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
서른아홉, 제주도에 처음 간 사연
차영민의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외
차영민이 결혼한다는 소식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이었다. 차영민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제주도에 처음 갔다. 딱히 그럴 듯한 연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친구들 다 간다고 할 때엔 “그 돈으로 일본 가지, 왜 국내를 가나?” 하며 코웃음을 쳤고, 나이가 들어 “나만 제주도 안 가봤잖아?” 생각이 들었을 때엔 이미 다들 한 번쯤 다녀온 지라 같이 가준다는 인간이 없었다. 이번에도 가까스로 제주도에 갈 수 있었으니, 지난 회 차에 이야기했듯 친구 덕분이었다. <한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친구 김선희 따라 강남이 아니라 제주도에 간 것.
당연히 괴나리봇짐은 책부터 챙겼다. 여행을 가니까 가볍고 잘 읽히는 에세이와 만화 위주로 『가만한 당신』, 『잠깐, 저기까지만』, 『여자들은 언제나 대단해』,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딱 네 권만 골라 캐리어에 넣은 후 페이스북에 기념사진을 올렸더니 덧글이 꽤 달렸다. “신분증 챙기고 여권은 빼라”, “대체 책은 왜 그렇게 챙기냐?”,“포카칩 두 봉은 왜?” 등등의 반응에 “헉, 제주도 여권 필요 없어?”, “아, 국내구나!” “그러고보니 포카칩은 제주도에서도 파네” 등등을 중얼거리며 가까스로 여권은 뺐으나 포카칩 두 봉과 책 네 권은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출발 직전 불안해져 『하루키의 여행법』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꾸역꾸역 쑤셔 박았다.
제주도에 도착한 후로도 책이 없다는 불안감은 계속됐다. 일단 보였다 하면 챙겼다. 친구 시상식장에서 『한라일보 신춘 문예』 1, 2권을, 편의점에선 『효리누나 혼저 옵서예』를 구입했다. 노렸던 시인의 집에 못 간 게 아쉬웠다. 손 세실리아 시인이 운영한다는 그곳에 들러 저자 사인본을 구입하려고 했건만 ‘꽝, 다음 기회에’ 쉬는 날이었다.
도합 9권의 책을 이고 지고 제주도에 다녀온 건데, 이 중 무려 한 작가의 같은 책이 두 권이었다. 차영민의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와 『효리 누나 혼저 옵서예』. 제목이 바뀌어 나오며 옛날 책이 절판됐다. 그러니 작가가 일하는 제주도 편의점에만 있는 유일한 절판본을 사고 사인을 받는 건 덕후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관광코스였다.
이 책엔 편의점 덕후에서 알바로 거듭난 차영민의 일상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소세지 사건’의 전말이라던가, 이효리의 이사 후 일어난 미묘한 주변의 변화라던가 중국인 관광객들과 얽힌 에피소드를 보자면 남의 일이 아니야 하고 한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 역시 지난 5월까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했기에 꽤나 공감할 수 있었달까.
차영민, 바로 이 사람이다
차영민을 처음 안 건 무려 7년 전이다. 당시 나는 낮에는 커피를 뽑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그렇게 써서 인터넷에 올린 소설의 조회수는 한없이 제로를 수렴했으나, 몇몇 응원 덧글에 용기를 얻어 계속 적을 수 있었다. 덧글 중에는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카페지기도 있었다. 대체 어디서 어쩌다 여기까지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덧글로 ‘나는 작가다’라는 공모전을 소개해줬고, 나는 직접 덧글을 달아주시는 수고가 감사해 자음과모음 카페에 가입했다가 작가 지망생들을 다수 만나게 되었으니, 그 중 태반이 이제는 ‘진짜 작가다’.
이 중 ‘종이비행기’라는 닉네임을 쓰는 제주도 청년 차영민이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이름 중간에 영자가 들어가는데다 데뷔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그런고로 동지의식이 싹튼 것. 헌데 작년 이 맘 때 추월 당했다. 차영민이 나보다 먼저 결혼에 골인했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의 한 부분을 응용해 말하자면 이 때의 내 심정은 다음과 같았다.
차영민이 결혼한다는 소식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이었다. 차영민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래, 차영민은 이런 종류의 화제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차영민‘도’ 독신이란 점은 일종의 방파제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늘 “아, 차영민도…….”하고 도망쳤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한 번 부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1월 16일자로 이제 차영민은 아이 아빠다. 딸을 낳았다. 이름은 한 글자 ‘설’이란다. 듣자마자 차설이 아니라 백설을 떠올린 것은, 딸 바보로 거듭날 차영민의 이미지가 제주도 한라산 만년설처럼 7년 전 그대로 순수한 까닭이리라.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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