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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無)의 질병, 감기

어린이용 종합감기약 같은 건 사 먹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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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더 건강해지는 겁니다. 골고루 먹고, 열심히 뛰어 놀고, 푹 자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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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감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저는 서귀포에서 10년 넘게 어린이들을 봤습니다. 참 그리운 시절입니다. 지금쯤 그곳의 아이들도 콧물을 줄줄 흘리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엄마 손을 잡고 병원을 갈 겁니다. 구태의연한 감기 얘기를 어떻게 들려 드리나 하면서 옛 생각에 젖다 보니 감기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제주도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를 흔히 3多, 3無의 섬이라고 하지요. 말, 바람, 여자가 많고,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감기가 3무라고? 뭐가 없다는 말일까요?
 


1.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피할 방법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 뜻입니다. 첫 번째는 면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홍역이나 수두처럼 한 번 걸렸다고 다시 안 걸리는 것이 아니며,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 위생을 아주 잘 지킨다고 해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입니다. 그런데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증상은 열 나고, 기침하고, 콧물 나고 하는 식으로 똑같지만 원인 바이러스는 200가지나 됩니다. 백신을 200번 맞을 수도 없고, 한두 가지를 예방한다고 해도 다른 바이러스에 의해 감기 걸리는 횟수는 비슷할 테니 실효성이 없는 거지요.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바이러스가 튀어나옵니다.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둥둥 떠다니게 되는 거지요. 겨울에는 여름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마트에서, 영화관에서, 교회나 학교, 어린이집에서 공기를 통해 바이러스를 들이마실 기회도 더 많습니다.


또 코를 풀거나 콧물을 닦거나 입을 막고 기침을 할 때 손에 바이러스가 묻습니다. 그 손을 바로 씻으면 좋겠지만 어린이들이 그럴 리 없죠. 그 손으로 온갖 물건을 만지죠. 어린이집 같으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겠죠? 그걸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놉니다. 그 손을 바로 씻으면 모르지만 얼굴을 만지고, 음식을 집어 먹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요. 어른도 비슷합니다. 문 손잡이나 키보드, 장 볼 때 밀고 다니는 카트 손잡이 등에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많지요.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더욱 피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손을 자주 씻거나, 사람 많은 곳을 피하거나, 외출에서 돌아오면 바로 이를 닦는 등 개인위생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감기의 빈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고, 감기 말고 다른 병을 예방하는 데는 여전히 강력하고 유용한 방법입니다.

 

 

2. 빨리 낫는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들끼리는 농담으로 ‘감기는 치료하면 1주일, 치료 안 하면 7일 간다’고 합니다.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항생제는 쓸모가 없습니다. 약을 써서 열을 떨어뜨리거나, 콧물이나 기침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빨리 낫는 것은 아닙니다. 기침을 억누르거나 콧물을 말리는 약은 폐렴 등 합병증을 더 잘 일으킬 수도 있는 데다 어린이에게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린이용 종합감기약 같은 건 사 먹이지 마세요. 그런데 빨리 낫지도 않을 걸 왜 병원에 가느냐고요?


첫째, 더 심한 병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갑니다. 감기라고 생각해도 아이가 열이 펄펄 나거나, 축 늘어져 있으면 부모 입장에서 겁이 안 날 수 없습니다. ‘큰 병이 아니고 감기입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시원합니다. 물론 다른 병일 수도 있고요.


둘째,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피하기 위해 갑니다. 감기에 걸리면 아이가 잘 먹지 않고, 설사가 동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릴수록 탈수가 되기 쉽습니다. 탈수는 적절한 때 발견해서 고쳐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경과하면 엄청나게 큰 병이 됩니다. 감기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열이 갑자기 다시 오르거나 기침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의사는 중이염이나 폐렴 등 합병증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피할 방법도 없고, 빨리 낫는 방법도 없다면 맥 빠지는 소리로 들릴 겁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감기에 걸린다고 무슨 큰일이 나지 않습니다. 예, 저도 압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침을 달고 살거나, 누런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절망감을 일으키는지 잘 압니다. 고백하자면 저희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남의 아이들은 잘 본다는데 왜 네 아이들은 왜 이 모양이냐는 핀잔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1년에 6-8번 감기에 걸립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안 걸리지요. 6-8번이 주로 겨울에 집중됩니다. 감기에 걸리면 평균적으로 열은 3일, 기침은 1-2주, 콧물은 2-3주 갑니다. 감기에 8번 걸린다면 콧물은 24주, 즉 6개월 간다는 얘깁니다.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간다는 말이죠. 왜 어린이들을 보고 코흘리개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시나요? 그걸 낫자고 약을 먹고, 항생제를 쓰고, 심지어 주사를 맞으러 다니는 건 잘못된 겁니다. 끝없이 오라는 병원이 있으면 피하세요.


옛날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자주 아픈 건 부모에게도 참 힘든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건강을 위해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으며 자신의 면역력을 키우는 거니까요. 어른이 아이보다 덜 아픈 건 어려서 이미 여러 번 아팠기 때문입니다. 약, 보약, 건강식품, 홍삼, 녹용, 심지어 체온을 올린다는 방법까지 면역력을 키운다고 주장합니다. 그냥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세요.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더 건강해지는 겁니다. 골고루 먹고, 열심히 뛰어 놀고, 푹 자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감기 자주 걸린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면역에 관한 한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건 모두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 참고 도서 :

<What to Know Before Seeing Your Pediatrician : An Illustrated Guide for Parents>, Pete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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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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