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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세상이 얼마나 여성을 지워왔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2017 예스24 여름문학학교’ 마지막 강의 조남주 소설가, 노회찬 의원 ‘우리네 삶을 그린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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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직업은 정말 다양하고, 사람마다 재능도 관심사도 다른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성별의 절반이 자발적으로 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2017.09.11)

지난 8월 29일 저녁,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예스24 문학학교’의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와 ‘82년생 김지영 홍보대사’로 불리는 노회찬 의원이 만나 ‘우리네 삶을 그린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으로 예스24 독자가 뽑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선정되고 ‘2017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여성차별의 메커니즘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회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만 부 이상 판매된 『82년생 김지영』의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가 사회를 맡아 책에 담긴 여성차별 이야기와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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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

 

박혜진: 많은 독자가 두 분의 만남을 기대하셨습니다. 조남주 작가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나요?

 

조남주: 오늘 노회찬 의원님을 처음 뵀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여러모로 노회찬 의원님께 감사한 게 있어서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웃음) 오늘 마침 기회가 되어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고요. 저에게는 오늘은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자리가 될 거 같습니다.

 

노회찬: 소설을 올해 1월에 읽었습니다. 감동도 컸지만 내용에 충격을 받아서 SNS에 표지 사진을 올리고 짧게 소감을 올렸습니다. ‘올해 3권의 소설책을 읽는다면 그중에 한 권은 반드시 이 책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나라가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라고 썼어요. 그런데 이 책 읽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져서 (웃음) 저는 그게 제일 기쁩니다.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드리겠습니다.

 

박혜진: 많은 분이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하시고 기사에도 자주 언급되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특히 노회찬 의원님이 5월 19일 청와대 오찬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문재인 대통령께 선물하신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왜 『82년생 김지영』을 선물을 하셨는지, 그때 대통령님의 반응은 어땠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노회찬: 당일 아침에 김정숙 여사님께서 맛있는 점심을 준비한다고 들어서 빈손으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사회문제를 바꾸는 구체적인 실천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저보다 많은 권력과 능력을 갖춘 분께 선물하려고 고민 없이 이 책을 꺼내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세요’라고 써서 오찬에 가져갔습니다. 김정숙 여사님이 ‘우리 부부는 선물 받은 책은 꼭 읽습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대통령께서도 읽은 책이 되었네요.

 

박혜진: 『82년생 김지영』은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상을 시기별로 보여줍니다. 특별한 캐릭터나 사건이 없지만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특별하지 않았던 것이 특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구성이 어떤 고민에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조남주: 소설은 보통 독특한 인물이 나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 안겨주는 이야기가 많죠.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에서는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일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사람의 삶을 평균으로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연령대, 혹은 비슷한 시기를 산 여성이라면 ‘어, 나도 겪어봤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제가 2015년에 막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한창 여성혐오적인 콘텐츠가 많이 나왔어요. 저에게도 미디어, 영화나 문학작품, 인터넷 등에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굉장히 소비 지향적이고 감정적으로 비틀리고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21세기 초반을 살았던 여성의 모습으로 기록되진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짜 대한민국 여성은 이런 삶을 살았고, 이런 고민을 했고, 이런 상황에 부딪혔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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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의 질곡을 경험하는 ‘82년생’과 가장 평범한 이름 ‘김지영’


박혜진: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82년생 김지영』. 이 책을 보면 어떻게 붙여진 제목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데요. ‘82년생’과 고유명사인 ‘김지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조남주: 주인공은 우리 여성사와 삶의 부분 부분이 맞물리는 세대의 여성으로 정했어요. 먼저 1980년대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초음파로 아이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인구가 너무 많아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낙태 수술을 눈감아주었어요. 그래서 1980년대 내내 여아가 계속 낙태되면서 성비 그래프가 쭉쭉 올라가요.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했던 시기예요.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아이들은 고등학생 때 IMF가 터져요. 안 좋은 경제 상황이 본인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리고 서른 즈음에 만약 엄마가 된다면, 2012년부터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돼요. 그때부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 역할을 안 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질곡의 세월을 다 경험할 수 있는 세대예요.


지영이란 이름은 80년대 전후에 여아에게 가장 많이 붙인 이름이라고 해요. 세대별로 많이 붙여지는 한자가 있어요. 이걸 보면 그 시기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덕목을 알 수 있어요. 1940년대에는 순할 ‘순’, 1950년대에는 맑을 ‘숙’, 1960-70년대는 ‘진선미’였어요.


1980년대는 알 지와 지혜로울 ‘지’가 많이 쓰여요. 예전엔 착하고 맑고 참하고 아름다운 게 여성의 미덕이었다면 1980년대에는 지성을 추구하는 게 여성의 미덕이 된 거죠. 여아를 낙태하고 남아를 선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도 지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회생활을 할 평등한 기회를 준다고 말하는 상반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도적인 기반은 마련되어 내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 같진 않은데, 여전히 관습적으로 불합리한 상황을 겪는 간극의 세대인 1982년생으로 설정하였고, 이름은 김지영이라고 붙였습니다.

 

박혜진: 단권의 책에 이렇게 많은 여성 등장인물이 이름을 가진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영화로 치면 행인1, 행인2 같은 사람들도 모두 이름이 있고, 남성은 제법 등장하지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실제 여성의 삶과는 동떨어진 설정인데, 이런 설정은 어떤 의도에서 나온 건가요?

 

조남주: 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인 ‘벡델테스트’란 게 있어요. 세 가지 기준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두 번째는 ‘그 둘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세 번째는 ‘그 대화 내용이 남성에 관한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인가?’에요. 굉장히 낮은 기준의 테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작년 우리나라 흥행성적 10위 내의 영화 중에 이를 통과한 영화가 절반을 넘지 못해요. 심지어 얼마 전 개봉해 성범죄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논란이 된 영화는 남자 배우는 이름을 주고, 여자 배우는 ‘여자시체1’로 해두었다가 나중에 ‘여자’로 바꿨어요. 여전히 영화 안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이 늘지 않은 거죠.


세상이 여성의 이름을 얼마나 지웠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벡델테스트’를 남자를 기준으로 적용했을 때 충족하지 않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남성 인물의 이름이 모두 있었는데 수정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제외하고 모두 이름을 지웠어요. 그런데 제가 엄마하고 할머니는 엄마, 할머니라고 썼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부르는 게 편했나 봐요. 실제로 엄마나 할머니가 되면 여자는 자기 이름을 많이 잃어요. ‘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제일 많거든요. 두 분 모두 그 시대에 많이 붙였던 한자를 넣어서 어머니는 오미숙, 할머니는 고순분으로 지었어요. 그리고 작은 배역을 가진 여성이라도 되도록 이름을 붙이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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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

 

박혜진: 현실과 역전된 구성이 남성 중심의 서사를 풍자하고 여성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존과 다르게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인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는 하나같이 ‘이 책은 남성이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노회찬 의원님은 50대 남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노회찬: 처음 읽었을 때 ‘이 책이야말로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한다’고 당연히 느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생전 처음 듣는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성평등 문제를 계속 강하게 주장하고 대안과 정책을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는 좀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책에 몰입해서 당사자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니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자가 최고의 스펙인 대한민국의 많은 제도, 문화, 관습을 깨기 위해서라도,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야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혜진: 82년생 김지영』에는 여성에게 익숙한 에피소드도 있고,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김지영 씨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조남주: 한창 『82년생 김지영』을 쓰던 2015년 즈음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시고 본인이 겪은 불평등한 대우를 발언하고 쓰는 여성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SNS나 블로그, 취준생 카페, 고등학생 카페, 엄마 카페 같은 곳에 경험을 이야기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서 주로 그걸 읽었어요. 그 중에 ‘아, 나도 그랬지. 많이 들어봤지.’라고 느끼는 특별하지 않은 사례를 취합했어요. 그리고 어쨌든 김지영 씨가 일생을 서른 몇 살까지 살아가야 하니까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 나오면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어서, 만약에 있을지 모를 남성 독자분의 거부감을 덜기 위해서 ‘이건 명백하게 범죄다.’라는 에피소드는 되도록 제외했어요.


어떻게 보면 김지영씨는 운이 되게 좋아요. 주변에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도 정말 많은데, 김지영 씨는 심각한 성범죄나 폭력을 당한 적은 없어요. 그런 심각한 상황은 수정할 때 좀 덜어냈어요. 그래서 사실 굉장히 운이 좋은 평범한 여성의 삶이 된 것 같아요.

 

박혜진: 김지영 씨가 겪는 에피소드가 청소년기에 받는 관습적인 성차별, 대학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적 대상화, 그리고 결혼 후에 부딪히는 출산과 육아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데요. 이런 이슈 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노회찬: 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말 큰 문제입니다. 생산가능 인구가 올해부터 계속 줄어들고, 일을 할 수 있는 제한연령도 2살 늘어납니다. 그래서 애를 낳으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수십 조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애 안 낳게 생겼어요. 여성이 육아를 일방적으로 책임지거나 육아로 인해 직장을 잃고 경력이 단절되는 상황이에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하나의 생명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조남주: 이런 출산율로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해요. 매우 심각한 일이고 저는 대한민국을 매우 사랑하지만 이런 나라라면 없어진들 할 말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요. 저출산 문제는 사실 아이가 나오는 출산의 장면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할 수 없어요. 이미 아이를 낳을 여성이 젠더사이드(산아제한 정책과 남아 선호로 인한 1980년대 영아 살해와 유기, 여아 낙태 등을 말한다.)로 많이 줄어든 상황이에요. 출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를 좀 더 고민해야 실마리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를 비추다

 

박혜진: 지금까지 소설 속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되었어요.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처럼 그림자 노동을 하는 가정주부의 삶을 전면적으로 소설화해서 논쟁적으로 쓴 책은 드물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정주부를 소재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남주: 김지영 씨가 만약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이야깃거리는 더 많았을 거예요. 아이를 데리고 쩔쩔매며 출근하고 육아 문제로 남편과 싸우고, 그런 문제는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TV 드라마나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에요.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어려운 여건이 문제라는 것도 다 알고 계세요.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의 삶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결혼한 여성 중 60% 정도가 경제활동을 해요. 이 안에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이 포함되니까 자신을 전업주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될 거예요. 세상에 직업은 정말 다양하고 사람마다 재능도 관심사도 다른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성별의 절반이 자발적으로 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이 선택에는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사회적인 혹은 경제적인 압박도 있을 거예요.


본인의 재능과 흥미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전업주부가 많기 때문에 전업주부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전업주부는 집안을 가꾸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노동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장되곤 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집에서 논다, 쉰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임금으로 환원되지 않아서 노동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전업주부가 한 명의 노동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금도, 휴식도, 휴가도 전혀 없고 승진할 일도 없는 가장 열악한 노동자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박혜진: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의 이야기가 여성의 이야기 중에서 미묘하게 소외되었어요. 그걸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 기폭제가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점은 바로 ‘맘충’의 이야기에요. 김지영 씨가 이상 증상을 보이는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면 맘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인 거 같아요. 다른 인터뷰에서 작가님께서 그 단어를 실제로 들어보셨다고 하는데, 그 경말의 단어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조남주: 맘충이란 말은 저에게 한 걸 들어본 건 아니고, 직접 말로 내뱉는 사람을 봤어요. 맘충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놀면서 시간 많잖아’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맘충이란 말은 인터넷 기사에서 처음 봤어요. ‘이런 식의 표현까지 있다’는 기사였는데, 거기에 ‘애 엄마들 정말 개념 없다’ ‘그럴 만 하니까 그렇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어요. 그 댓글을 보고 나니까 아이 엄마, 주부가 들어간 기사를 읽기가 두려워질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맘충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 ‘그건 민폐를 끼치는 엄마한테만 하는 말이지’라고 말하는데 그 용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행동에 제약을 받아요. 사실 누구에게도 타인을 ‘이 사람은 사람, 이 사람은 벌레’라고 구분할 권리는 없어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를 내가 구분하고 평가하겠다는 자체가 비하와 멸시의 시선이에요. ‘그건 일부 얘기야. 그건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얘기야’라는 전제부터 지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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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현실, ‘김지영 씨’의 삶

 

박혜진: 이 소설의 결말은 뚜렷하지 않고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김지영 씨를 치료하는 의사는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이 혼합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하지만, 작가님은 김지영 씨의 병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김지영 씨의 삶에 관해서도 쓰지 않으셨고요. 김지영 씨의 이후의 삶이 궁금합니다.

 

조남주: 김지영 씨가 치료를 받아서, 혹은 이 일을 계기로 증상을 떨치고 일어난다고 쓰면 전체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가상의 인물이지만 김지영 씨에게 애정도 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드러낸 이 책에서 주인공이 현실을 잘 극복해낸다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민하는 여성에게 좌절감을 드릴 것 같았어요. 사실 김지영 씨가 멀쩡한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어서 일부러 계획했다는 결말도 생각했는데, (웃음) 이 소설에는 이 결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는 정말 현실적으로 그린 인물이라 정말 안쓰럽고 죄책감도 많이 느꼈어요. 어디 아픈 사람을 혼자 두고 문 닫고 나온 느낌. 소설은 끝났지만 제가 느낀 죄책감은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며 쓸 거예요.

 

노회찬: 결말이 어떤 면에서는 어정쩡하지만, 그래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덮을 때 가슴이 막 답답하고 먹먹했어요. 우리 현실이 그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말에 김지영 씨가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비약이고 그것은 이후의 과제에요. 억지로 비극적으로 만드는 결말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결말을 읽으며 소설은 끝났지만, 현실은 계속된다고 느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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