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재즈페스티벌 - 5월의 어느 밤, 별을 보고 별을 쏘다
서울재즈페스티벌 참가 후기
낮 최고 기온 33도까지 내리쬔 불볕더위도 꼬박 1년을 기다려온 재즈 피플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2007년 시작해 벌써 올해 10회 차를 맞은 우리나라 대표 페스티벌, 어느새 관객들도 ‘페스티벌 장인’이 되어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 최대한의 행복을 뽑아낸다.
선캡, 선글라스를 관통하듯 작렬하는 태양을 원망하며 2시경 주 무대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May Forest)에 느지막이 도착하니, 이미 소위 말하는 돗자리 명당은 가득 차있었다. 그 무렵 시작한 밴드 혁오의 무대, 특유의 어눌하고 수줍음 가득한 무대 매너는 어디 가지 않았으나 관객들의 환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와리가리」, 「위잉위잉」, 「공드리」, 「멋진 헛간」 등 유명곡들은 재즈 페스티벌과는 약간의 간극마저 느껴졌지만 나름 환희로운 ‘떼창’을 유도해냈다. 곧 발표할 신보에 수록될 탄탄하고 다양한 사운드의 곡들까지 소개하며 쌓아온 연차를 증명한 그들은 어느새 페스티벌에 제격인 밴드로 성장해있었다. 다만 무대 중간중간 “너무 덥지 않나요”라며 더위에 지친 듯 보인 프론트맨 오혁의 모습에 되레 미안해지는 관객들. 최소한 무대에라도 예방책을 마련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피어나는 시점이었다.
1시간에 걸친 혁오 공연이 끝나고 재빨리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이달 신보 <12>를 발표한 핫 가이 빈지노가 소속된 재지팩트의 공연이 체조경기장(Sparkling Dome)에서 이미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지도가 높은 거물급 아티스트들로 수놓아진 공연들을 하루에 담아냈기에 시간이 겹침은 어쩔 수 없었다. 실내 공연장에 들어서니 놀랍게도 스탠딩을 비롯해 객석은 거진 꽉 들어서 있었는데 무더위를 피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일석이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빈지노는 밴드 사운드마저 뚫고 나오는 돌출적 래핑과 보컬로 특유의 에너지를 관객에 여실히 전달해냈다. 「Up all night」, 「Boogie on & on」 등 재지한 면모를 가지고 있던 곡들에 록 터치를 가해 편곡해온 그의 역량은 공연장을 흡사 빈지노 콘서트를 떠올리게 하듯 떼창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다시 주 무대로 돌아와 진행된 재즈 보컬리스트 커트 엘링(Kurt Elling)의 쿼르텟 무대. 「Nature boy「등 정통 재즈 넘버부터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ous)가 작곡한 펑키(Funky)한 곡들, 작년 발표한 본인의 앨범 <Passion World>의 수록곡까지 어우르며 이번 페스티벌 중 가장 「정통 재즈 공연「에 가까웠다는 감상을 수반했다. 초반부 합을 많이 맞춰보지 않은 듯 박자 궤도를 이탈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으나, 점점 무대에 적응하며 두왑 (Doo-wop), 비밥(Bebop) 등 그의 목소리를 충분히 느끼는 시점에서 장점들이 드러났다. 드러머가 즉흥적으로 주조해낸 다양한 리듬, 선율을 그대로 재연해내던 커트 엘링의 스캣(Scat)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그는 말 그대로 음표 위를 자유로이 유영하며 무대를 즐기는 중이었다.
미국 LA 출신 밴드 빈티지 트러블(Vintage Trouble)은 비교적 선선하게 느껴졌던 실내 체조경기장 기온을 적어도 LA 해변가의 그것으로 대체할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밴드는 작년 여름 발표한 <1 Hopeful Rd.> 앨범 수록곡 위주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 등이 스쳐 지나갈 만큼 무대를 압도하는 월드 클래스 급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흡사 대형 집회를 주도하는 교주인 양 관객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프론트맨 타이 타일러(Ty Taylor)의 회색빛 슈트가 땀 범벅이 되어갈 때, 관객들은은 밴드가 선사하는 리듬에 심장을 공명시키며 함께 호흡해나갔다. 공연이 절정으로 나아가며 경호원들의 제지를 뚫고 관객 속으로 다이빙하던 그의 모습은 ‘록스타’라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을 것이다.
써드 스테이지 핸드볼 경기장(Pink Avenue)에서 진행된 공연들은 잔잔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 펼쳐지며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차세정의 솔로 유닛 에피톤 프로젝트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특유의 살얼음판 같은 감정선을 차분히 걸어나가는 보컬로 울림을 선사했다. 페스티벌에 맞게 템포를 높인 그는 「선인장」, 「유채꽃」, 「새벽녘」 등의 대표곡을 목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살뜰히 전달해내 박수를 유발했다. 이어 등장한 뉴욕 출신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세션을 대동하지 않고 피아노, 통기타 단출한 반주에 맞춰 대표곡 「Hallelujah」 등을 부른 그는 한국 관객의 열기에 놀라 연신 환호를 반복했다. 이미 10대 후반에 커밍아웃한 그는 “한국 ‘남자’들은 정말 섹시하다.”고 말하는 등 공연에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공연 후반부 소환된 절친한 마크 론슨(Mark Ronson)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대표곡 「Out of the game」이 하이라이트. 자연스레 관객의 환호를 이끄는 멋스러운 베테랑 모습이었다.
핸드볼 경기장을 뒤로하고 다시 찾은 주 무대,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재즈 기타 거장 팻 매스니의 무대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작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된 팻 메스니 유니티 그룹(Pat Metheny Unity Group)의 <Kin (<-->)> 앨범 발매 투어 이후 1년 반만의 내한 공연. 비록 유니티 그룹 멤버 중에서는 작년 영화 <버드 맨>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만 대동했지만 피아니스트 그윌림 심콕( Gwilym Simcock), 베이시스트 린다 오(Linda Oh) 등 새로운 얼굴이 합류해 걱정을 덜었다.
특별 제작한 피카소 기타를 들고 나온 팻 메스니의 솔로 무대 어쿠스틱 세트로 시작한 공연은 세션과 합을 맞추는 히트곡 「So may it secretly begin」, 「Last train home」, 「Minuano」 등이 이어지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시간은 꿈결 같이 지나갔고 앙코르곡 「Are you going with me?」가 연주되는 시점에서, 가까이 스탠딩 석에서 감미로운 선율과 입 맞추던 관객이든, 맑은 여름밤 속삭이듯 반짝이는 별 아래 누워 멜로디를 한 가득 음미하던 관객이든 그 순간만큼은 평등히 행복했을 테다.
우리나라 페스티벌 중 유일하게 흑자 수익구조를 영위하고 있는 서울재즈페스티벌, 조금은 과도하게 느껴지던 여러 수익형 부스들의 범람과 종종 시작이 지연되던 공연들, 주 무대를 제대로 뒤덮지 못했던 사운드 등 문제점은 머릿속에 맴돌았으나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도심형, 가족형 페스티벌을 지향하며 무엇보다 ‘편리함’에 기반해 양질의 무대를 제공하는 페스티벌, 관객들이 제대로 즐겼다면 비교적 비싸다고 소문난 티켓 가격이 아깝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음악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진 제공 : Private Curve
2016/06 이기찬(geechanlee@gmail.com)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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