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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신견식 “인공지능 이후에도 번역가는 계속 존재할 것”

프리랜서 번역가 신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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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한국보다 조금 나을진 몰라도 출판 번역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에요. 돈보다는 사명감이나 문화와 문화의 가교를 잇는 뿌듯함 같은 게 더 크죠.

<월간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일곱 번째는 외국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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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견식 번역가가 다루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등 대략 세어도 15개 언어가 넘는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번역을 시작해 비즈니스 관련 문서를 번역하는 실용 번역과 기술 번역을 해오다, 스웨덴어 전공은 아니었지만 스웨덴 스릴러 작가 헨닝 망켈의 『불안한 남자』를 영어나 독일어 중역 없이 스웨덴어판으로 번역하면서 출판 번역을 시작했다. 다양한 언어를 다루다 보니 다른 번역가들이 생소한 언어를 맞닥뜨릴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최근 인공신경망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해 내는 것을 보면서 일부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정말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견식 번역가는 “지금의 번역가 개념하고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번역가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와 문화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신견식 번역가를 만나 번역과 외국어를 아는 즐거움을 들어보았다.

 

번역도 번역이지만, 출중한 언어 실력으로 먼저 부각이 됐습니다. 언어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웃분이 독일어 사전을 빌려주셨는데, 그걸 보면서 언어의 유사성에 관해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언어라는 게 이렇게 비슷한 언어도 있고, 서로 다른 언어가 있구나 하면서 언어학을 좋아하게 됐죠.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번역을 시작하신 건 언제였나요?


대학교 4학년 때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보고 지원했어요. 처음 맡은 일은 스페인어로 된 기계 설명서를 번역하는 일이었어요.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면서도 학비를 벌기 위해 계속 하다 보니 본업이 됐어요.


전공은 스페인어였는데 스웨덴어 소설을 번역하셨어요.


아는 번역가를 통해서 출판사 관계자하고 안면을 트고 지내다, 마침 헨리 망켈이라는 스웨덴 작가 책을 내면서 저에게 번역을 맡겼어요. 처음에는 편집자가 ‘스페인’과 ‘스웨덴’을 헷갈린 게 아닐까 싶었어요.(웃음) 제가 여러 언어를 한다는 걸 알고 맡기셨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어 책으로는 600페이지 정도 나올 정도의 두꺼운 책이었는데, 번역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죠. 지금도 그렇지만 스웨덴어를 바로 번역하는 책은 드물거든요. 스웨덴어 번역자가 많이 없으니까 주로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된 걸 다시 번역하는 중역을 많이 하죠. 장르 소설로는 처음으로 바로 스웨덴어에서 번역한 거라 그런 점에 있어서는 많이 뿌듯한 작업이었어요.


그 외 이제까지 작업한 출판물은 뭐가 있나요?


그 다음에 오사 라르손의 『블랙 오로라』를 번역하고, 올해는 닐스 우덴베리의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라는 에세이를 작업했어요. 마찬가지로 스웨덴어를 번역한 거라 번역을 빨리 하진 못 했어요. 네덜란드어 권이나 노르웨이어 책 번역 요청이 가끔 오긴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거절한 적이 있어요. 속도를 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좀 아쉽죠.


프리랜서로 일하면 일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작업하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는 게 이상적인데, 저는 제 마음대로 하는 스타일이에요. 새벽에 하는 때도 있고 낮에 하는 때도 있고요. 실무 번역은 문학 번역에 비해 번역 기간이 짧아서 하루이틀 안에 해야 하는 업무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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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번역과 책 번역의 차이가 있나요?


실무 번역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마감 안에 반드시 줘야 하죠. 문학 작품 번역도 물론 정확하게 해야 하지만, 한국어다운 글을 제대로 써 주는 게 어떻게 보면 더 큰 일입니다. 그래서 출판 번역은 공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공에 비해서 보수는 사실 적어서 많은 번역가가 아쉬워 하기도 합니다. 유럽도 한국보다 조금 나을진 몰라도 출판 번역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에요. 돈보다는 사명감이나 문화와 문화의 가교를 잇는 뿌듯함 같은 게 더 크죠.


흔히 번역을 이야기할 때 어색하더라도 원 뜻을 그대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과, 뜻이 조금 다르게 되더라도 원 저자의 스타일을 살려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번역을 이야기하면 늘 나오는 문제죠. 직역과 의역의 차이보다는,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떤 글이나 문장은 직역했을 때 맞는 번역이 되고, 어떤 번역은 직역하면 잘못된 번역이 되기도 해요. 한 문장을 60억 명이 번역하면 60억 개의 다른 글이 나올 거예요. 그만큼 언어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따지는 문제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원문은 당연히 봐야 하지만, 저는 번역이 원문이라는 옷을 한 번 입어 본 다음에 다시 벗고 그 옷을 만든다는 비유를 하고 싶어요.


책을 만들려면 편집자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번역자와 편집자 사이에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죠. 편집자가 문장을 좋게 다듬었는데 알고 보니 앞뒤 문맥과 안 맞게 고쳤다든가, 제가 놓친 부분을 편집자가 고쳐 준다든가 하면서요. 편집자가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이견이 생기면 타협을 하죠.


인공 지능 번역이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요.


번역가라는 직업이 사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에요. 한두 달 사이 구글 번역 성능이 엄청 좋아졌는데, 어떤 면에서는 실력이 없는 학생이 하는 번역보다 훨씬 나아요. 그걸 봤을 때 어린 친구들에게 지금과 같은 번역가를 하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애매해요. 하지만 분명히 번역가는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있을 거예요. 기계 번역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손을 봐야 하니까요. 새로운 기기가 나오더라도 직업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이 시대에 번역가의 일은 무엇이 될 것인가는 생각을 해 봐야죠.  예전에 농담으로 번역기가 되면 모든 국가의 사람과 통할 거라는 말이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인공 지능 시대의 외국어 공부와 번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왕도는 없어요. 언어는 언어 자체만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인간 정신을 이해하려면 문화나 역사를 알아야 하죠. 결국은 식상한 이야기지만 책을 많이 읽어라. (웃음) 이 이야기죠.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게 아니라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정보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하겠죠. 단순히 책을 몇 권 읽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고, 지식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파악한다면 훌륭한 번역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간이 되겠죠?

 

한국에 소개했음 하는 책이 있나요?

한국에서 북유럽의 사민주의나 북유럽 복지가 알려지면서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수상도 알려졌어요. 관련 책이 나온 적은 있지만 전기를 한 번 번역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정치적으로 팬과 싫어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람이었고 스웨덴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어서 소개해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오진 않았네요.


요새도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이야기해주신다면요.


겹치는 이야기지만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언어 안에 있어요. 저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에요. 직업이 프리랜서라 그런 것도 있는데, 대신 언어를 많이 만나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되듯이 언어를 만나는 게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해도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시험을 봐야 하니까 외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고, 어찌 보면 조금 더 즐겁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해요. 기계의 도움을 받더라도 외국어를 배움으로서 다른 문화의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니까요.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조만간 번역을 끝낼 책이 하나 있고요. 실무 번역을 출판 번역과 병행하고 있죠. 최근에 『콩글리시 찬가』라는 저서를 냈는데 내년에 또 한 권 낼 예정이라, 그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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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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