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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제와 같은 삶을 살 것인가!

서울대 교수들이 교도소로 깐 까닭은?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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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철문을 지나 수용자들이 모인 교실은 플라톤에 등장하는 동굴과 같았다. 수용자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 밝은 하늘색 옷과 그들의 가슴에 달린 수인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왜 이 장소에 왔는가?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무엇에 도달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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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골방을 가졌는가

 

2013년 7월 어느 날, 당시 서울대학교와 법무부는 교도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15년까지 서울대학교는 한국사회의 낮은 곳에서도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전 과정을 지원했다. 3년 동안 이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울대학교의 재정적 지원과, 강의를 자원한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 모임에 관심이 있었기에 학교로부터 이 프로그램의 주임교수직을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교도소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은 일반적인 인문학 교육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용자들의 삶에 긍정적이며 혁신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새로운 지식 전달이나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며, 삶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고취시키도록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는 집에서부터 세 시간 동안 차로 달려가야 한다. 이른 새벽, 강의를 하러 가는 날에는 수용자가 된 마음으로 집을 나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교도소로 가는 과정이 내게는 종교행위였다. 서울남부교도소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성소(聖所)였다. 우선 첫째로 아무나 갈 수 없는 구별된 공간에 위치한다. 둘째, 교도소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먼저 교도소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해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만 교도소 정문을 통과할 수 있다.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고 바로 수용자들이 모여 있는 교실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한 번의 통과의례가 있는데 이번엔 사회가 부여한 내 신분을 버려야 한다. 일정기간 내 신분을 유기하고 나도 수용자들처럼 무명인이 되어야 한다. 신분증과 휴대폰을 입구에 맡긴 후 ‘방문자’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목걸이를 착용해야 한다. 이 안에선 교수들이나 수용자들 모두 무명씨다. 교수님들은 자신들의 이름 대신 ‘방문자’라는 신분을 부여받고, 수용자들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

 

아마도 수인번호는 수용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수용자들이 이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고, 과거의 유기하고 싶은 이름, 부모로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된 이름을 포기했다는 결심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두 개의 철문을 지나 수용자들이 모인 교실은 플라톤에 등장하는 동굴과 같았다. 수용자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 밝은 하늘색 옷과 그들의 가슴에 달린 수인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왜 이 장소에 왔는가?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무엇에 도달하려 하는가? 플라톤의 『국가』에는 세 가지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알레고리는 인간이 가진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그와 유사한 예를 들어 설명을 시도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동굴의 알레고리’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세계가 수많은 세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유일하면서도 참된 세계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만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교도소에 구속된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이라는 오만에 갇힌 수용자들이다. 이 교도소에서 탈출하기는 어렵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교도소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충고를 한다 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교도소와 같은 동굴 안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족쇄로 결박되어 있는 수용자다. 자신을 사회의 일원으로, 혹은 상대방의 눈으로 자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의 욕심을 기준으로 생활한다. 동굴 안에서 누군가가 조종하는 이미지와 그림자에 자신의 헛된 욕망을 투사하고 그 욕망을 자기 점검 없이 쫓아간다.

 

교도소는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가난이라 정의한다면, 이 가난은 돈이 없어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진행한 인문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오래된 자아를 직시하고 새롭고 희망찬 자아를 찾아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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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배철현,강성용,김헌,홍진호,김현균,장재성,박찬국,유요한 공저 | 21세기북스
이 책은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와 법무부가 진행한 인문학 강의를 엮은 것으로 철학,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 교수 8인이 펼쳐내는 인문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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