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희 “사교육보다 마음의 체력이 먼저다”
『엄마 내공』 펴내 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
부모라는 노동은 ‘당신의 희생이 고마웠다’라는 자식의 말을 들을 때, 나아가 ‘당신의 삶이 좋아 보였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를 찾는 노동이다. 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다.
“이 책 한 권이면 육아는 문제 없겠는데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육아서. 이 같은 극찬을 받은 책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여행작가 오소희가 쓴 『엄마 내공』. 명문대에 보낸 엄마의 무용담 같은 건 담겨 있지 않다. 교육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소신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엄마들의 진솔한 고민과 해답이 들어 있다. 오소희가 생각한 『엄마 내공』의 타깃 독자를 이렇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가장 빨리 달리길 원하는 엄마가 아닌, 이 치열한 경쟁판에서 좀 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엄마.” 후자에 점을 찍고 있는 엄마, 아빠라면 오소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줄 한 줄 진지하게 읽다 보면 다가올 육아의 광풍이 두렵지만은 않다.
“아이는 자신의 놀이대상만큼 큰다. 무조건 데리고 자연으로 가라. 키즈카페 가지 마라. 그곳은 빤한 놀이공간이다. 놀이에 빤한 정의를 심어줄 뿐이다. 그런 세팅이 안 되어 있으면 쭈뼛대는 아이로 자라날 뿐이다. 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무한한 가능성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가능성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이 모든 ‘가능한’ 놀이가 아이에게는 배움이다. 네 친구들이 허구한 날 모여서 말하는 ‘공부’나 ‘배움’의 정의를 바꿔라. 그들이 말하는 건 배움이 아니라 ‘시험’이다. 네 아이는 아직 시험 칠 나이가 아니다. 배울 나이다. 하늘로부터도, 땅으로부터도, 먼지로부터도.” (14쪽)
우리가 공부해야 할 건 행복해지는 법
여행작가의 육아 에세이,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결심하고 쓴 건 아니다. 동생들에게 아들 어릴 때 키운 이야기를 했더니,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육아 이야기를 들을 데가 없더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핵심은 “유아 때부터 실컷 놀려라. 그 이후에는 못 논다. 기왕이면 자연에서 놀자”였다. 우리나라 학력 사회는 무척 완고하다.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결국 흔들리는 건 부모다. 제아무리 건강한 교육관을 지녀도 아이가 클수록 흔들린다.
“어차피 누구나 흔들린다. 뿌리라도 건강하게 해두자”는 말이 인상적이더라.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싶었다.
놀지 않은 아이는 결코 후반부의 미친 학력 요구들을 버틸 마음의 체력이 키워지지 않는다.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가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공부해야 할 건 행복해지는 법이다. 엄마가 먼저 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도 행복하게 자란다. 아빠가 가사 분담을 안 하면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 그것은 좋지 않은 일, 아닌가?
육아 고민에 대한 해답을 올리자, 엄마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블로그 댓글을 보면 그야말로 ‘내공’이 깊은 부모들이더라.
30개씩 달린 댓글을 읽다 보면 답이 나오더라. 이렇게 좋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많다는 걸 절감했다. 뭉클하고 감동이었다.
질문이 구체적이니까 답변도 구체적이다. 실제 생활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해답을 많이 찾았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여기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오냐”고. 수두룩하게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삶이 정말 바쁘지 않은가? 그런데 시간을 내서 남의 고민에 이렇게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준다는 게 놀라웠다. 최대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조언을 해주는 모습 자체가 훈훈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행위가 연속적으로 계속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모임이 ‘엄마당’이다. 사회 탓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정기적으로 독서토론회를 한다고 들었다.
서른 분 정도 모이는데, 매달 하고 있다. 나는 1회 때만 참석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되니까. 각각의 엄마들이 돋보여야 한다.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토론이다.
『엄마 내공』 이야기로 좀 들어가보자. 4개 장으로 나눠져, 총 27개 질문에 대한 답을 달았다. 첫 번째 장이 ‘사교육’이다. 지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가장 관심을 가질 주제다. 눈에 띄는 건, 무조건 사교육은 좋지 않다고 말한 점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의 적절한 조언들이 많다.
유아의 사교육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이슈가 되는 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왜 유일할까?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취학 연령은 만 7세 전후다. 그 때가 되면 효과적인 사회활동과 학습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다. 만약 만 3세 때부터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해서 그때부터 요령껏 가르치면 대학 입학 때쯤 명석한 청소년으로 자란다고 치자. 그렇다면 전 세계의 취학 연령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교육의 문제는 일찍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차단시키는 거다. 주어진 수업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강요 받고, 스스로 만져보고 싶은 걸 만질 기회도 갖지 못한다. 스스로 깨치면 하나씩 배워나갈 힘을 박탈당하는 거다. 지금 영어 단어를 곧잘 외지만 혼자 옷을 못 입고 밥도 못 먹는 7살 아이와 영어가 뭔지 모르지만 옷도 잘 입고 밥도 뚝딱 잘 먹는 7살 아이가 있다고 치자. 어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까? 자율적인 아이의 성취가 뛰어난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부모는 걱정한다. 내가 혹시 아이에게 경험치를 덜 줘서 덜 발달하진 않을지.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모두 상업적인 활동, 즉 사교육 시장 때문이다. 뭘 해야만 계발이 되는 건 아니다. 남자 아이들이 5,6살이 되면 공룡을 좋아한다. 더 어릴 때 자동차를 좋아하듯이. 크고 힘센 거에 몰두한다. 뽀로로를 좋아하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놓쳐서 큰일이 나는 애들은 따로 있는데, 그런 애들은 절대 안 놓친다. 부모가 곤충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아도 곤충을 잡고 논다. 사교육 시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들에 다 귀를 기울이면 피차 피곤해진다. 적당히 보살피고 난 후에 부모 인생, 내 관심사를 돌봐야 한다.
엄마도 엄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처럼?
육아와 가사 일을 하다 보면 책 읽는 시간을 내는 게 정말 어렵다. 짬짬이 읽을 수밖에 없다. 꼭 책이 아니고 영화, 운동을 해도 좋은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혼자 방에서 보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 키우는 것도 그렇다. 굉장히 반응적인 생활이다. 아이가 배고파하면 엄마는 밥을 차려줘야 하지 않나? 반응적인 생활만 이어지면 삶이 피곤하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 있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도 자기 스스로에게 나오는 반응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 통풍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도 좋은 수단이다.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내가 건강해야 육아도 건강하다’는 점이다. 공부든, 상담이든, 취미생활이든, 내가 건강해질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글 사교육, 엄마표 영어, 영어 유치원에 관한 조언도 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주제다. 영어유치원은 추천하지 않았다.
영어유치원은 학습을 영어로 접하게 하는 곳이다. 유아기는 놀면서 체험하는 나이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배울 나이가 아니다. 만약 놀이를 우선하되 놀이 환경이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영어 유치원이 있다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를 학습시키기 위해서 놀이를 동원한다. 차라리 초등학교 5, 6학년 때 어학연수 1년 정도를 확실하게 보내는 게 낫다. 물론 부모처럼 돌봐줄 수 있는 보호자가 있는 전제하에서.
형편상 어학연수를 못 가는 경우도 많다. 매주 외국인을 만나 ‘일대일 회화’를 하는 방법이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아이와 영어를 같이 배우면 가장 좋다. 아이와 함께 영어를 연습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엄마표 영어에 관한 질문도 많이 받는데, 블로그에는 길게 썼지만 더 좋은 엄마표 영어 책들이 많기 때문에 각자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짧게나마 엄마표 영어 방법을 소개한다면.
핵심은 영어를 환경으로 접하는 거다. 아이들은 패턴이 있을 때 더 쉽게 받아들인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상황에서는 차에서 오디오북을 듣고, 밤에는 엄마가 집에서 읽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가 영어를 사용할 때의 핵심은 엄마가 영어를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와 놀이를 통해 엄마도 함께 영어가 늘어나야 한다. 아이들에게 언어는 환경이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얼만큼 영어적 환경을 접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
대안학교에 관한 조언도 현실적이더라. 실제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이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물론 아이의 선택이었다.
4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아들이 갑자기 “나 이러다 홈리스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되게 충격 받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더라. 우리 사회가 아주 일찍부터 이야기하지 않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학교를 떠나면 이런 이야기만 수없이 하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우리 부부는 공동체 생활이 좋았던 터라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평소 나는 ‘아이의 선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등골을 빼서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대안학교와 공교육은 많이들 알다시피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중요한 건 학교를 선택함에 있어 내 가족의 교육 철학과 내 아이의 성향이 어떤 교육과 어떤 식으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가다.
예민한 아이의 관계 맺기, 아이를 향한 타인의 관심에 대처하는 법 등 마지막 장에 소개한 내용도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조언이다.
꼭 넣고 싶었던 내용이다. 질문은 짧았는데 쓰다 보니 긴 답변을 쓰게 됐는데, 어릴 땐 뜨겁게 마음을 나누다가 크면 차갑게 독립시켜 보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식까지 전면에 내세우고 안달하면서 산다. 특목고 재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매년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매년 같은 아이들이 온다”는 거다. 똑같이 무기력하고 똑같이 엄마와의 관계가 끝장난 아이들을 만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부모라는 노동은 ‘당신의 희생이 고마웠다’라는 자식의 말을 들을 때, 나아가 ‘당신의 삶이 좋아 보였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를 찾는 노동이다. 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다.
영유아 딸을 키우는 엄마들은 특히 낯선 사람들이 쉽게 하는 스킨십에 예민하다. 요즘 정말 무서운 세상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차단이 아니라 교류”라고 했다. 젊은 엄마들의 의견이 끝까지 하나로 모여지지 않았는데.
책에 실린 고민은 시각장애인이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고, 뽀뽀를 해달라고 한 사건이었다. 엄마들의 댓글에서 언급된 성교육 방식은 대체로 옳았다. 때에 따라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떤 요구에도 ‘노’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지속적인 성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과 교류할 시간을 헷갈려서는 곤란하다. 서양 사회와 비교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이곳은 아시아, 공동체 문화가 깊숙하게 자리잡은 한국이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불신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삭제와 차단이 아니다. 교류와 신뢰다. 명백히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사람, 그런 접촉은 주저하지 말고 막아야 하지만, 모든 기회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차단하면 안 된다. 이 아이도 언젠가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엄마 품에서 나간다. ‘안전’은 정말 중요하지만 부적절한 영역까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똥은 어디에나 있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있다. 중요한 것은 똥을 완벽하게 피해 가느냐의 여부보다 똥을 밟았을 때 ‘에잇, 재수 없어’하고 떨쳐버릴 힘을 지녔는가의 여부다.”(249쪽)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 성공적인 육아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엄마들이 꼭 이 부분을 눈 여겨 읽으면 좋겠다.
어디서나 태도가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들 부모에게는 설득이 좀 쉬웠는데, 딸 부모들은 끝까지 어려워하더라. 수비, 방어만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예전보다 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내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일, 독특한 사람들을 겪었겠나. 여행이 좋은 건, 큰 시야를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옆으로도 커지고 위, 아래로도 커진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을 접하며 얻는 것들이 있다. 자신이 겪을 일에 대해 불필요한 조바심을 배제할 수 있다. 미디어에 나오는 나쁜 뉴스들만 보면서 이 시대가 아주 몹쓸 세상인 양, 걱정과 근심 속에 사는 건 우리 모두에게 손해다.
아이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이다.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의 기저는 아이와 이야기하는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말을 해야지, 어떤 말을 안 해야지, 하는 것은 없었다.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었다. 내가 아는 한 성심성의껏 대화했다. ‘이 쪼그만 게 뭐라고 나불나불 떠들어?’가 아니라 ‘이 작은 뇌로 최선을 다해 느끼고 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독특한 라이프 스토리를 갖는 일
여행을 시작하는 적정 나이는 6세라고 했다. 대개 어릴 때는 기억 못하니까 무리해서 여행 갈 필요는 없다고들 하는데.
아들 중빈이는 만 3세 때 했던 터키 여행을 이야기하곤 한다.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트램이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릴 때 한 여행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라 태도다.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 버리는 것, 그래 보는 것이다. 여행 중에 열어본 경험은 태도가 되어 퇴적층처럼 정직하게 쌓인다. 부모는 아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다. 내 경험상 아이와 여행하기 가장 좋은 나이는 6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다. 어릴수록 현장을 체험하기 좋다. 10세를 넘기면 아이는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경계 없이 다가가기보다 주변을 판단한다. 일상이 힘든 시기일수록 여행의 건강함을 믿었으면 좋겠다. 물론 해외 여행일 필요는 없다. 시골 장터, 산림욕장도 좋다.
‘사춘기 아들과의 여행’을 고민하는 엄마에게는 “아들을 믿고 여행의 전권을 맡겨보라”고 했다.
직접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게 하는 게 좋다. “뭐든 네 맘대로 해라. 네가 인솔자다. 법에 저촉되는 것만 아니면 모든 것이 네 손 안에 허용되어 있다”고 말해봐라. 물론 처음엔 힘들다. 시간도 비용도 아까울 거다. 그러나 참아보자. 한 번쯤은 아이에게 주인공이 되는 기쁨과 책임감을 선사해보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또 중요한 건, 엄마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을 믿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거다.
성격상 바깥 활동이나 여행을 싫어하는 부모도 있다. 억지로라도 많이 나가는 게 좋을까?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는 팔자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엄마를 둔 아들도 팔잔 거다.(웃음) 실외보다 실내 활동을 좋아하는 부모들도 물론 많다. 지나치게 집에만 있고 나태하면 곤란하겠지만, 실내 활동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고. 비타민A만 먹고 살 수 없으니까, 때로는 바깥도 나가야겠지만 억지로 하는 건 좋지 않다. 아이는 주어진 환경에서 가져갈 것을 잘 가져간다. 이건 꼭 해야지, 이런 마음보다는 조금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아들은 어릴 때의 여행을 어떻게 기억하나?
여행을 많이 한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사춘기는 지독한 암흑기 아닌가? 사춘기가 끝나고 중학교 3학년쯤 되면, 애들이 약간 멋져진다. 의젓해지면서 상남자 포스를 풍긴다. 그리고 자신이 어릴 때 경험한 것들의 가치를 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보면 맨 마지막에 아들이 내게 한 말이 실려 있다. “엄마, 여행할 동안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당시에 아들이 어떤 의미를 알고 말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기도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내게 독특한 라이프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혹 표현한다.
지금도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나?
1년에 한 번 정도 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에 큰 기대감, 기쁨을 느낀다. 지금의 여행은 대부분 봉사활동이다. 발리에 ‘페르마타 하티’라는 고아원이 하나 있다. 아들 중빈이가 어릴 때부터 갔던 곳이다. 중빈이가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밴드를 만들고, 연극을 가르쳐주면 대본을 완성시킨다. 작년 겨울부터 봉사활동과 여행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발리로 여행 온 가족들이 하루 이틀, 봉사활동에 참여해보는 거다.
반응은 어떤가?
봉사활동이 끝났는데도 아이들이 고아원을 안 떠나려고 한다. 아이들이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도 있지만, 눈에 띄는 건 부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점이다. 평소 한국에서는 오로지 자기만 보던 부모였는데, 고아원 아이들 수 백 명을 돌보는 모습을 보니 엄마, 아빠가 새롭게 보이는 거다. ‘우리 엄마도 나 말고 다른 돌볼 곳이 있구나’를 깨닫는다.
만약 다시 아들을 신생아 때부터 키운다면, ‘이건 좀 더 잘해볼 걸’ 아쉬운 점이 있나?
단순하다. 아들이 입이 무척 짧다. 워낙 안 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이유식을 좀 더 잘해보면 나았을까? 정도다. 모든 아이에게는 부모를 애 먹이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있지 않은가? 어떤 아이는 말을 되게 늦게 하고, 어떤 아이는 잠자는 걸 힘들어 하고. 내가 잘못하면 애가 크게 잘못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책임감 속에 아이를 키우는데, 지나고 보면 모두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싶다.
육아에 관한 내공, 지혜는 여행으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내가 아이와 같이 여행을 한 건, 아이를 등에 둘러업고 대학에 다닌 것과 같다. 사실 되게 불리한 입지일 수 있다. 아이랑 함께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런데 이런 학생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나? 절실하니까. 여행을 통해 아이와 내가 같이 성장한 건 분명하다.
이번 책으로 인해, 여행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되진 않았는지.
나는 ‘여행작가를 해야지’하고 시작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났는데 내용이 괜찮아서 글로 썼는데, 책이 나오게 된 거다. 어떤 시기에 갈망하고 몰두하는 주제가 생기는데, 그걸 어떻게 해내면 책으로 나온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나는 문학가나 소설가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 책이 되어서 나오는 사람이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키우는데 몰두했으니까,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집중했으니까 『엄마 내공』이 나온 거다.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계속 열심히 살겠다”가 나의 모토다.
2년 후는 어떤 삶에 몰두하고 있을까?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을 할 테니, 나에겐 가장 큰 프로젝트가 끝난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막 살기가 좀 있지 않을까? (웃음) 일단 하고 싶은 걸 다 할 거다. 혼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페르마타 하티를 몇 개월 다녀올 수도 있고.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엄마 내공오소희 저 | 북하우스
『엄마 내공』은 대한민국의 많은 엄마들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여행’의 로망과 가능성을 안겨주었던 오소희 작가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태평양의 끝’에서 수많은 엄마들과 주고받았던 자녀교육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엮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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