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지산의 심장, 튠업 스테이지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 이모저모
2015년 안산 M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첫 걸음마를 땐 튠업 스테이지. 종합하자면 서울전자음악단, DJ소울스케이프, 동물원의 김창기 등 호화 게스트 군단이 도움을 준 작년의 영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2016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 3일간 9만 명 이상 운집한 관객들의 열정 어린 몸짓들을 뒤로 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메인으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며 헤드라이너를 품은 빅탑 스테이지, 예술 전반부를 아우르려는 주최 측의 열망을 느낄 수 있던 그린/레드 스테이지. 이 두 무대만 즐겼다면 아쉽게도 그건 반쪽짜리 페스티벌이었을 확률이 높다. 단언컨대, 지산의 심장은 튠업 스테이지에서 가장 빠르게 고동쳤다.
2016년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튠업 스테이지를 관통한 컨셉은 바로 'R.I.P. Brothers'였다. 작년서부터 대중음악인들에게 아쉬움을 넘어선 비탄을 선사한 거장들의 죽음. 구구절절 설명보다 단순한 나열에도 빛을 발하는 고인들은 바로 데이빗 보위, 프린스,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 비비 킹, 나탈리 콜 등이다. 아무래도 별이 된 아티스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일 테다. 그렇기에 밤하늘의 별이 가까이 빛나던 지산 포레스트 밸리에 어렸을 적부터의 '롤 모델'을 상실한 여러 튠업 출신 뮤지션들이 모였다. 7월 22~23일 양일간 헌정으로 수놓아진 분장과 세트리스트로 무대를 준비해온 이들 덕분에 지산에서의 낮은 더위에도 풍요로웠고 밤은 남들보다 아름다웠다.
7월 22일 금요일 오후 4시경, 튠업 8기 해리빅버튼을 반기는 커다란 환호성을 시작으로 튠업 스테이지의 막이 올랐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근처에 준비된 그늘막 아래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관객들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작년 12월 말 작고한 영국 헤비메탈 대부 모터헤드의 프론트맨 레미 킬미스터(Lemmy Kilmister)를 그리며 「The game」, 「Ace of spades」 등 인기 레퍼토리로 분위기를 띄우고 예나 다름없이 하드록으로 내달리던 그들. 관객들은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이 광란적으로 움직이며 심지어 슬램까지 즐기는 모습이었다. 작년 안산M밸리에서 모터헤드와 같은 날 같은 무대에 오른 밴드기에 더욱 뜻 깊이 다가왔던 이 순간을 올해 지산 최고 중 하나로 꼽은 관계자들이 많았다.
1시간 정도의 소강상태를 가진 후 이어진 무대에 오른 이는 튠업 15기 남메아리 밴드. 전 공연 쉴 새 없는 로킹에 지쳐버린 관객들은 초반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자유로이 잼을 즐기며 건반 위를 뛰놀던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의 모습에 반해 일어나 몸을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2월 급작스레 세상을 등진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심장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의 명곡 「That's the way of the world」, 「September」 등은 연주만으로도 멜로디를 표현해내는 밴드의 역량에 힘입어 새로운 퓨전 재즈로 거듭났다. 모리스 화이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선곡이었기에 밴드 보컬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키보드와 숄더키보드(키타)를 바꿔가며 재미난 선율을 주조하는 남메아리 덕에 관객의 자연스런 흥얼거림이 유도되는 장면은 이번 지산 포레스트에서의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튠업 스테이지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오후, '로다운30-티건 앤 사라(Tegan And Sara)-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이소라-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로 이어진 페스티벌을 즐기고 온 관객들 피로를 달래준건 바로 두 남녀로 이루어진 밴드 이채언루트, 그리고 휴키이스X박소유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와 밴드 솔루션스의 베이시스트 권오경이 만난 튠업 16기 이채언루트, 대중음악 여러 장르를 완벽히 포괄하며 정의하기 힘든 음악을 하는 그들은 작년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별이 되어 떠난 나탈리 콜 추모 무대를 꾸몄다. 준비해온 입체적 무대와 아름다운 의상, 그리고 하모니가 삼위일체를 이루던 순간 노래는 또 하나의 별로 하늘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올랐을 테다.
짧은 휴식 후 이어진 두 개성파 싱어송라이터가 만나 유려하면서도 혼란 가득한 청춘의 음악을 하는 휴키이스X박소유의 무대. 튠업 4기 고참 격으로서 데뷔 싱글 「Milk tea'에 이어 지난 6월 발표한 두 번째 싱글 「Jasmine hotel」의 작업 모티브가 되어 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기리며 준비했다. 1971년 발표된 그의 대표곡 「Life on Mars」을 지나 영화 <마션> 수록곡 「Starman」을 거쳐 2013년 앨범 <The Next Day>의 「Where are we now?」까지, 비교적 너른 세트리스트로 거장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을 표방해 울림을 선사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 첫 날 밤이 깊어감과 동시에 이번 무대를 마지막으로 입대 예정인 휴 키이스(Hugh Keice)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더위가 물러나지 않은 2일차 낮 공연의 포문을 알린 건 청춘을 노래하는 튠업 13기 4인조 혼성밴드 후추스. 전날 밤 헤드라이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우연의 일치인 양 밴드 네임이 맞닿아 있는 그들은 비록 무대 규모나 관객 수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최선의 무대를 선보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를 추모하는 소울/펑크로 공연을 시작해 코러스 라인이 돋보이던 첫 곡 「사춘기'를 지나 위트 있는 가사의 펑크(Punk) 「개나 기를까」와 더위를 식히는 「등목」으로 지쳐있는 관객들의 흥을 돋을 수 있었다.
이어진 외양으로나 음악 성향으로나 시애틀에 위치한 지미 헨드릭스 묘역을 박차고 나온듯한 파워 트리오 튠업 16기 블루터틀랜드(Blue Turtle Land)의 무대. 작년 상반기 별세한 블루스의 제왕 비비 킹을 기억하고자 그의 대표곡 「Rock me baby」를 사이키델릭 스타일로 편곡해 준비해왔다. 키보드 기타(키타) 안에 내장된 사운드를 통해 제프 벡(Jeff Beck)을 연상시키듯 여러 톤을 소화하며 「꽃잎을 따라간 고양이」, 「변화의 바람」 등을 연주한 밴드는 무대 말미 키타를 내던지는 일종의 제의(祭儀)로 마무리하는 쇼맨십까지 선보였다. 종합적으로, 그들이 서울전자음악단의 자리를 계승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공언한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얼터너티브 록/펑크(Punk)를 구가하는 네임텍이 오후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불과 몇 달 전 거짓말처럼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뮤지션들의 뮤즈, 팝의 왕자, 유일무이한 천재 프린스(Prince Rogers Nelson)를 추도하는 그들이었다. 몸 전체에 프린스와 관련된 페인팅을 하고 나타난 밴드는 프린스가 1984년 발표한 동명 영화 사운드 트랙 명반 <Purple Rain> 첫 곡 「Let's go crazy」로 무대를 장식했다. 크라잉넛 김인수를 초빙해 함께 하며 페이스 페인팅이 지워질 정도의 악과 깡을 보여준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제 정신이 아닌 정신'의 발로였다. 이어진 네임텍의 곡 「Poison apple」의 치달리는 무대와 백그라운드 영상의 조화, 얌전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대에서 돌변하는 밴드의 전형을 보여준 무대가 틀림없었다.
튠업 스테이지 휴식시간 중 치러진 장기하와 얼굴들-버디(Birdy)-김창완 밴드-세카이 노 오와리(Sekai No Owari)-제드(Zedd)의 무대도 명불허전이었지만,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가장 빛나던 순간을 꼽자면 늦은 밤 시작한 튠업슈퍼밴드의 무대였다. 튠업 12기 밴드 코어매거진 리더 류정헌의 주도 아래, <R.I.P Brothers>라는 무대 콘셉트 본연에 충실히 모인 서로 다른 장르 12인. 이미 작년 들국화 30주년을 맞아 제작한 헌정 앨범 <들국화 30>으로 함께한 바 있는 아시안체어샷, 마호가니킹, 남메아리에 더해 ABTB, 아홉번째, 네임텍 등의 멤버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뮤지션을 기리는 가장 본질적 방법인 그들의 음악을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택했으며, 추모 대상 거장을 2015-16년에 세상을 등진 아티스트에서 범위를 넓혀 그들의 롤 모델을 전방위적으로 아울러 기리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슈퍼밴드는 첫 곡으로 저항의 상징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을 위하며 록 페스티벌에 제격인 「Come as you are」을 선곡했다. 아홉번째 김한성의 그런지 보컬이 돋보인 이 지점을 지나 밴드는 ABTB 박근홍 위주로 메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호가니 킹의 혼성 보컬이 주도해 모든 관객의 떼창을 유도한 프린스의 「Purple Rain」에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록 페스티벌 정신은 모두에게 흩뿌려진 상태였다. 이어 3년 전 갑작스레 스러진 들국화의 주찬권에게 선사하는 「걱정말아요 그대」, 재작년 모두에 가슴에 멍이 된 마왕 신해철을 가슴으로 소환해 함께한 마지막 곡 「그대에게」 등에서는 모든 관객이 어우러져 대형 기차놀이를 거행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감동의 40분을 뒤로 한 밴드가 끝난 후에도 아쉬움에 바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 쉽사리 보기 힘든 그런 무대였다.
페스티벌 내내 24시간 바쁘게 달려온 관객들을 맞이한 건 튠업 헌정 무대 마지막 주자로 나선 혼성 개러지 밴드 24아워즈. 양성을 모두 가진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데이비드 보위처럼, 그들도 성별 불분명하게 글램 가득한 무대를 꾸며왔다.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얼굴에 큼지막한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온 밴드는 늦은 밤 자리를 지키는 팬들을 위해 볼륨을 높인 「Get It on」, 「Jane」 등 신나는 세트리스트로 잠을 깨웠다. 이번 튠업 가장 섹시한 무대를 꼽자면 24아워즈로 큰 이견 없이 일치할 것이다.
올해 페스티벌 빅탑, 그린 스테이지에서 활약한 튠 업 출신 뮤지션들의 일면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한 해 가장 더운 절기 대서(大暑)를 맞은 첫 날 메인 스테이지 불볕더위에 찌든 관객들을 뒤엎어 뜨거운 슬램까지 유도한 튠업 9기 아시안체어샷. 그들이 선사한 조선 록은 말 그대로 의자로 머리를 강타하는 록 스피릿의 계도이자 발로였다. 둘째 날, 메인 스테이지를 활짝 연 밴드는 바로 최근 C9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튠업 5기 바이바이배드맨. 작년 발표한 소포모어 앨범 <Authentic> 곡 위주로 구성한 세트리스트를 준비해 페스티벌 공기를 청량한 리프로 물들이다가도 몽환적 사운드로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등 주특기를 과시했다. 대다수 곡의 가사가 영어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미 흐느적거리고 있는 관객의 마음에 큰 동요는 없었을 테다.
무심하던 하늘이 고맙게도 간간히 비를 흩뿌려주어 더위가 어느 정도 물러난 마지막 날, 빅 탑과 그린 스테이지 각각의 포문을 알린 이들은 누가 보아도 록 음악의 양극점에 위치한 두 밴드 튠업 16기 ABTB(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와 15기 뷰티핸섬이었다. 아직까진 게이트 플라워즈 보컬로 더 유명한 박근홍과 한음파의 베이시스트 장혁조를 중심으로 모인 '홍대 어벤저스' ABTB는 전날 헤드라이너 제드(Zedd)의 EDM 잔향이 배어있던 무대를 단번에 그런지 가득한 시애틀로 탈바꿈시켰다. '록 성골' 관객들을 단번에 매료시킨 밴드의 매력적 세트리스트로 인해 곧 발표될 데뷔작의 기대감은 드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테다. 올해 4월 첫 정규 작 <Destiny>로 부드러이 활동을 개시한 뷰티핸섬이 습기 가득하던 무대에 오르던 그 때, 박제된 심미적 풍경을 조심스레 바라보는 듯 관객들의 비현실적 감각이 꿈틀거렸다. 페스티벌 첫날부터 함께 즐기던 팀의 중추인 보컬 에디 전은 마지막 남은 기력을 모아 감미로운 목소리를 선사해 새로운 '대세'가 되기에 충분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2015년 안산 M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첫 걸음마를 땐 튠업 스테이지. 종합하자면 서울전자음악단, DJ소울스케이프, 동물원의 김창기 등 호화 게스트 군단이 도움을 준 작년의 영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스테이지 자체도 2년차의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웃어 넘길만한 역량을 과시했으며 지산으로 자리를 옮겨 새 얼굴을 선보인 무대 외향과 음향도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악기 안에서의 피치를 세밀하게 조율하는 튜닝(Tuning)을 넘어 악기 자체를 개조함으로 성능향상을 꾀하는 튠업(TuneUp). 신인 창작 뮤지션들을 '튠 업'해주며 대중 음악계와의 가교 역할을 도맡은 그들은 오늘도 어두운 곳에서 음악의 끈을 놓지 않는 인디 신의 한 줄기 등불을 밝히는 촛불 하나다.
이기찬(Geechanlee@gmail.com)
사진 제공 : 지산 밸리록, CJ문화재단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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