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호러의 우아함 : <컨저링 2>
가장 일상적인 순간이 낯설어지는 때
나의 공간과 생활 속으로 슬금슬금 뜻하지 않은 것이 기어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TV 화면, 종일 눈앞을 떠나지 않는 모니터, 누군가로부터 불쑥 걸려오는 전화벨 등 가장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공포는 배가 된다.
제임스 완은 한동안 그 맥이 끊겼던 공포영화 시장을 두 번이나 되살리며 공포영화 시리즈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 시작은 2004년의 <쏘우>였다. 1996년 웨스 크레이븐이 화려하게 부활시킨 청춘 슬래셔 <스크림> 시리즈와 1999년 다니엘 미릭의 <블레어 윗치>가 촉발시킨 모큐멘터리 공포영화가 우후죽순 이어지면서 시들해질 즈음이었다. 영문 없이 잡혀 온 사람들이 겪는 죽음의 공포와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 속에 오롯이 담긴 밀실 공포, 하드고어에 가까운 표현, 흥미로운 극적반전까지 담아내면서 제작비 대비 50배의 수익을 냈다. 특별한 장치도 특수효과도 없었다. 오직 아이디어로만 승부한 영화의 승리였다. 그렇게 우후죽순 비슷한 분위기의 B급 공포영화들이 만들어질 만큼 <쏘우>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하지만 제작자로 참여한 <쏘우> 시리즈는 점점 더 잔인해지는 것과 반비례하게 인기와 완성도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제작자에서 다시 감독으로 복귀한 제임스 완은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을 통해 새로운 장르 영화로서의 공포영화를 새롭게 직조해낸다. 특히 2013년에 만들어진 <컨저링>은 실화를 바탕으로 음습하게 조여 오는 공포를 구축하며 전 세계적인 흥행작이 된다. 제임스 완은 잔인한 신체절단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쏘우>와 정반대 전략을 선택했다. 악령에 사로잡힌 저택이 등장하는 오랜 하우스 공포영화의 스타일에 엑소시즘을 가미한 초자연적 미스터리 공포를 녹여낸다. 그렇게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공포영화의 장르적 습성들을 도식적으로 나열하면서 새로운 공포를 직조해내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제임스 완은 드러내지 않기에 더욱 무서운 동양 공포영화의 정서를 서양 장르영화의 관습 속에 녹여낸다. 작품의 완성도에는 캐스팅도 큰 몫을 한다. 드라마에 최적화된 연기파 배우 베라 파미가와 패트릭 윌슨은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통해 소름 돋게 무서운 공포영화에 살포시 품격이라는 베일을 씌운다. 그래서 이 영화 무서우면서도 참 우아하다.
제임스 완 감독은 사람들이 낯선 것에 대해 근원적인 공포를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무서운 순간은 가장 일상적인 순간 혹은 공간이 낯설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나의 공간과 생활 속으로 슬금슬금 뜻하지 않은 것이 기어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TV 화면, 종일 눈앞을 떠나지 않는 모니터, 누군가로부터 불쑥 걸려오는 전화벨 등 가장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공포는 배가 된다. 그래서 많은 공포영화들이 가족과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은 따분할 정도로 안온하고 일상적인 곳이다. 제임스 완 감독은 아무도 나와 가족을 방해하지 못하는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공간이 달라지는 순간 느끼는 공포를 가족 호러라는 이야기 속에 담아낸다.
그런데 이 영화 특이하다. 보통은 공포의 효과를 내기 위해 깜짝 쇼를 벌일 법도 한데 이야기의 결을 망치는 반전이나 호러 쇼는 아예 없다. 오히려 인물의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춰 관객들이 인물들에 동화되게 한다. 2013년 <컨저링>은 그래서 조금 더 쫀쫀하게 밀도가 느껴지는 영화다. <컨저링>은 서사 속에 공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영화였다. 국내 개봉한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것도 이 작품의 무서움에 앞서 충분히 설득 가능한 작품의 완성도가 크게 기여했다.
3년 만에 찾아온 제임스 완의 <컨저링 2>는 기대한 만큼 더 무서워지지는 않았지만 속편이 빠지기 쉬운 유혹에서 벗어나 1편처럼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달라지는 인물의 심리변화를 차분하게 들여다보면서 드라마를 켜켜이 안정적으로 쌓아가는 영화다. 1편의 주인공들이 고스란히 등장하는 것도 반갑다. <컨저링>에서 1970년 롱아일랜드에서 악령을 마주쳤던 워렌부부는 <컨저링 2>에서는 1977년 영국 엔필드로 시간과 장소를 옮겨 다시 한 번 초자연 현상과 마주한다. 엔필드의 호지슨 일가는 정체 모를 심령 현상으로 괴로워하고 엄마 페기(프랜시스 오코너)와 네 남매에게 일어난 기이한 일은 영국판 아미타빌 사건이라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모은다. 교회의 요청을 받아 워렌 부부는 호지슨 저택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실을 향해 다가가지만, 그 거리가 좁혀질수록 악령의 실체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과연 한 가족이 겪고 있는 지독한 일이 사실이긴 한 건지,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인지 고풍스러운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졌다가 다시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소름 돋게 만들었던 1편에 이어 <컨저링 2> 역시 자극적인 장면 없이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1편의 성공에 흔들리지 않고 관객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노력 없이 오히려 가족 사이에 스며든 공포를 소재로 한 고풍스러운 드라마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여전히 베라 파미가와 패트릭 윌슨은 안정적으로 드라마를 이끈다. 둘의 지적이고 차분한 느낌이 일종의 우아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여전하다. 공포영화로는 다소 길다고 할 수 있는 2시간의 러닝 타임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인물 간의 설득력 있는 관계와 복잡하지만 균형감 있는 플롯 덕분이다.
1편과 마찬가지로 2편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결국 가족의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주제는 공포영화에 어울리지 않지만, 제임스 완은 그 잔잔하고 애잔한 정서를 놓치지 않는다. <컨저링 2>의 근원적 공포의 바탕에는 아버지의 부재가 함께 한다. 바람난 아비 덕분에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남아야 하는 어미와 자식들이 겪어야 하는 근원적 공포, 그 정서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악령에 사로잡힌 가족을 중심으로 직조된 서늘한 정서는 그렇게 알알이 돋는 소름으로 관객들의 심리에 박힌다. 깜짝 놀라는 공포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밋밋하고 심심할 수도 있지만 가족 드라마 속에 담긴 무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관객에게는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이다.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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