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나 “외로울 때 생각나는 동화였으면”
‘제5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디다와 소풍 요정』
외로울 때,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찾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으면 좋겠고요. 내 안에 내가 원하는 걸 이룰 힘이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가 ‘제5회 비룡소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으로 김진나 작가의 『디다와 소풍 요정』을 선정했다. 김진경, 김리리, 김지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만큼 작품은 단연 뛰어난 필체와 주제의식을 선보인다. 심사위원들은 “아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어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는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존 가족 판타지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족 이야기”, “아이와 함께 부모가 꼭 읽어봐야 할 놀라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진나 작가는 2011년 청소년 소설 『도둑의 탄생』으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작품 『숲의 시간』을 발표한 바 있다. 판타지 세계 안에 현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냈던 탁월한 능력은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두 편의 단편 「디다와 소풍 요정」,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서 주인공 디다는 소풍을 가기 위해 요정을 불러내기도 하고, 기억을 잃어버려 온 몸을 종이로 감싼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과 엉뚱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지만, 그것을 거울삼아 비춰지는 현실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갖가지 사정으로 한 번도 소풍을 가본 적이 없는 디다는 ‘소풍 요정’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소풍을 떠나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들뜬 아이는 줄곧 소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 디다가 이를 닦았는지, 김밥 재료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어떤 옷을 입을지, 자외선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오고 가는 가운데 디다가 기다리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온 말들은 벽에 부딪힌 듯 허공을 떠돈다.
두 번째 이야기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에서도 디다는 목소리를 잃은 아이처럼 느껴진다. 아빠는 기억을 잃어버린 딸에게 종이 옷을 입히고 “여기에 네가 누구인지 써 둘 테니 자꾸 읽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너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종이 옷에 적어 달라고 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종이 옷은 수많은 ‘어른들의 말’로 채워진다. 그곳에는 디다를 향한 어른들의 시선과 평가와 바람이 묻어있다.
우리 아이들은 『디다와 소풍 요정』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디다와 다르지 않은 자신의 일상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그 끝에서 남는 것은 통쾌함일 수도 서글픔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성인 독자들에게는 ‘뜨끔한’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풍선 껌을 씹으며 ‘소풍 요정’을 불러내는 깜찍한 상상력은 작게 미소 짓게 하고, 마침내 ‘보물 상자’를 찾아내는 결말은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우리에게도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맑음’이 있지 않나요?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 어른들은 디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잖아요. 자신들의 시각으로 디다를 평가하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예전에 지하철을 탔다가 맞은편에 앉은 엄마랑 아이를 본 적이 있어요. 엄마가 뭔가 말을 시작하니까 아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면서 너무 지루해하더라고요. 엄마 말이 끝나니까 아이가 엄마를 향해서 싱긋 웃어 보이고요. 그리고 저희 가족이 캠핑을 많이 가는데요. 아이들이 엄마를 도와주려고 할 때,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꼭 그 방식대로만 해야 되는 부분이 아닌데도, ‘이건 꼭 이렇게 해야 되고 저건 꼭 저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볼 때가 있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말하는 것에 주목하게 됐어요. 말이 과도하게 사용된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이전과 비교해서 말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 걸까요?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있을 때는 관계 속에서 말을 배우고 그 말을 관계를 맺을 때 썼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죠. 급변하는 사회이고 정보 과잉의 사회여서 우리가 쓰는 말이라는 게 정보로 채워져 있어요.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보니까 새로운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이 너무 뿌리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가에서 이주해 온 말, 훔친 말, 떠돌아다니는 말들로 일상생활이 채워지는 거죠.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써야 하는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엄마 아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달리다 보면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자꾸 말에 의지하게 되잖아요. 말로 해결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은 말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가 과도하게 사용하는 말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정보성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고 읽어내기 위해서 하는 말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이한테 어떤 습관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도 요약 상식을 이야기하잖아요. 어디에서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요. 하지만 몇 달 후에는 그 상식이 변하기도 하잖아요. 사실은 굉장히 근거가 희박한 말들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을 할 때는, 아무래도 어른들은 아이에게 명령어처럼 말을 하게 되죠. 아이는 그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요. 그런 관계 속에서 (어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이 근거가 희박한 말이라는 걸 조금 더 의식을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품 속에서 디다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자꾸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부모와 맺는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한마디를 하더라도, 이미 그 말을 관계 속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파편적인 정보로 모아진 말들, 사실은 내용 없는 말들을 사용하니까 어긋나는 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 「기억을 잃어버린 다다」에서는 어른들의 잣대로 평가 받고 어른들의 바람을 강요 받는 아이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디다는 마침내 ‘보물 상자’를 찾게 되는데요. ‘보물 상자’는 어떤 의미를 상징하고 있나요?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맑음’이에요. ‘어떤 식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맑음’이요. 조금 전에 지하철에서 봤던 아이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그 아이는 엄마가 말을 할 때는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엄마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엄마를 어떤 식으로 판단하지도 않았고 ‘엄마 이야기가 너무 지루했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냥 자기의 맑음 속으로 들어가서 샘물에서 씻고 나온 것처럼 엄마를 보고 웃어 보인 거예요. 그런 마음은 저희한테도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필요해요
어른들이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밝고 교훈적인 이야기만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도 (『디다와 소풍 요정』의) 리뷰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쓰셨더라고요(웃음). 그걸 보고서 깜짝 놀라고 약간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요(웃음). 그런데 정말 교훈적이기만 하고 밝기만 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일부 어른들이 갖는 환상이나 강박 관념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삶이라는 건 우리가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는 건데, 그 삶의 단면을 잘라서 은쟁반에 담아서 주면 아이가 굉장히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 삶을 토끼에 비유한다면 ‘길쭉한 귀는 토끼답고 개성적이어서 보기 좋고 코는 너무 평범하고 축축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귀만 잘라서 아이한테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아이한테는 잔인하게 잘려진 단면이 다 보일 거예요. 그런 식으로 어른의 잣대를 가지고 어떤 작품에 대해서 ‘이건 아이한테 적합하다’ 혹은 ‘이건 적합하지 않다’를 판단하는 건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의 이해도에 따라서 노출 범위를 조절하거나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 해주는 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모든 이야기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길에 있는 간판이나 옷에 있는 표시 같은, 읽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요.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가 필요하잖아요. 아주 작은 생명도 필요하고, 우주가 필요하고, 수백만 광년 전에 소멸한 별빛도 필요해요.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이미 쓰여진 이야기,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사라진 이야기, 누군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이야기, 그런 모든 이야기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작 『도둑의 탄생』과 『숲의 시간』을 통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어요?
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요. 어떤 면에서 생각을 해보면 저를 위해서 썼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많고요. 앞이 캄캄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겨우 한 발만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빛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겨우 한 발 한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청소년의 눈으로 저의 현실을 보는 거고, 동화를 쓸 때는 아이의 눈으로 저의 현실을 봤던 것 같아요. 오히려 글을 쓰는 동안 그 안의 등장인물이 저에게 ‘이렇게 살면 돼, 이렇게 살아도 돼’ 하고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용기를 얻고요.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신다면 성인의 눈으로 현실을 보시게 될 것 같은데요. 그럴 계획은 없으신가요?
쓰고 있는 작품이 있기는 해요. 그동안에도 쓰기는 했고요. 제 마음이 파편화 되어 있을 때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를 쓰면, 등장인물이 저보다 훨씬 내면이 찬란해서 저를 도와줘요. 글을 쓰다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인의 시각으로 글을 쓸 때는 제가 같이 헤매는 거죠. 그래서 아직 작품을 발표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요. 지금은 기억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어요. 만약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 기억을 다룬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어른은 잠에 빠져 있는 존재로, 아이는 자신의 여름을 만끽하는 존재로 비유하셨어요.
어떤 면에서는 비유가 아니에요. 진짜로 낮잠을 자다가 번쩍 정신이 드는 경험을 했었거든요. 그 날 낮잠을 자다가 책을 반납해야 해서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움츠리고 빨리 걸어가고 있었어요. 마침 아이들 하교 시간이랑 겹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그때 어떤 아이를 봤어요. 그 아이는 어깨까지 흘러내린 점퍼를 입고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는데, 추운지도 모르고 친구한테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아이를 보면서 순간 정신이 드는 거예요. ‘진짜 추운 건가, 진짜로 여기에 있는 게 뭐지, 내가 춥다고 생각만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점과 점이 주어져 있는데 저는 그사이는 보지도 않고 직선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로 걸어가고 있었다면, 아이는 점과 점 사이를 직접 몸으로 가보고 있었던 거죠. 아이들은 이 순간을 직접 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아이들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올해 3월에 학교가 막 개학했을 때, 길에서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하굣길에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요. 한 아이가 옆에 친구한테 ‘학교 오니까 어때?’라고 물으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조금 생각해 보더니 ‘네가 있어서 좋아’ 그러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도 학교가 끝나고 친구랑 헤어지지 못해서, 저희 집과 친구네 집을 오가면서 서로 데려다주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중간에서 헤어졌던 적이 있거든요. 두 아이들을 보면서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뭔가 좋으면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좋아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사랑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순간순간 정말 찬란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디다’는 현실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을 읽다가 문득 ‘지금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행복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순간순간은 행복할 것 같아요. 환경이 어떻든 자기가 가진 순수함과 천진함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간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켰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들한테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뭐라고 저항도 못하고, 자기 처지를 호소하지도 못하고, 작별 인사도 못하고, 어떻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면, 내 속에 있는 아이가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그 아이가 지금도 살아 있는지 아니면 멸종해 버렸는지 살펴보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미루어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한테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먼저 내가 행복해야 될 것 같아요. 그냥 별 이유 없이도, 별로 그렇게 잘하는 것 없이도, 내가 먼저 웃고 설레고 즐거운 순간을 느끼면 아이도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디다와 소풍 요정』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냥 소소한 재미를 느꼈으면 했어요. (작품 속에서) ‘아침에 귀신 공포 주스 한잔’이라는 책 제목을 재미있게 느낀다거나, (디다가) 종이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거나, (디다처럼) 폐허가 된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은 어른들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나도 작품 속의 어른들처럼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에 뜨끔하기도 하고요(웃음). 성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었나요?
아니요. 저는 동화책을 읽을 때 언제나 아이한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어요. 그래서 당연히 다른 어른들도 그렇게 읽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조카들에게는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이모인데요(웃음). 그래도 동화책을 읽을 때는 저랑 아주 비슷한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그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아이한테 감정이입을 해요.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을 느끼고 헤쳐 나가는지 느끼면서 읽거든요. 그래서 『디다와 소풍 요정』을 쓸 때도 어른들도 디다가 되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동화를 읽고서 뜨끔했다는 평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른들에게도 각자가 처한 한계적 상황이 있잖아요. 소통도 되지 않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해 있죠. 그런 상황 속에서 디다가 하는 방식을 통해서 어른들도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디다에게 작가님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을까요?
저에게 디다는 희망사항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요. 디다는 엄마 아빠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끊임없이 해 나가요. 맞는 방법이든 아니든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저는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어른으로서 살면서, 외부에서 한계를 느끼는 많은 상황에서, 디다처럼 행동하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소풍 요정을 부르는 건 불가능해, 무슨 헛소리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디다는 소풍 요정이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요정이 아니라 해도 과도하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이 해나갈 수 있는 방식을 찾잖아요. 어떻게 보면 디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가장 사랑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외로울 때 생각나는 동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인이 아닌 아이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쓰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제가 동화책을 좋아해서요. 마음이 복잡하고 엉망진창인 상태일 때 제일 많이 의지할 수 있는 게 좋아하던 동화책이었어요. 그림이랑 글을 한참 보고 있으면 굉장히 행복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아요.
동화책에 어떤 힘이 있었던 걸까요?
동화책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시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가장 풍부하게 담아내는 것 같아요. 문장은 단순해서 쉽게 들어올 수 있는데 그 문장이 표면적이지 않고 담고 있는 깊이가 깊죠. 어떻게 보면 자연하고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바닷물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동화책이 탁 트인 풍경 같은 생명력을 전달해 주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동화에는 다층적인 의미가 응축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말 아이들이 이걸 다 이해할까’ 의문스럽기도 해요(웃음).
저는 아이들이 동화 속의 모든 의미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부분이 재미있게 여겨져서 그것만 마음에 남아도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렇게 한 부분이 남으면 살면서도 계속 떠올리고 이해하게 되잖아요. 당시에는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그게 어딘가에 남아있는 거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힘을 얻고요. 그래서 저는 딱 한 부분이라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자라면서 『디다와 소풍 요정』을 떠올리고 새롭게 이해하게 될 아이들도 있겠죠. 아이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세요?
외로울 때,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찾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으면 좋겠고요. 내 안에 내가 원하는 걸 이룰 힘이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힘들 때 동화를 읽는다고 하셨는데요. 위로가 되는 동화가 있나요?
유리 슐레비츠의 『월요일 아침에』라는 동화책이 있어요. 내용은 아주 단순해요. 주인공 남자아이가 사는 곳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에요. 약간 우중충하고 무거운 현실의 그림이 있어요. 그곳에 아주 밝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과 왕비와 어린 왕자가 찾아와요. 주인공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나’는 집에 없었고, 왕과 왕비와 어린 왕자는 다음 날 다시 와요. 이번에도 ‘나’는 집에 없었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요. 요리사도 오고 광대도 오고요. 마침내 일요일 주인공과 만나는데, 어린 왕자는 ‘잠깐 인사나 하려고 들렀어’라고 말해요. 일주일 내내 찾아왔으면서도 ‘내가 너를 찾아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니고 ‘잠깐 인사나 하려고 들렀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았어요.
어떤 동화를 좋아하세요? 그 이야기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때그때마다 다르지만, 풍부하게 쓰여진 이야기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도 굉장히 좋아하고, 구드룬 파우제방의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도 좋아해요. 아놀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집에 있는 부엉이』도 무척 좋아하고요. 그 작품들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다 좋은 작품이라는 게 아닐까요(웃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숲의 시간』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글을 남긴 아이가 2월 28일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 날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우산을 살까 하다가 서점에 갔대요. 『숲의 시간』을 보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사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우산을 포기할 정도로’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굉장히 기뻤어요. 우산을 포기하고 그 눈을 그냥 맞으면서도 책을 산 게 더 기쁨이 컸다는 거잖아요. 우산을 포기할 정도로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웃음).
디다와 소풍 요정 김진나 글/김진화 그림 | 비룡소
『디다와 소풍 요정』은 엄마, 아빠, 디다 3인 가족이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단면으로 잘라 각각 2편의 단편에 담은 단편집입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오늘날 가족 안에서 어른과 아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현실, 날것의 가족의 모습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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