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그래도 다행이다. 문민정부 X 까라고 외치며 사정없이 사정하겠다던 청년폭도들은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 꼰대가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음반에서만큼은 그렇다. <Brainless>에서의 노브레인은 거칠고 날카롭고 드세다. 불편한 진실을 들추고 거기에 사정없이 침을 뱉고 그 위에다 욕지거릴 해댄다. 이 모습이 얼핏 20여 년 전, '怒브레인' 시절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이 땅에서 아직도 답을 못 찾았다 외치는 「Anyway」와 살찐 돼지들의 잔치를 향해 힐난하는 「엄마 난 이 세상이 무서워」, 가짜 빛이 나오는 TV에 불신을 표하는 「Big phony show」를 보자. 새천년의 시작점에서 내 조국에 미래는 없다고 고함쳤던 「Viva 대한민국」과 가진 자들을 비난했던 「이 땅 어디엔들」, 허황과 허상으로 가득한 브라운관을 조롱했던 「티브이 파티」와 그 화(火)의 양상이 얼추 비슷하다.
조금은 놀랄만한 음반이기도 하다. 차승우의 탈퇴 이후 노브레인은 분노와 울분과 자조로 가득했던 결성 초기의 컬러를 빠르게 지웠다. 일단 놀고 보자는 낙관주의와 목적 없는 행진, 서정으로 감싼 무력감, 사랑에 대한 단상으로 그 빈자리를 계속해 대신 채워왔다. 그런 식으로 정체성을 바꿔 활동한 게 <안녕, Mary Poppins>를 기준으로 어느덧 13년째다. 결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소수의 폭도가 아닌 다수의 대중에 가까이 서있던 밴드에게서 성난 얼굴과 성난 이빨, 성난 젊음을 다시 기대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러한 기대의 성립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성격이 부드러워졌고 무뎌진 이들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주변에 앞뒤 가리지 않고 욕을 던져대는 <Brainless>의 출현이 꽤 놀랄만하다는 얘기다. 그간의 행보로부터 예상해본 노브레인의 미래에는 이런 음반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 과격하게도 얘기해볼까. 어쩌면, 그러니까 원초적이었던 첫 모습 이후의 모든 행동을 변절 행위로 취급하는 입장이라면, 이 음반을 '메인스트림에 안착한 밴드가 행하는 여유 섞인 비판적 관조'로도 볼 수 있겠다. 주류 무대에서 한참 인기를 누리다 뒤늦게 분노라고 내뱉는 모습이니. 아티스트의 태도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해석에 엮어야하는 록 담론에서 노브레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의 노브레인만큼은 달리 보고자 한다. '여유 섞인 비판적 관조'보다는 예와 비슷한 울분을 머금고 행하는 '현실에 대한 응사'로 판단하고 싶다. 모든 가림막을 젖히고 쏟아내는 이들의 개탄은 오래 전의 순수한 분개와 가까운 지점에 있다. 직설적이고 본능적이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본질에 다가서지 않고 표면의 위로에만 목적을 둔 듯한 그간의 분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전작 <High Tension>에서의 「엄마 난 이 세상이 무서워」와 이번 앨범에 수록된 새 버전의 「엄마 난 이세상이 무서워 (2016 ver.) (feat. JTONG)」의 사이에서 만날 수 있다. 무기력함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상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었던 지난 가사들 그 사이사이에 사회적이고 근본적인 원인들이 새로 들어서있다. 한국 사회로 운을 떼고 돈과 자살률, 시스템, 계급을 차례로 언급한다. 이는 국가를 비관으로 바라보는 「Anyway」에서도, 자기 파괴의 정서가 들어선 「Kill yourself」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분히 감상적인 곡 스타일이 그간 구축해놨던 밴드의 안정성을 까칠한 메시지들이 과감히 흔들고 비틀어 놓는다. 「Big phony show」와 「아무렇게」의 전형적인 펑크, 「Kill yourself」, 「엄마 난 이 세상이 무서워」의 하드코어 펑크, 「하루살이」의 스카 펑크와 같은 격렬하면서 직선적인 사운드 스타일이 여기에 큰 힘을 보탠다.
나름 멋진 변신이자 복귀다. 눈치 안 보고 마구 소리쳐대는 모양새가 정말 노브레인답다. 물론 예전처럼 마냥 신선할 수도, 마냥 멋있을 수도 없다. 가사도 크게 충격적이지 않다. 진행에 약간의 변칙을 가한 「Killl yourself」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특별하다 할 사운드도 없다. 이제는 무작정 막다른 골목으로만 질주할 수 없는 이들이기에 트랙리스트 사이사이에 「내 가죽잠바」와 같은 대중지향의 낭만적인 곡과 「아직도 긴 터널」과 같은 러브송도 꼭 넣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을 보자. 현실에 그대로 갖다 박길 주저하지 않는 노기의 노도가 까끌한 펑크 사운드를 타고 앨범을 관통한다. 오랫동안 겉 돌고 있던 이들이 간만에 진짜 펑크에 가깝게 다가선 셈이다. 게다가 올해는 밴드가 처음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지 딱 20년이 되는 해다. 의미 있는 작품이다.
2016/05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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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노 브레인, Brainless, 펑크, 밴드, 이주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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