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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 그림이 말을 걸어왔다!

『명화가 내게 묻다』 최혜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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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느낌을 묻어버리는 문화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미술관에 가서도 자신의 느낌과 감상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내가 가진 이 느낌이 맞는 감상일까?’ 의심하는 거죠.

『명화가 내게 묻다』의 저자 최혜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정해진 시간 내에 치열한 마감 전쟁을 치러야 하는 기자 생활을 해 왔다. 그녀는 감각과 사고가 무뎌진다 느껴질 때,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접해도 가슴 뛰지 않는 날이 계속 될 때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늘 미술관이었다. 언제나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그림은 인물화였고, 그들이 건네 오는 그림 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투영해보곤 했다.

 

『명화가 내게 묻다』는 저자가 연재해온 글에 온라인상에서는 미처 풀어놓지 못했던 흥미로운 화가와 그림 이야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생각들을 더해 한층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삶이 익숙함을 넘어 무뎌진다 느껴질 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 조금 더 마음이 단단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 당장 낯선 도시의 미술관으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 이 책과 함께 잠시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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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에서.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미술 시간이 흥미로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오지선다형 보기 중 하나의 정답을 고르기 위해 지식을 달달 외웠던 기억만 있어요. 장 프랑소와 밀레가 속하는 미술사조를 맞추면 4.1점을 얻었고, 중세 미술 양식의 발전 순서를 ‘카타콤-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 순서대로 잘 배열하면 3.6점을 얻는 식이었어요. 남이 짜놓은 질문지에 정답으로만 대응하는 미술은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어요.

 

그런 저에게 한 명의 사람이 왔습니다. 열아홉 살 여름에 동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동용 서적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읽은 게 계기였어요. 이전까지는 그저 자기 귀를 자른 미치광이 천재 화가인 줄 알았던 반 고흐의 영혼을 별안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스물넷 늦가을에는 그의 무덤을 보기 위해 프랑스 시골 마을에 갔습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차이가 뭔지, 왜 고흐는 표현주의의 원류이고 세잔은 입체파의 시초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빈센트라는 딱한 사내와 그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동생이었던 테오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저를 그곳까지 이끌었어요. 

 

무덤에 찾아가 만난 건 둘 뿐이 아니었습니다. 화가의 삶에 감정이입 하면서 제 안의 허기, 이해와 공감을 갈구하는 마음 역시 마주보게 되었어요. 고흐가 앞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저를 따스하게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무덤 앞에서 그와 저 사이에 있는 1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감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에게 미술관은 작품을 보러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새롭고 흥미롭고 매혹적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화가의 그림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그림이 있는데, 말하고 싶은 주제의 그림만 모아서 소개할 수 있었던 방법, 혹은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눈에 담은 절대량이 많았습니다. 직접 방문한 전 세계 50여 개 미술관에서 감상한 작품 외에도 구글 아트프로젝트(www.google.com/culturalinstitute)에서 하이퍼링크로 탐험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유럽 미술관의 온라인 갤러리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유러피아나(www.europeana.eu) 사이트도 좋아하고요. 데이터베이스 양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정리 정돈하는 저만의 방식이 필요했어요. 시대나 예술 사조, 국가, 오브제, 기법 등 정보와 지식으로 작품을 분류하는 것은 이미 대형 미술관과 구글에서 흠잡을 데 없이 끝냈기 때문에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식이 필요하면 검색을 하면 되니까요. 제 흥미를 자극한 건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정리 정돈 방식이었어요. ‘거울’, ‘머리 손질’, ‘요리’, ‘편지’와 같은 일상 속 키워드나 ‘기대감’, ‘권태’, ‘분노’ 등의 감정 키워드로 작품들을 정리해 두었고, 그게 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월요일을 좋아할 수는 없을까요?’, ‘게으름을 피우면 왜 마음이 불안할까요?’, ‘민낯이면 안 될까요?’ 등 20~30대의 보편적인 고민을 주제를 책에 담아내셨는데, 이러한 질문을 꼽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일하는 30대 여성이기 때문이죠. 저야말로 보편적인 한국 사람이고요(웃음) 책에 실린 23개의 물음은 모두 제 마음에 일정 시간 이상 고여 있던 것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그림 한 점이 ‘고민 웅덩이’에 파문을 일으키면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고 인문학 책을 찾아 읽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먼저 개인적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림이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생각하게 만들었고,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해야만 하는 공부’에 익숙한 한국 독자에게 ‘자신의 느낌을 믿고 따라가는 공부’의 가능성과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주입된 한국 사회의 경쟁 논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 고민을 진솔하게 드러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죠. 독자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며 ‘그런데 나는 어떻지?’라고 물음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전작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은 여행 에세이였고, 이번 책 『명화가 내게 묻다』 역시 미술관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입니다. 여행을 계속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여행은 ‘장소’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이 신선한 자극을 주는 이유는 ‘자, 이제부터 나는 새록새록 한 시선을 가지고 기꺼이 이곳을 탐험하겠어!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느낄 거야’라는 태도와 의지가 있기 때문이죠. 제 경우는 이렇게 뭔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저만의 관점으로 감탄하는 삶을 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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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가 내게 묻다』 표지에 실린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코펜하겐 오르드룹고르 미술관

 

패션잡지 에디터로 오래 일한 경력이 있으신데요, 옷에 대한 욕망을 주제로 그림을 소개한 파트가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내가 입은 옷을 보라’는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도 어느 정도 자신을 나타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패션지 에디터 선배이자 에세이스트인 김경 작가는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에서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며 취향을 ‘영혼의 풍향계’라고 명명했습니다. 취향의 관점에서 본다면 옷이나 그림이 같을 겁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가 나를 설명하는 것처럼 어떤 명화를 좋아하는지로 나를 설명할 수 있죠. 제가 책에서 문제제기 하고자 했던 건 실은 ‘취향’ 보다는 ‘소유’의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가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보통 사람이 명화를 오리지널 원화로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명화는 애당초 소유욕이 끼어들 수 없는 대상입니다. 공공재 성격이 강하죠. 반면 옷은 그렇지 않아요. 패션 브랜드가 자극하는 것은 언제나 소유욕입니다. 특정 상표를 구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려 한다던가 브랜드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설명해줄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자기 성찰의 필요성이 사라집니다. 그 위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미술 작품을 딱 하나 소장할 수 있다면, 어느 작가의 어느 작품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10년 동안 50여 개의 해외 미술관을 방문했지만 어떤 작품을 ‘갖고 싶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오리지널 작품을 실제로 보면 인쇄된 도판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긴 합니다만, 어떤 작품을 소유해서 혼자만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진 않습니다. 복제본을 인쇄한 엽서나 도록 정도로 충분히 제 소유욕은 충족할 수 있어요. 저는 미술 시장을 신뢰하지 않아요. 취재 중 만난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심상용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장은 시장일 뿐입니다. 시장은 가치의 거래가 일어나는 중요한 곳이지만, 가치를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도덕적이지도, 특별히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시장은 궁극적으로 예술에 관심이 없습니다. 팔릴 만한 것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가격이 곧 미적 가치를 담보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담론이 있다면 그것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 일쑤인 미술 경매 시장보다 빈부격차나 시공간을 초월해 미술에 대한 접근성을 열어준 구글 아트프로젝트가 저에겐 더 흥미롭고 ‘예술적’이라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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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붐비는 구석에는 늘 렘브란트 작품이 있다.

 

그림을 어려워하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고픈 방법이나 먼저 보면 좋을 작가의 작품이 있나요?

 

우리는 느낌을 나누는 것을 낯설어해요. 가정이나 학교에서 감정과 생각에 대해 대화한 경험이 적고, 뚜렷한 목표의식 아래 효율적으로 정답만 고르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어디에서 읽은 정보, 권위자가 ‘이게 요점’이라고 정리해준 내용을 흡수하는 것은 잘 하는 문화랄까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자기 느낌을 묻어버리는 문화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미술관에 가서도 자신의 느낌과 감상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내가 가진 이 느낌이 맞는 감상일까?’ 의심하는 거죠. 그렇게 의심이 드는 이유는 자신의 느낌보다 중요하고 권위 있는 정론이 따로 있을 거란 막연한 전제 때문이고요.

 

자기 자신의 느낌을 더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먼저 봐야 할 작가, 꼭 알아야 할 작가 같은 건 없어요. 일단 많이 보세요. 인터넷이든 전시회든 책이든 다 좋아요. 유명한 화가든 무명 화가든 개의치 마시고 어떤 작품이 내 마음에 울림을 남긴다면 느낌을 따라가보세요. 화가에 대해 조사해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세요.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지, 비슷한 화풍을 지닌 다른 화가는 없는지, 그의 어떤 면이 내 마음을 울리는지 첫인상의 정체를 파악해보세요. 나만의 각별한 그림 한 점, 편애하는 화가 한 명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대단한 황홀이랍니다.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천천히 알아가는 기쁨, 스스로 값진 것을 발견하는 쾌감을 더 많은 분들이 누리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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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내게 묻다최혜진 저 | 북라이프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록해온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일, 관계, 마음 그리고 나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진솔하게 풀어낸 그림에세이다. 저자는 일상 속 순간을 담아낸 그림에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문화, 예술에 관한 풍성한 스토리들을 더해, 그림 속 인물들과 마주하면서 독자 스스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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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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