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정말 자연적일까?
『휴먼 에이지』 편집 후기
그런데 『휴먼 에이지』는 좀 달랐다. 번역 원고를 읽는 와중에 일화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목소리로 들려오고 풍경으로 펼쳐졌다.
책을 읽고 나면 문자라는 매체는 사라지고 장면이나 목소리가 남는다. 꼭 누가 보여주고 들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게 일반적인 독서 경험인지는 모르겠다. 목소리의 크기나 톤은 매번 거기서 거기지만 이미지는 제법 다양해서 지금도 가끔 꺼내 보는데,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니 늙은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있다. 어머니는 들어왔느냐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바깥 창만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머쓱하여 말문을 열 얘깃감을 찾는 사이 정적이 흐른다. 불쑥 어머니가, 어머 꽃이 피었네, 라고 혼잣말을 한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투로.
도대체 언제쯤 다 집어치울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며 지낼 때였는데, 이 구절 덕분에 그런 지지부진한 일상과는 다른 생각을 처음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활짝 핀 꽃이 슬쩍 떠올랐다 사라졌다. 인간사의 불행과 동떨어져 저절로 자라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 어렴풋하게라도 생겨났다면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절로 사는 것? 그래, 자연. 그때부터 나에게 자연은 늘 꽃이었다. 이름 같은 건 잘 몰랐어도 처음 보는 색으로 피었어도 하나같이 예뻤고 그래서 귀애(貴愛)했고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도 저절로 생겨나 피어나는 타고난 생명력 같은 것을 의식하는 것도 좋았다.
저절로, 타고난, 같은 단어를 미처 되돌아가 지우지 못하고 멈칫한다. 화분에 묻혀 꽃을 피워낸 씨앗이 천연 그대로라는 것도, 눈앞에 꽃이 저절로 피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니까. 내 단순한 감각이 보지 못한 과정을 존재하지 않은 셈으로 쳐버린 채 ‘저 자연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홀로 존재하겠지, 부럽도다’ 하는 식으로 신비화한 것일 뿐.
시간이 흘러 꽃의 종자 역시 다른 인공의 세계처럼 “인간의 계획과 실수에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엄밀한 ‘야생’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세상의 일부에 가깝다”라는 글귀를 마주쳤을 때, 그래서 퍽 놀랍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구절구절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연과 인간과 과학에 대한 ‘팩트’를 ‘체크’해주는 책이 『휴먼 에이지』다. 또 그게 전부는 아니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경우, 책을 읽을 때 풍경과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어쩐지 흥이 안 돋는다. 그래서 원서와 사전을 함께 놓고 일일이 확인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외서 편집 과정에서 독서 자체의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문을 읽을 때 쾌감도 배가 된다.)
그런데 『휴먼 에이지』는 좀 달랐다. 번역 원고를 읽는 와중에 일화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목소리로 들려오고 풍경으로 펼쳐졌다. 내가 꼭 우주선 안이며 온실, 실험실에 직접 가 있는 것 같았고, 장난기 섞인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희한하고 재미있는 경험. 궁서체로 곰곰이 짚어봤다. 또 놓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래, 어쩐지. 나는 다이앤 애커먼이 쓴 『휴먼 에이지』를 출발어(영어)가 아닌 김명남이라는 번역가의 도착어(한국어)로 읽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이 다 어디서 온 것이었겠는지. 또다시 놀랍고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는 인간은 얼굴이 잘 빨개진다.
먹는 게 제일 좋은 출판 노동자.
<다이앤 애커먼> 저/<김명남> 역16,920원(10% + 1%)
우리는 어떻게 이 행성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인간의 손길과 지구의 운명을 잇는 가장 솔직한 고백 우리가 흩트리고 찢고 구긴 지구는 이제 끝장난 걸까? 역사상 최고의 골칫덩이인 인류의 ‘미래 프로젝트’ 자연과 과학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옮기는 작가, ‘경계 없는 글쓰기’의 대가 다이앤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