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병 치유기
가지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
최근엔 앞머리 병과 단발 병보다 더한 병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이사병. 말 그대로, ‘이사 가고 싶어’ 생긴 병이다.
20대 시절에 주기적으로 한 번씩 찾아오던 병들이 있었다. 앞머리 병, 그리고 단발 병. 청순해 보이고 싶어 기껏 기른 머리지만 얼마 못 가 금세 질려 자를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은 툭 잘라버리기 일수였다. 그러곤 곧잘 후회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 병들의 원인은 ‘지겨움’ 탓이었을 거다.
결혼을 하고, 30대가 된 요즘은 다행스럽게도 머리를 자를까 말까로 인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앞머리의 유무와 단발과 장발의 경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가 신나게 머리를 잡아 당길 때 즈음, 필요에 의해 자르거나 묶거나 하나를 선택할 뿐.
그런데 최근엔 앞머리 병과 단발 병보다 더한 병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이사병. 말 그대로, ‘이사 가고 싶어’ 생긴 병이다. 이 병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집에 극심한 문제가 생겨서도 아니오, 서러운 월세살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아니오, 그저 ‘집이 너무 좁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신혼 시절, 신랑이 총각 시절부터 살아오던 작은 원룸에서 시작해 결혼 1년만에 마련한 아담한 집! 물론 은행이 도와주긴 했지만, 마음 편한 보금자리이자 둘이 살기에, 혹은 아이 하나가 생긴다 해도 너무 좋은 집이라고 스스로 자찬했던 게 불과 2년 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슬슬 기어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상하게 집이 참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여기 저기 좁은 집에 늘어져 있는 살림살이와 가구들 때문에 맘 편히 기어 다니지 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게 먼저였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넓은 집을 구해야 했을까?’, ‘돈도 없는데…아이가 더 크기 전에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멍하게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기를 수십 번.
사람의 욕심이란 정말 한도 끝도 없는지,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가 더 가지고 싶고, 충분히 있어도 더 큰 게 좋아 보인다. 사실 ‘아이를 위해’ 라고 말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어쩌면 난 그저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집에 살고 싶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나도 나이가 들긴 드는 걸까?
이사오자 마자 나만의 공간을 만들겠다며 수제로 한 벽돌, 한 벽돌 붙였던 나의 베란다 작업실. 지금은 갈 곳 잃은 수납장이 차지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부활 예정인 공간.
욕심을 낼수록 더 허해지기만 하는 이 이사병을 고치기 위해, 다시 한 번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을 꺼내 읽었다. 올해 초에 읽었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 이어 이번엔 『무인양품으로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했다. 최근 일본의 주부들의 미니멀 라이프를 다룬 책들이 많은데, 사실 그들이 실천하는 것은 단순하다. 물건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가족과 더 긴밀해 지는 삶을 찾는 것. 그들은 오히려 깔끔한 집을 보며 마음의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다. 집의 크기를 늘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마음, 그 마음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
그렇다. 아이가 기어 다니는 데 집의 크기가 뭐가 중요 하겠는가. 옆에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봐주는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가족들이 있다면 아이는 그곳이 어디든 즐겁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얼마 전 신랑과 함께 묵혀 둔 잡동사니를 꺼내어 모두 내다버렸다.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기 아까웠던 옷들, 이불들, 그리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가구들. 물론 ‘버리자’라고 과감해지기 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버림과 동시에 집이 환해졌다. 덕분에 아이가 더 편하게 기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늘었고, 작은 책장을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해 졌다.
나의 이사병이 언제쯤 또 다시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당분간은 비워져 있는 공간에서 내 마음도 조금 비우고, 천천히 생각하는 여유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가오는 주말엔 아직도 신랑이 미련을 갖고 버리지 못하는 수납장 하나를 버릴 계획이다. 버리는 건 아깝지만, 그 대신 수납장이 차지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창가에 작은 의자를 두고, 아이와 함께 앉아 책도 읽고 놀이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겠다. 아이도, 나도 가지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느끼기를 바라며.
무인양품으로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야마구치 세이코 저/최고은 역 | 터닝포인트
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이자, 블로그 ‘적은 물건으로 깔끔하게 산다’로 일본 파워 블로거 1위(라이프 스타일 부문)에 오른 저자가 삶이 바뀌고, 가족이 변하는 365일 깔끔하게 사는 32가지 비결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저한 프리덤 속에 살던 ‘유여성’에서 ‘유줌마’의 삶을 살며 본능을 숨기는 중이다. 언젠가 목표하는 자유부인의 삶을 꿈꾸며.
예스24 홍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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