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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창작자가 처한 운명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역시 악담만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는 이유는 나 역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생이 있었는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출처_imagetoday
나는 공개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비판’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주관적인 잣대로 ‘나쁘다’ ‘별로다’라고 말하기가 싫다. 하지만 그 작품이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면, 공개적으로 예찬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내가 성격이 온건하거나, 내가 비판으로 상처 입은 경험을 반면 거울삼아 생긴 습성은 아니다. 나는 성격이 까탈스러운 사람이고 남의 흉보기 같은 것은 내키면 얼마든지 더 찰지게 할 수 있다. 내 글이나 책이 비판받는 것에도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 똑같은 특성을 놓고도 칭찬과 비판을 엇갈리는 것이 작품이 가진 속성이기도 하거니와 만약 그 작품에 어떤 절대적인 단점이나 결핍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창작자 당사자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판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온갖 평가에 열려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역시 악담만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는 이유는 나 역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생이 있었는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창작자가 바보처럼 보인다고 해도(실제로 바보 같다고 해도) 제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힘든 작업임을 알기에 ‘저 작품은 쓰레기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릴 수가 없다.
또한 타인의 작품을 한 번 비판하는 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그러한 무언가에 대한 부정적인 방향의 계몽은, 경우에 따라 그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키고 만다. 최소한 나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기로, 기왕이면 그 작품의 좋은 점만을 보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구석이 없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치부했다.
데뷔작 이후 오랜 세월만에 새 영화로 컴백한 한 영화감독의 영화 제작기를 읽었다. 오랜 공백 기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고백이었다.
‘하루빨리 다음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 더 글이 안 써지니까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빨리 쓰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는 3년여에 걸쳐 써낸 작품의 시나리오를 접으면서 불면증과 열패감에 시달리고 두 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기일전, 시나리오를 다시 고쳐 쓰고 두 번째 영화를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2주차부터 스크린이 대폭 감소되면서 흥행참패는 기정사실이 되어갔다.
감독의 절절한 영화제작기에 마음이 움직여 나도 그 영화를 보러 갔지만 아쉽게도 내 취향의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물론 ‘재미없었다’고는 도저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 오랜 기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해 도저히 가볍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응원하기 위해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몇 년에 걸쳐서 만든 영화가 고작 짧은 몇 주간 상영되고 사라지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도 안타깝고 먹먹한데 실제 그것을 직접 만든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지금 내 마음을 과일로 표현하자면 한참 변색된 무른 바나나다.’
감독이 자신의 SNS에 적은 글귀가 참 아팠다. 남의 일이지만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창작자가 처한 운명의 본질은 결국엔 같으니까.
현대사회에서는 비판과 외면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처한 운명이다. 게다가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이 강하기에, 우리는 다시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성실함’이다.
지난 일 년간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을 읽어주신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성실히 오래오래 착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