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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번역가 ①] 김석희 “번역자가 아니라 번역가를 꿈꿔라”

『벤허』 완역한 김석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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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에서 『벤허』의 번역을 청탁할 때 편집자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하나는 『벤허』가 다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을 작가 루 월리스의 현손녀가 고쳐 쓰고 있다는 거예요. 그 유명한 영화 <벤허>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새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는 두 번 놀랐습니다.

<채널예스>가 매달 한 명의 번역가를 만나, 이 시대에 번역가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김석희 번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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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가 루 월리스의 장편소설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를 번역했다. 우리에겐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로 익숙하지만, 그보다 80여 년 전 출간된 소설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는 영화의 명성을 능가하는, 미국 소설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원작자 ‘루 윌리스’의 현손녀가 현재 『벤허』를 고쳐 쓰고 있다는 것. 국내 번역작은 이번 김석희 번역가의 완역이 처음이다. 『벤허』는 오는 7월 7일,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두 번째 소설집 『하루나기』를 펴낸 김석희 번역가는 제주 애월 작업실에서 꾸준히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등단한 김석희는 한때 창작과 번역을 병행했으나 소설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을 발표한 뒤에는 번역에만 종사하고 있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 많은 책을 번역한 김석희 번역가를 <채널예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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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번역이야


지난해에 24여 년 만에 신작 소설집을 내놓으시면서 소설이 애인처럼 손짓을 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 번역은 조강지처처럼 여기신다고 넘겨짚어도 될까요?

 

1988년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우연찮게 번역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의 사회생활은 창작과 번역이라는 떡을 양손에 하나씩 거머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 셈이었는데, 둘 다 놓칠 수 없는 떡이었습니다. 문학의 길을 꿈꾸며 어렵사리 등단한 나로서는 소설가라는 신분도 더없이 소중했고, 생활의 방편이자 애써 익힌 외국어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번역 또한 소중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번역은 조강지처 같고 소설은 애인 같다’는 흰소리를 하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다녔지요.

 

하지만 그렇게 10년쯤 지내고 나자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능력의 한계 때문이지요. 이제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서 집중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창작의 어려움 때문에 소설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소설에 애정이 크셨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욕망과 창작의 갈증을 대리만족의 형태로나마 달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번역하는 정도의 작품을 써낼 자신이나 능력이 없다면 아예 글쓰기를 작파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렀던 거예요. 그저 그런 소설을 쓰느라 끙끙대느니, 차라리 좋은 책을 번역하는 게 훨씬 뜻있는 작업이자 수지맞는 사업임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과감히 애인과 헤어지고 아내한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10여 년을 알콩달콩 살았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옛 애인이 생각나는 겁니다. 한때 문학에 홀렸던 남정네의 주책없는 바람기가 다시 동한 것일까요? 아니면 ‘문학, 이 요망한 것!’이 나를 다시 찾아와 한번 놀아보자고 꼬드기는 것일까요? 글쎄,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혹에 슬쩍 넘어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그래서 작년 말에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작품들을 모아 소설집 『하루나기』를 펴냈고, 요즘은 번역을 잠시 밀쳐둔 채 장편 하나 마무리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번역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전문가로서의 번역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는 느낌인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번역가로서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문제는 경제야!”를 본떠서 “문제는 번역이야!”라고 말하고 싶군요. 연전의 신경숙(『엄마를 부탁해』)도 그렇고 이번에 한강의 경우도 그렇지만, 능력과 성의를 가진 한 독자가 번역을 도맡아 시종일관 책임지고 애쓰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지요.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번역 작업은 그 실태가 다분히 문제적이었어요.

 

10여 년 전의 일이 기억나는군요. 어느 중견 소설가가 우편물을 보내왔는데, 그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원고가 들어 있었어요. 그의 부탁인즉, 한번 읽어보고 번역이 어떤지 검토해달라는 것이었지요. 내 독후감은 이랬습니다. 1만 단어 수준의 작품을 2, 3천 단어 수준으로 ‘반역’했다는 것. 그래서 그에게 전화로 말했지요. “선생님 소설이 청소년물로 둔갑했더군요.”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외국에서 읽기 쉽게 하려고 그렇게 수준을 낮추었다”고 번역자가 변명하더라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해되는 면이 없지도 않지만, 그렇게 번역된 책을 외국 현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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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지원 사업도 꾸준하게 진행되지 않았나요?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은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꽤 활발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점은 필경 위의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이런 곳에서 지원하는 번역 사업을 보면 한국인과 외국인의 조합으로 공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과 외국어에 서툰 한국인의 결합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행여 '이인삼각'의 절름발이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 지적하는 싶은 것은,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질적인 성과를 도모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많은 작가들의 요구, 문단 내의 여러 입장을 두루 고려하고 배려하느라 너무 많은 작품을 지원 대상으로 뽑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책들을 번역해도 그 대부분이 외국에서는 서점에 나오기는커녕 기증받은 도서관 한구석에서 먼지나 폴폴 뒤집어쓰고 있다는 현실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되겠지요.

 

8ㆍ8ㆍ8법칙에 따라 움직이신다는 글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직장인들도 지키기 힘든 규칙 같은데요. 지키지 못하신 적은 없나요?

 

내가 번역으로 먹고 사는 일은 일종의 ‘재택근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직장인 같은 태도로 생활방식에 리듬을 갖추지 못하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지요. 번역 하면 꽤 고상한 작업처럼 들리지만, 사실 나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면, 그것은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타임카드를 찍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직장인들도 하루에 8시간 근무가 보통이잖아요.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잔다가 하나의 룰은 아니에요. 직장인들도 때로 야근을 하는 것처럼 나도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는 밤을 새우기도 해요. 하지만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부터는 마당을 가꾸고 동네를 산책하고 벗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번역하는 시간이 많이(반쯤으로) 줄었네요.

 

번역 제안을 받을 때,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시나요?

 

나는 번역가로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번역을 시작하던 무렵은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조약에 가입하면서 번역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던 때였고, 또한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출판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왕성하게 전개되던 때여서 출판사들도 좋은 번역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지요. 그런 때에, 신춘문예와 서울대 출신의 소설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랬는지, 출판사들도 나에게는 괜찮은(바꿔 말하면 어려운) 책들만 번역을 청탁한 편이에요. 그렇긴 해도 내 나름의 기준이 없진 않았어요. 그게 뭐냐면, 그 무렵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놈이 앞으로 크면서 읽을 만한 책이라는 정도의 선은 긋고 있었지요. 어쨌든 그동안 350권(300종)의 책을 번역했는데, ‘예스24’에서 검색해보니까 지금도 300여 권이 살아 있더군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냈을 거예요. 책을 많이 번역한 것이 꼭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을 번역했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좋은 책들을 나한테 맡겨준 출판사들, 그 책들을 읽고 나를 괜찮은 번역자로 평가해준 독자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요.

 

유명한 멜빌의 『모비 딕』 완역을 비롯하여, 『삼총사』, 『위대한 개츠비』, 『벤허』 같은 고전 작품 번역을 많이 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고전을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렇다고 내가 딱히 고전 번역에 열의를 가지고 달려든 적은 없어요. 고전을 번역하는 일은 이왕이면 해당 전공자가 맡아서 내공과 실력을 발휘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질문에 나온 작품들을 번역한 것은 저마다 사연과 배경이 있어서입니다.

 

10여 년 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앞으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어요. “번역이 쉽지 않은 몇몇 고전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언급한 책 하나가 『모비 딕』이었는데, 그때 마침 이 책의 출간을 계획하고 있던 ‘작가정신’ 출판사와 연이 닿아서 번역을 하게 되었지요.

 

다른 작품들은 어떻게 진행하게 되셨나요?

 

『삼총사』,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는, 솔직히 말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니까 그 기회에 번역서를 내서 장사 좀 해보자는 출판사의 제의에 따랐던 것이고요. 번역으로 먹고사는 내 입장에선 인세 수입이 중요하거든요. 다만,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는 좀 달라요. 이미 나와 있는 책도 있고 해서 번역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다지 좋은 번역도 아닌 책이 출판사의 마케팅으로 ‘최고의 번역’이라는 감투를 썼더라고요. 번역계 후배들도 그러는 거예요. 소설 좀 쓴다고 번역도 함부로 해대는 풍토가 염려된다. 누군가 나서서 경종을 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실은 나를 떼민 셈인데, 나도 한때 소설을 써본 처지라 곤혹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나중에 비판 받을 각오로 번역에 나섰던 거예요.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열심히 작업에 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번에 『벤허』를 번역하게 된 동기도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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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밭에서 춤추기

 

가장 최근에 작업하신 『벤허』의 경우 국내 최초로 완역하신 작품인데, 번역하실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시공사에서 『벤허』의 번역을 청탁할 때 편집자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하나는 『벤허』가 다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을 작가 루 월리스의 현손녀가 고쳐 쓰고 있다는 거예요. 그 유명한 영화 <벤허>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새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는 두 번 놀랐습니다. 『벤허』가 1880년에 발표된 이후 초대형 베스트셀러로서 미국 대중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로마 교황의 축성까지 받은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번역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번역에 착수한 뒤에야 그 이유를 알 만했어요. 원문이 워낙 난삽해서(19세기 미국 영어에다 비문도 적지 않아요. 그래서 현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현손녀가 고쳐 쓰는 것이겠지요)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곁가지가 뻗어나가듯 주절주절 덧붙이는 식으로 문장이 이어져 있어서 우리말로 산뜻하게 옮기기도 쉽지 않아요.

 

방침 같은 게 있었나요?

 

이런 작품을 번역하려면 두 가지 방침을 우선 세워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번역한다는 것. 또 하나는 곁가지들 가운데 지리멸렬해서 오히려 읽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요령껏 정리한다는 것. 나무도 때로는 잔가지를 정리해줘야 훨씬 잘 자라고 모양도 좋아지잖아요. 방침은 이렇게 세웠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자 그 실행이 그리 수월한 게 아니었습니다. 번역은 단어-구절-문장-문단마다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인데, 『벤허』 번역의 경우에는 대체로 단락 단위로 번역문을 작성했어요. 직역의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속의 장면들을 마치 소설가처럼 상상하면서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소설을 번역할 때 종종 써먹는 수법이지요.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처럼 작가 자신이 문체에 심혈을 쏟은 경우라면 번역자도 그 문체를 십분 존중해야겠지만, 대중소설은 번역도 대중적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위대한 개츠비』처럼 원작 자체가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벤허』 같은 경우 영화로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소설 자체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사실 원작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냥 영화로 만족할까,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귀띔해주고 싶은 원작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1959년에 제작된 영화, 스펙터클한 ‘전차 경주’ 장면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영화 <벤허>는 주인공의 복수극에 초점을 맞추느라 원작의 넓고 깊은 세계를 전달하는 데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 <벤허>는 ‘그리스도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시피,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모험 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가 배경음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이지만 유대교가 지배하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예수라는 한 남자가 어떻게 구세주(메시아)로 등장하게 되는지, 다시 말해서 유대교와는 다른 종교(그리스도교)의 발생 과정을 당시의 정치적ㆍ사회적 맥락 속에서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영상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문자예술의 장점이겠지요. 또한 우리는 소설 속에 묘사된 장면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당시의 이모저모를 상상해볼 수도 있고, 이것이야말로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입니다.

 

새로 제작된 영화 <벤허>가 곧 개봉된다고 하더군요.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라고 봐요. 우선은 고전과 신작 영화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원작 소설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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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라는 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번역을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선은 원서가 있어야 하고, 그 원서를 독해할 수 있는 외국어 지식이 있어야 하고, 그 뜻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번역은 태생적으로 몇 가지 한계를 숙명적으로 떠안고 있지요.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조건들 때문입니다. 번역을 ‘장미밭에서 춤추기’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한계가 지워진 조건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글쓰기를 수행할 수 있는 ‘고통 속의 즐거움’을 그렇게 표현해본 것입니다.

 

21세기는 문화와 정보의 세기라고 합니다. 문화와 정보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언어입니다. 언어에 의한 소통이 없이 어떻게 문화와 정보의 교류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보면 번역서 비중이 30%쯤 되고, 교과서나 참고서 같은 학습서를 빼면 50%가 넘고, 출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문사회 분야에서 의미 있는 책은 십중팔구 번역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자동자, 선박, 반도체를 수출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지식과 정보는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고, 그 지식과 정보를 선진국으로부터 들여오려면 번역을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번역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할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직업으로서 번역가를 추천하시겠습니까?


번역은 등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빠짐없이 옮겨야 하는 고된 노동입니다. 그런 만큼 귀찮고 피곤한 작업이지요. 또한 번역가로 일하면서 처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번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번역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쉽게 선택할 문제가 아니지요. 그렇게 때문에, 어쩌다 번역을 지망하는 후배를 만났을 때 선뜻 권하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책 읽기가 좋고 글쓰기가 즐거워서 번역에 몸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말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군요. ‘번역자’가 아니라 ‘번역가’를 꿈꾸라고. 세계화ㆍ정보화 사회의 첨병으로서 미래의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꿈과 용기를 가지라고. 번역은 충분히 뜻있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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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루 월리스 저/김석희 역 | 시공사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배신과 복수의 장대한 역사소설이자, 유대 청년 유다 벤허의 고난과 청년 예수의 운명이 절묘하게 엮이며 믿음의 근본을 파고드는 종교소설. 여기에 전차경주 장면으로 대변되는 웅대한 스펙터클과 두 여인 사이에서의 흥미로운 로맨스까지 가미되어, 그야말로 대중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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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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