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감성적 인간, 퍽이나
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내가 그들을 향해, 누가 시켜서 한 것이냐, 다 당신들이 아쉬우니 선택한 직업이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은 왜 나에게, 당신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데 우리가 당신에게 대기실과 물 한잔을 줄 이유는 없지 않는가, 라는 방식의 행동을 하는 것일까? 노동자가 또 다른 노동자를 향해 보낸 심정적인 연대가 갑질의 무례함으로 되돌아 올 때, 받는 이의 상처는 두 배가 된다.
노비 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어쨌든 지금 있는 그 모든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강한 인공지능이 생기는 순간 인류는 가장 큰 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엘론 머스크와 스티븐 호킹이 말하는 인류멸망이죠. 카네기멜론대학의 엔드류 무어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강한 인공 지능이 등장하면 인류는 멸망한다. 근데 그게 왜 나쁜가? 인류가 멸망하는 것이 왜 나쁜지 한번 설명해봐라' 라고 말이죠.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338쪽
최근 두 번 크게 속상했다. 한 번은 소주잔 안에 똑 하고 눈물 한 방울 떨어질 정도였고 또 한 번은 당혹감에서 시작했다가 소름이 돋더니 급기야 분노가 된 경우였다.
첫 번째는 입찰 때문이었다.
조달청 <나라장터>
이전에 나는 어느 칼럼에서 비행기를 자본주의 계급 풍경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썼다. 이코노미 좌석 칸을 나오면서 동선상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비즈니스 칸의 넓은 좌석. 당신이 새우처럼 웅크리고 오는 동안 돈 있는 분들은 이렇게 안락하게 비행 했음을 꼬리 칸의 사람들은 직면한다.
입찰은 기회의 균등으로 포장된 가장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이다. 최소한 2016년 한국에서는 그렇다. 과도하게 많은 입찰 서류를 준비하고, 기획서를 작성하며, 직접 그것들을 발주기관에 찾아가 제출하는 행위는 비효율적인 업무 절차가 일부 있더라도 입찰 참여자가 선택한 과정이니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들에게 입찰 참여를 요구하지 않았다. 부당하면 하지 마라” 의 정신 속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다. 죄인이 된 분위기 속에서 제안서 발표를 한 후, 박수는 커녕 ‘수고했습니다’ 라는 인사조차 받지 못하는 것도, 탈락을 한 후 제안서 반송은 커녕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위로 조차 받지 못하는 것도, 입찰 시장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날의 입찰도 그랬다. 꼼꼼히 제안서를 작성해 10 부를 복사한 후 요구한 서류와 함께 직접 제출했다. 몇 일 후 제안서 발표를 하러 발주처로 갔다. 이전의 마음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구의역 전철 사고가 난 직후라는 것이고 발주처가 그 산업과 관련된 곳이라는 점이었으며, 그 때문에 내 마음은 그곳의 직원들을 치유하는 나의 프로그램에 더 정성을 쏟았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민중의 소리
나는 맨 마지막 발표자였고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대기실은 없었다. 로비 한 쪽에서 발표자들은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음료수는 고사하고 물 한잔이 따로 제공되지 않았다. 사실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그 전날의 서초동 정부 기관에서는 의자조차 주지 않아 창틀에 앉아 대기했으니까. 그럼에도 의자 조차 있는 이곳의 세시간 대기 시간을 더 지옥같이 느꼈던 것은, 나의 마음이 유독 더 많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방 속에 넣은 컵라면도 먹지 못한 비정규직 알바생의 비극적 죽음 옆에는 어둠만 보이는 철로를 달리다 관제실에서 어떤 주의운전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참변을 낸 기관사가 있다. 트라우마는 평생 그를 괴롭힐 것이다. 없는 사람들이 땅 속에서 이렇게 죽어가고, 살아서도 죽음 같은 삶을 산다. 그런 내 마음이 물 한잔 대접 받지 못하는 푸대접으로 돌아올 때, 눈물까지 날 정도로 속이 상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을 향해, 누가 시켜서 한 것이냐, 다 당신들이 아쉬우니 선택한 직업이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은 왜 나에게, 당신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데 우리가 당신에게 대기실과 물 한잔을 줄 이유는 없지 않는가, 라는 방식의 행동을 하는 것일까? 노동자가 또 다른 노동자를 향해 보낸 심정적인 연대가 갑질의 무례함으로 되돌아 올 때, 받는 이의 상처는 두 배가 된다.
두 번 째 속상함은 판교에서였다.
업무 미팅 후 참석자들과 노천에서 맥주를 마셨다. 한국의 실리콘벨리라는 이름답게 네이버, 카카오 빌딩이 눈 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퇴근을 한 젊은 직장인들이 우리처럼 노천 테이블에 앉아 치맥을 즐기고 있었다. 그 분주함이, 활력이, 치킨 튀기는 냄새가, 여름 밤의 시원한 바람이, 고층 빌딩의 불빛이 모두 술맛을 살려냈다. 그러다가 물었다. “재작년인가, 공연보다 환풍구로 사람들이 떨어져서 여럿 죽고 다쳤잖아요. 그게 어딘가요?” 거래처 직원이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여기요”
세상에, 사람들이 안전 펜스 주변에 태평하게 몰려 앉아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바로 이 곳이 불과 20개월 전 16명의 생명을 앗아간 바로 그곳이었다니. 공연 당당 직원은 자책감으로 투신 자살을 하고 기러기 아빠, 금슬 좋은 부부 등이 창졸간에 저 세상으로 간 현장이 바로 여기였다니.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펜스를 둘러보았다. 국화꽃이나 비석은커녕, 사고의 현장이라는 사인판 하나 없었다. 누구일까? 이 사고의 기억을 몽땅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치킨과 맥주와 커피와 음식을 파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이 빌딩의 소유자일까? 행여,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이 밤에 죽은이가 너무 보고 싶어 사고의 현장에 온다면 이 들뜨고 흥겨운 술판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낄까? 원혼이 있다면 죽은자들은 산자들의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서운할까?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재구성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에 위의 노비문장이 나온다. 곧 다가올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지구에 있어야 하지? 인공지능은 공리적인 입장에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구 전체로 볼 때 더 낫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저자는 상상한다. 나는 최근의 내 속상함의 순간에 앤드류 무어 식의 반문이 자꾸 떠올랐다. “왜 인류가 멸망하면 안 되는데?”
김대식 교수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결국 우리가 기계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겠죠. 다시 말해, 내가 하는 일이 기계 같다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진 유일한 희망은 '우리는 기계와 다르다' 입니다. 그 차별화된 인간다움을 가지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350쪽)
인간은 차별화된 인간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과연,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글쎄, 퍽이나.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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