게 그녀가 자신을 단념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목월은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그리고 네 달이 지나 겨울에 접어든 어느 날, 목월의 부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목월을 찾아온 부인은 두 사람 앞에 보자기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보자기 안에는 두 사람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도록 누빈 한복 두 벌이 들어 있었고, 봉투 속에는 돈이 들어 있었다.
부인이 다녀간 다음, 이번에는 부산에서 딸의 소식을 듣고 놀란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와 딸을 나무라고 타일렀다. 사흘을 버티던 그녀는 끌려가다시피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목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찌감치 두 사람을 뒤따랐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 자리에는 목월과 서로 알고 지내던 양중해 시인도 함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 사람의 이별을 지켜보았던 그는 그때의 심정을 시로 써서 같은 학교 음악 교사인 변훈에게 주어 곡을 붙였고,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바로 「떠나가는 배」이다.
떠나가는 배
양중해 시, 변훈 곡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 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내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덧 겨울이다. 그 무엇도 영영 붙들 수 없고 그 누구도 한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나는 있고 너만 가는 게 아니라 너도 가고 나도 간다. 목월이 읊었듯이 우리는 너나없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