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뽕 맞았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갑자기 '검도를 배워야겠어!', '프랑스어를 네이티브처럼 말할 거야!', 혹은 '포켓몬 마스터가 되어야겠어!'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차서 모든 걸 제쳐놓고 몰두할 때다. 이번에 맞은 건 피아노였다. 아무래도 『다시, 피아노』를 읽어버린 탓이 크다.
『다시, 피아노』는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주인공으로, 원래부터 피아노를 잘 치던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더 어려운 도전 과제를 부과하고 연습하는 과정을 그렸다. 도전 내용은 프로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어렵기로 소문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막힘없이 연주하겠다는 것. 피아노 캠프에 참가했다가 자기보다 훨씬 못 칠 것 같은 아마추어가 그 곡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걸 보고 질투와 놀라움에 ‘피아노 뽕’을 맞은 것이다.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조성진 연주.
그래서 남이 치는 곡에 자극받아 쓴 책에 다시 자극받은 나는 퇴근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일을 내버려 두고 벌떡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직장 동료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매우 미안하지만 모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미뤄놓고 단호하게 퇴근한다. 꾹꾹 눌리는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집에 도착하면 피아노를 칠 시간은 기껏해야 30분이다. 그리고 그 30분마저도 대책 없이 꼬륵거리는 뱃속 사정에 굴복해 포기하고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매일 예술이 먼저인가 밥이 먼저인가 근본적인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왜 우리 집은 회사에서 멀리 있으며, 근무 시간은 왜 이리 긴지, 왜 한국의 주거 공간은 층간소음에 취약해 밤에 피아노를 칠 수 없는지, 아아! 무엇보다 배고프다! 불만을 음악으로 승화해 건반을 두들기고 나면 세상사 다 부질없다는 생각과 욱신거리는 새끼손가락이 남는다.
여느 중산층 가정처럼 우리 집도 어렸을 때 자식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직장인이 1,3,5년 순으로 퇴사 욕구가 솟구친다면, 피아노 연주도 마찬가지로 고비가 오는 순간이 있다. 『체르니 100』을 꾸역꾸역 끝내놨더니 『체르니 30』이 기다리고 있다든가, 매일같이 연습장에 그려지는 다섯 개에서 열 개의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워가며 시지프스가 된 기분을 느낀다든가. 나는 운 좋게 고비를 넘긴 편이었는데, 그중 한 이유는 체르니를 치다가 피아노 학원이 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쳤냐는 질문에 "30번은 끝냈어요"하고 조그마한 거짓말을 했다. 사실 17번까지만 나갔지만 더 쳤다가는 그다음 번호에서 욕이 나올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그 거짓말로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오래 치고 있으니 잘 된 셈이다.
『체르니 30』에 수록된 연습곡. 듣고 있다 보면 정신이 멍해진다.
5년 차 직장인이 대리나 과장 정도라면,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5년 차 이상은 상무급이다. 체르니에서 우수수 떨어지고 베토벤과 쇼팽에서 또 동년배들이 떨어져 나갔다. 나중에 내 나이또래는 나밖에 없었다. 그 정도 되면 슬렁슬렁 쳐도 『바이엘』을 치는 쪼만한 이들을 비웃어줄 수 있다, 적어도 학원 안에서는.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에 슬슬 예중이나 예고를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밥 먹고 숨 쉬듯이 연습을 하더니 쇼팽을 쳐내고 다가설 수 없는 영역으로 멀어졌다. 저들은 이제 프로니까, 하고 위안하는 사이 예중도 안 갔는데 프로처럼 잘 치는 친구들도 나타났다. 그 친구들은 대개 집도 잘 살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했다.
이후로 깨작깨작 피아노를 치기는 했지만, 늘 재능이 없다는 생각으로 우울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 코드워크의 이해력이 높아서 한 번 듣고 쳐내는 사람 앞에서 기가 죽었다. 440Hz와 442Hz 사이를 구분해내는 사람까지 부러워했다. 나보다 더 많은 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돈도 실력이야. 너희 부모를 탓해'라는 모 유명인의 말도 있듯이, 음악은 돈도 많이 든다. 성인이 되자 취미생활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들도 부러웠다. 『다시, 피아노』의 앨런은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돈으로 집 앞에 연습실을 만들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2만5천 파운드에 산다. 한국 돈으로 하면 3천6백만 원쯤 된다. 아, 욕이 나오려고 한다.
피아노를 새로 사지는 못하니, 예스24 중고서점에서 산 『하농』으로 투자를 대신했다. 『하농』은 타격감과 손가락 근력을 기르기 위한 피아노 연습곡으로,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체르니보다 더 효율적으로 손가락을 ‘조진다’. 계단을 밟는 것처럼 동일한 멜로디를 한 음씩 높여가며 치면 반복되는 멜로디가 최면효과를 내면서 내가 피아노를 치는 건지 피아노가 나를 치는 건지 모른다.
하농 연습곡. 3,4,5번 손가락을 위한 연습 문제를 풀고 나면 어렸을 때 제대로 안 쳐서 후회막심한 지옥의 음계 구간이 나타난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연습 시간을 버티는 건 잘했다. 버티다 보면 체르니는 소나타로, 반주곡집은 재즈와 뉴에이지 곡집으로 바뀌었다. 버티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는,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 버텨도 모든 일에 그때만큼 효율이 나지 않는다.
음감이라든지, 풍부한 표현력만이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노력이 99%고 재능은 1%라지만, 지금은 노력하고자 하는 기질도, 노력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낙천성도, 노력할 만하게 해주는 경제 사정도 선천적 재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적어도 버티는 재능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내 피아노는 내 피아노, 당신의 음악은 당신의 음악, 남의 재능은 남의 재능일 뿐. 아무리 잘 하라고 주변에서 다그쳐봤자 기질과 주변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음악을 느끼라는 말도, 어떻게든 밥벌이와 자아실현과 취미 사이에 균형을 잡으라는 말도 빈말이 되기에 십상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까지는 아니어도 목표곡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 하이든의 소나타를 치기로 했다. 샾이 하나 붙어있는데 멍청하게 하이든 소나타 C장조로 검색했다가 다른 곡만 잔뜩 들었다. 몇 년을 쳤는데 C장조랑 G장조를 헷갈리나. 어렸을 적 피아노 선생님이 이 글을 보면 손목을 때리려고 쫓아오실 것만 같다. 앞날이 깜깜하다.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27번 G장조 1악장. 연주 Rudolf Buchbinder
유투브 속에서는 5살 어린이도 나보다 훨씬 빠르게 잘 친다. 몇 번 듣다 기운이 빠져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
요새는 3악장의 프레스토(매우 빠르게) 포르테시모(매우 세게) 부분을 종잡을 수 없는 속도로 친다. 작곡가도 선생님도 지시한 적 없는 템포 루바토('자유로운 템포로', 연주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박자)로 연주하지만 제 속도라는 게 온당히 가능할까. 너무 빨리 치기만 해서는 영영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지 못하고, 한없이 느리고 고통스럽게 작품을 쌓아나가도 큰 의미는 없다. 현실적인 자질과 비현실적인 꿈 사이를 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글도 엉망이고 연주도 엉망이니 애써 작은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꾸밈음을 잘 쳤다. 어제는 피아노 연습 대신 '포켓몬GO' 레벨을 올렸다. 뿌듯하다. 다른 사람의 속도는 잊고 줄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깜냥에 맞는 지지부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다시, 포르테시모.
피아노 앞에 앉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어차피 완벽한 연주란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1년 넘게 매달려온 개인의 탐험이 맺은 결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 『다시, 피아노』, 565쪽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는 며칠간 내 뽕을 참아주더니 조심스레 회사가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내 만족까지는 됐는데 주변인들의 만족까지는 갈 길이 멀다. 어느 정도 쳐야 주변인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려나? 그 때까지 이 뽕이 남아있긴 할까? 그나저나 아랫집이 층간 소음으로 올라와 폭력 사태가 일어나진 않겠지? 다시, 피아니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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