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만 원으로 칭다오 즐기기
〈Feature〉
가깝고 이국적인 휴양 도시 칭다오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해변과 맥주뿐일까? 이 도시에서 55만 원으로 얼마나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와 사진가, 디자이너가 체험해봤다. 신시가에서 하루, 구시가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고전적 풍경과 뜻밖의 풍경을 넘나들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시가의 먹자골목 피차이위안에서 맛보는 튀긴 만두.
칭다오의 브루어리 스트롱 에일 워크스의 맥주 탭.
500년이 넘은 도교 사원 톈허우 궁은 칭다오 만 앞에 위치한다.
신시가의 인쇄 공방 스광인지에서 전통 인쇄 수업을 받아보자
칭다오 만의 누각 후이수거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폐공장에서 독서하기
우리는 지금 청명한 오후의 하늘을 향해 힘차게 연기를 내뿜는 높다란 굴뚝 앞에 서 있다. 막 칭다오에 도착한 참이다. 이것이 칭다오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풍경은 분명 아니다. 붉은 지붕의 유럽식 건물이나 맥주 라벨에 그려진 해변의 누각 같은 것과는 한참 다르니까. 칭다오 서쪽의 구시가와 동쪽의 신시가 사이를 경계 짓는 난징루(南京路)는 남쪽으로 5-4광장까지 쭉 뻗어 있다. 지나치게 넓어서 썰렁해 보이는 대로변 중간쯤에 있는 이 폐공장이 오늘날 칭다오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젊은 장소다. 예술 지구 크리에이티브 100(Creative 100). 주 건물 5동과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1층 아케이드에서는 예술과 공예를 다루는 가게와 카페, 바가 영업 중이고, 2층은 주로 문화ㆍ예술 관련 사무실로 이용한다.
이곳에서 ‘서점이 아니다’라는 뜻의 부스수뎬을 찾을 수 있다. 도자기 숍, 액세서리 가게를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모퉁이를 돌자 전면 유리창으로 손님이 여럿 앉아 있는 장소가 보인다. 크리에이티브 100이 문을 연 2009년에 입주한 부스수뎬은 이름처럼 서점뿐 아니라 도서관, 디자인 숍, 카페를 겸한다. 출입구에서 카운터까지 가려면 디자인 잡지와 예술 서적이 즐비한 책장, 디자인 소품이 빼곡한 진열장을 지나야 한다. 덕분에 일리(Illy) 원두로 내리는 커피를 주문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2층의 카페 공간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학생이 칸막이식 좌석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마루에서 친구들끼리 다리를 뻗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책을 대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중국어로 쓰인 책이니 따로 책을 챙겨오는 게 현명하겠다. 커피 1잔을 주문하고서 오랜 시간을 보내도 누구도 눈치 주지 않는 분위기다.
한 손님이 책을 반납하며 카운터 위의 바구니에 기다란 종이 쪽지를 꽂아놓고 간다. 바구니 안에는 이미 비슷한 쪽지가 가득하다. “책을 대여할 때 사용한 책갈피예요. 각자 감명받은 글귀를 적지요.” 점원 류밍샤오가 설명한다. 그녀가 그중 하나를 번역해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예요. ‘오 신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부스수뎬 10am~9:30pm, 86 532 8080
칭다오 신시가의 예술 지구 크리에이티브 100의 외관.
서점 겸 카페 부스수뎬의 평온한 오후.
부스수뎬 바로 옆에 있는 인쇄 공방 스광인지에서는 100년이 넘은 인쇄 기계로 일일 인쇄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요판인쇄와 활판인쇄 두 종류다. 카드와 책갈피를 구매하거나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공방의 대표 롼퉁민은 옛 인쇄 기계에 애정을 지니고 있어서 중국 각지에서 90종 이상의 옛 인쇄 기계를 수집했다. 언젠가 인쇄 기계 박물관을 여는 게 꿈이라고 한다.
*스광인지 86 139 5423 3444
100년 된 인쇄 기계로 카드 제작하기
중국의 전통 인쇄 기술은 인쇄 공방 스광인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 투어
칭다오 맥주긴 한데 그 칭다오 맥주는 아니다. 칭다오 여행자의 필수 코스인 맥주 박물관 대신 요새 뜨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가는 길이다. 스트롱 에일 워크스(Strong Ale Works)는 의외로 시내 외곽의 고급 주택가에 있다. 택시로 15분쯤 달리자 외딴 동네에 도착한다. 바로 앞에 중국스러운 분위기의 바위산이 솟아 있고,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그림 같은 스라오런(石老人) 해변이 펼쳐질 것이다. ‘여기에 브루어리가 있다고?’ 운영자 존 헤링턴(John Herrington)이 위챗(WeChat)으로 보내준 약도에 의지해 길을 헤맨 끝에 어느 빌라 단지 안에서 겨우 발견한다. 컨테이너 벽에 그린 알록달록한 그라피티가 간판을 대신한다. 중국인 노동자가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채 튼튼한 팔뚝으로 맥주잔을 치켜들고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팍을 잘 살펴보면 감쪽같이 문이 나 있다.
“맥주 한잔 할래요?”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헤링턴이 유쾌하게 묻는다. 그는 벽에 설치된 맥주 탭 중에서 ‘시트라(Citra)’라고 써 있는 탭을 열어 맥주를 따른다. 한 모금 들이켜자 상큼한 과일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맥주 종류는 시즌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1년에 총 15종 이상을 만들어요.” 페일 에일을 홀짝이며 브루어리를 구경하다 보니 마치 친한 친구 집에 초대받은 듯하다. 청결한 공장 같은 실내 곳곳에 중국 공산주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붙여놓아 동양적이고도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라오산의 맑은 물이 맥주 맛의 비결이라는 건 100년 전 이야기지요. 요즘은 수질 오염이 심각해서 모두 정수한 물만 사용해요. 칭다오가 맥주의 도시긴 하지만, 고품질 수제 맥주는 여기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예요. 제가 만드는 맥주는 그 칭다오 맥주와는 전혀 다릅니다. 거의 모든 재료를 수입해요. 훌륭하고 흥미로운 재료라면 뭐든지요. 독일, 체코, 미국산 홉, 벨기에산 몰트처럼요.” 이 작은 브루어리에서 칭다오 맥주 문화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브루어리에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냥 좀 괜찮은 동네 브루어리일 뿐입니다. 모든 동네에 브루어리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게 제 지론이에요. 동네 빵집이나 카페처럼요.” 실컷 수다를 떨며 맥주를 3잔째 마시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한다.
*스트롱 에일 워크스 전화, 이메일 혹은 위챗으로 브루어리 투어를 요청하면 된다. 갓 만든 수제 맥주를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맥주 1병 35위안, 86 136 0896 4700, strongaleworks@gmail.com,
위챗 ID strongaleworks, strongaleworks.wix.com/qd#!beer-lead
스트롱 에일 워크스 브루어리는 2011년 오픈했다.
브루어리의 외관.
브루어리를 운영하는 헤링턴은 칭다오에 산 지 13년 되었다.
양갈비 앤드 칭다오의 밤
칭다오스러운 밤을 찾아 형형히 불을 밝힌 위안샤오루로 향한다. 난징루 남동쪽의 뒷골목인데 맛집이 많아 ‘미식가 거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곳곳에서 파는 음식이 가지각색이다. 훠궈, 딤섬, 만두…. 양갈비 전문점이 늘어선 골목에 이르니 가게마다 문 앞에 화로를 내놓고 경쟁하듯 양갈비를 굽는 진풍경이 펼쳐져 발길을 붙잡는다. 그중 깔끔하고 손님이 많아 보이는 가게 1곳을 선택한다. 칭다오의 양갈비 식당에서는 중국어를 몰라도 상관없다. 냉장고 안의 재료를 손으로 가리키면 바로 꺼내서 구워주니까.
‘다 먹을 수 있을까?’ 살짝 걱정하며 어른 팔뚝보다 큰 양갈비 하나, 마늘과 버섯 꼬치를 고른다. 바깥에서 초벌구이한 후 점원이 테이블로 가져다준 양갈비는 석쇠 위에서 조금 더 지글지글 구우면 완성이다. 다 익으면 꼬챙이와 칼로 직접 갈비를 발라 먹는다. 기름진 부위도 신기하게 느끼하지 않고, 양고기의 노린내가 거의 없다. 짭짤한 향신료가 적절히 배어 감칠맛이 난다. 여기에 그 유명한 칭다오 맥주가 빠지면 안 될 일이다. 칭다오 맥주는 향이 거의 안 나는 대신 깔끔하고 시원해서 차를 곁들이듯 연신 홀짝이게 된다. 행복에 향이 있다면 바로 양갈비 굽는 향이 아닐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풍요로운 향의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문득 어릴 적 가족끼리 외식하던 것처럼 평화로운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양갈비는 남겼느냐고? 결국 갈비를 통째로 들고 싹싹 발라 먹었다.
*다쯔카오양투이 10am~12am, 86 150 9207 0818
중국 수제 맥주 공부하기
오늘밤 마지막 행선지로 리틀 리그 비어(Little League Beer)를 찾은 이유는 칭다오의 젊은 맥주 문화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절대 아까 마신 맥주로 부족해서가 아니다. 스트롱 에일 워크스의 헤링턴에 따르면 리틀 리그 비어는 요즘 칭다오의 맥주 마니아가 최고로 꼽는 펍이라고 한다. 단, 밤에 찾아가기 쉬운 곳은 아니다. 세련된 레스토랑과 클럽이 즐비한 난징루의 중톈 광장 한복판에 있지만, 구글 지도상의 위치가 애매한데다 간판도 작다. 일단 이런 내용의 영문 간판이 보이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증거다. “인생은 짧다. 무식해져라. 실컷 놀아라. 맥주를 진탕 마셔라.”
이처럼 별난 분위기는 펍 안까지 이어진다. 어둑한 실내에 구식 게임기와 바이크, 화로, 아방가르드한 그림을 들여놓았다. 카운터 뒤편의 진열장은 거의 중국 수제 맥주 박물관 같다. 미국, 벨기에, 뉴질랜드산 맥주는 물론이고 중국 각지에서 생산한 수제 맥주가 즐비하다. 베이징, 상하이, 다롄, 장쑤, 난징….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슝마오 판다(熊描 Panda)라는 베이징 맥주를 고른다. 흰 바탕에 판다의 검은 두 눈과 코만 그려놓은 라벨이 귀엽다. 화롯가에 둘러앉아 여독을 풀고 있을 때 마침 주인 리팡(李旁)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다. 그는 원래 알던 사이인 양 화롯가에 합류하더니 직접 제조한다는 찌어(Zier) 를 1잔 건넨다. “칭다오에서 수제 맥주를 만드는 건 스트롱 에일 워크스와 저희뿐이에요. ‘찌어(滋)’는 중국어로 ‘편안하고 좋다’는 뜻입니다. 마시면 ‘찌어’ 해지는 맥주지요.” 하나둘 들어온 단골손님이 리팡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서라면 예정에 없이 길고 ‘찌어’한 밤이 될 듯하다.
*리틀 리그 비어 7pm부터, 86 138 6392 2221
칭다오에서는 신선한 양갈비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펍 리틀 리그 비어의 내부는 주인과 그의 친구들이 그린 전위적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장식했다.
시티 투어
여행 둘째 날은 칭다오 출신의 투어 가이드 리원후이(李文慧)와 함께 구시가를 둘러봤다. 평일에 의류 수입 업체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친절하고 유쾌해서 금세 친해졌다. 홀리데이 인 칭다오 시티 센터(Holiday Inn Qingdao City Centre)의 리셉션 데스크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 가이드와 차량을 함께 예약할 수 있다.
*한나절 투어 1,350위안, ihg.com
만둣국으로 해장하기
구시가를 돌아보기 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중산루(中山路)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으로 향한다. 메뉴는 중국식 만둣국인 훈툰. 샤오칭칭훈툰관은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훈툰 식당인데 낡은 외관만 봐도 왠지 믿음이 간다. 이른 아침의 뒷골목은 휑하고 거친 분위기가 감돈다.
실내는 좀 썰렁한 구내식당 같다. 메뉴에 다양한 종류의 훈툰이 적혀 있다. 해산물, 돼지고기, 삭힌 달걀…. 그중에서 해산물이 든 하이셴훈툰을 주문한다. 홀로 열심히 만둣국을 먹던 현지인 남성을 참고해 반찬도 곁들인다. 한화로 약 370원에 감자볶음과 셀러리, 땅콩볶음 같은 반찬을 접시에 수북이 담아준다. 모두 중국 가정에서 흔히 먹는 반찬이라고 한다. 아주머니가 내온 이 빠진 그릇.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국에는 동글동글한 만두가 푸짐하게 들었다. 속에는 갖은 해산물과 부추를 넣었는데 새우가 통째로 들어 탱글탱글 씹는 맛이 좋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간도 세지 않아 집 밥을 먹는 듯 부담 없다. 아주머니에 따르면 신선한 칭다오산 식자재를 사용하고, 돼지 뼈를 8시간 동안 푹 고아서 육수를 우려내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훈툰 1그릇을 싹싹 비우니 칭다오 사람이 된 기분이다.
*샤오칭칭훈툰관 6:30am~8pm, 86 532 8280 0209
칭다오 투어 가이드 리원후이.
훈툰은 중국의 서민에게 사랑받는 만둣국이다.
샤오위산궁위안은 1984년 공원으로 조성한 이래 구시가의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전망 좋은 언덕에서
구시가에는 전망 좋은 언덕이 두 군데 있다. 정상에 버섯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 신하오산궁위안과 해변 근처의 샤오위산궁위안. 이 중 인기가 더 많은 곳은 신하오산궁위안이지만 우리는 샤오위산궁위안에 오르기로 한다. 한결 한적한데다 해변 가까이에 있어 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새파란 하늘과 바다, 붉은 지붕이 펼쳐진 시가지. 칭다오 엽서에 나오는 단골 풍경 말이다.
‘위산(魚山)’이라는 이름은 한때 칭다오 어부들이 그물을 말리던 데서 비롯했다는데, 이런 유래는 이제 확인할 길이 없다. 고급 주택가가 즐비한 언덕길을 따라 차로 10분 정도 오르니 정상 매표소에 도착한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이라면 주위를 둘러볼 필요 없이 곧장 3층짜리 팔각 누각인 란후가오(覽潮閣)의 꼭대기로 직행할 것. 가장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남쪽으로 칭다오의 명물인 긴 교량 잔차오와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서쪽에는 신하오산궁위안의 전망대와 궁전 같은 영빈관 그리고 무수한 붉은 지붕이, 동쪽에는 황금빛 제1해변과 칭다오에서 가장 높은 TV 타워가 보인다. 동서남북 온통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서 우리는 누각을 감싸는 테라스를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
1898년부터 30여 년간 이어진 독일 조계 시절의 모습은 구시가 전체에 남아 있다. 붉은 지붕의 유럽식 건물 사이로 돌이 깔린 도로를 걷다 보니 자꾸만 유럽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구도심은 아담해서 느긋하게 걸어 다니기 좋다. 신하오산궁위안 어귀의 궁전 같은 잉빈관에서 독일식 건물이 즐비한 장쑤루(江蘇路)의 기독교당을 지나 구시가의 랜드마크인 천주교당까지, 명소를 따라 산책하는 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샤오위산궁위안 7:30am~5:30pm, 86 532 8286 5645
*천주교당 8:30am~5pm, 86 532 8286 5960
샤오위산궁위안에서 바라본 구시가와 칭다오 만.
칭다오 천주교당.
먹자골목에서 식사하기
구시가 천주교당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피차이위안(劈柴院) 정문이 나온다. 중국식 아치형 문인데 ‘칭다오 명물 꼬치 거리’ ‘먹자 골목’같은 명성에 비해 조금 작다 싶다. 거리를 처음 조성한 연도인 ‘1902’가 써 있는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100년이 넘은 좁은 돌길을 따라 허름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정문 바로 안쪽에 있는 꼬치 가게 왕제사오카오는 영업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새로 단 간판을 제외한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테이블도 없는 비좁은 가게 안에 손님 몇이 옹기종기 서서 제 몫의 꼬치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몇 십 년째 꼬치를 굽고 있다는 요리사가 골동품 같은 꼬치 기계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우리는 오징어꼬치와 양꼬치를 하나씩 주문한다. 마치 은행원처럼 보이는 요리사가 무테 안경에 심각한 얼굴로 꼬챙이에 재료를 꽂는다. 꼬치 기계에 난 손잡이를 당겨서 꼬치 여러 개를 거꾸로 세워서 넣고는 손잡이를 밀어 닫는다. 시간이 적당히 흘렀다고 판단하면 손잡이를 열어 꼬치 상태를 점검하고는 다시 ‘꼬치 서랍’을 닫는다. 마침내 그가 내미는 꼬치는 0.1퍼센트의 오차 없이 꼼꼼하게 구운 게 분명하다. 재료가 신선하고, 감칠맛 나는 양념이 딱 적절하게 배어 있다. 시종일관 뚱한 표정이던 요리사는 단골손님이 오자 금세 아버지처럼 인자한 웃음을 짓는다.
꼬치로는 영 배가 안 차서 바로 앞의 모퉁이에 있는 가오스궈톄로 향한다. 1970년에 문을 연 만두 가게인데 긴 세월 동안 간장 종지 하나 바꾸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진 곳이다. 비좁은 가게 안에 내리쬐는 햇살도 몇 십 년 전 그대로인 것 같다. 가이드 리원후이는 대학 시절 이곳의 만두를 맛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회상한다. 쇠고기, 돼지고기, 해산물 만두에 한화로 400원이 안 되는 샤오미저우라는 죽도 주문한다. 간을 전혀 하지 않고 곡물만 갈아 넣고 쑨 죽인데 미음처럼 담백하다. 넉넉한 배 둘레에 고운 푸른빛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만두 접시를 가져다 준다. 엄마가 튀겨준 듯 부드러운 맛에 쉼 없이 집어먹는다.
추억의 맛
피차이위안 정문 왼쪽의 스마라오스핀뎬은 수제 요구르트 가게다. 귀엽고 빈티지한 외관에 반해 주저 없이 들어갔다. 칭다오산 유제품만을 사용해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 우유를 손수 만든다. 다락방 같은 2층에 둘러앉아 요구르트를 먹는다. 첨가물을 넣지 않아 맛이 순하고 깔끔하다. 도자기로 된 요구르트 병은 기념품으로 챙긴다.
*스마라오스핀뎬 9am~10pm, 85 180 5322 5580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왕제사오카오에서 양꼬치를 굽는 중이다.
중국 전통 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피차이위안.
구시가 스마라오스핀뎬의 수제 요구르트.
만두 가게 가오스궈톄는 40여 년의 세월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소설가의 집 방문하기
구시가 동쪽에 있는 칭다오의 대학로 다이쉐루는 젊은이가 즐겨 찾는 지역이다. 다홍빛 담장이 곧게 뻗어 있고, 무성한 가로수가 그림자를 드리운 길이 중국해양대학에서 문화대학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지나 칭다오 미술관 건너편의 골목으로 들어간다. 칭다오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가 라오서(老舍)의 집을 찾아가는 참이다. 낮은 담장에 붙어 있는 ‘국가 지정 AAA급 관광지’ 표지판만 빼면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이층집이다. 돌이 깔린 아담한 마당, 노란 담벼락이 고즈넉함을 자아내지만, 이곳에서 작가가 쓴 소설은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비는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이에게도, 의롭지 못한 이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사실 비는 공평하지 않았다. 본래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내리기 때문에.”(<낙타샹즈> 중)
베이징 출신의 라오서가 칭다오에 머문 시기는 630일 남짓. 1935년 겨울부터 1937년 여름까지 산둥 대학 중문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그가 칭다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은 이곳에서 저술한 1936년작 <낙타샹즈> 덕분이다. 베이징 인력거꾼의 비참한 생애를 그린 리얼리즘 소설로 오늘날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루쉰의 <아큐정전>과 함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대낮이지만 커튼을 쳐놓아 어둑한 작가의 집을 천천히 구경한다. <낙타샹즈>의 수많은 판본과 영화, 드라마, 연극 속의 장면들, 작가가 방금 벗어놓은 듯한 알이 동그란 안경과 셔츠, 붓과 만년필, 도자기, 반질반질한 나무 테이블과 의자, 화가이던 부인이 그린 꽃 그림. 이렇듯 평온한 풍경 뒤에 기다리는 이야기는 다소 씁쓸하다. 소설의 주인공 샹즈는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만다. <낙타샹즈>를 내고 30여 년 뒤, 라오서는 베이징에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 무리에게 공개적으로 구타당하고 다음 날 호숫가에서 의문의 사체로 발견된다. 그런 삶의 결말을 알 길 없던 시절, 이 집에서 보낸 날들은 더없이 평화로웠으리라. 대학로의 맑은 오후처럼.
*라오서구쥐(老舍故居) 무료 입장, 9am~4pm, 월요일 휴무, 86 532 8286 7580
대학로 카페의 오후
테이블 아래서 금붕어가 찻잔 사이를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다. 비스듬한 유리 천장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쪽 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구석구석 자리를 잡은 손님들은 속삭이듯 대화하거나 책을 읽고 있다. 라오서구쥐 앞 대로변의 작은 카페, 커피 스페이스(Coffee Space)의 오후는 이렇게 평온하다.
카페 주인 가오전구이는 일견 트렌디한 이곳의 모습 뒤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8년 전 다이쉐루에 문을 연 것은 당시 카페 하나 없던 이 지역의 집세가 쌌기 때문이고, 실내에 빼곡한 독특한 가구와 소품은 저렴한 중고품 혹은 손님이 준 선물이라고. 일례로 저 금붕어는 지인이 준 것인데, 마땅히 놓을 공간이 없어 테이블 아래에 어항을 설치했다는 뒷이야기. 가오는 커피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오직 커피만 팔아요. 이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카페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는 현지 커피 농장에서 직접 원두를 선별, 거래해 손수 로스팅을 거친다. 모범생처럼 안경을 쓴 진지한 얼굴로 커피를 내린 점원 쒀솽옌이 시그너처 메뉴인 셴화뎬(鮮花店) 블렌드 커피를 내준다. 에티오피아와 케냐 원두를 혼합한 것이라고. 은은한 꽃 내음을 음미하며 이곳 커피가 칭다오에서 가장 맛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커피 스페이스 8am~6:30pm, 86 532 8286 8215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작가 라오서의 옛집.
라오서구쥐에서 판매하는 소설 <낙타샹즈> 중국판. 영문판도 구매 가능하다.
온실을 연상시키는 커피 스페이스의 인테리어.
소원 명패 매달기
입안에 커피 향을 머금은 채로 다이쉐루를 따라 칭다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간다. 해가 기울 무렵이다. 1467년 지은 도교 사원인 톈허우 궁(天后宮)은 칭다오 만을 내다보고 있다. 유럽식 건물이 즐비한 구시가에서 중국 전통 양식의 건물이 오히려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경내에 들어서자 무수한 목탁을 동시에 두드리는 듯 혹은 작은 나무 주사위 수천 개를 한꺼번에 던지는 듯한 청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머리 위로 줄줄이 걸린 붉은 나뭇조각이 세찬 바닷바람에 서로 부딪치는 소리다. 몇 백 년은 됐을 법한 은행나무도 같은 나뭇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이는 사원에서 소원을 적어 매다는 쉬위안수다. 중국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저마다 가장 간절한 소원이리라 짐작한다.
톈허우 궁은 뱃사람의 수호 여신인 마쭈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녀는 바다를 돌아다니며 난파된 이의 목숨을 구해주어 칭송 받아왔다. 우리는 조금 으스스해 보이는 마쭈 상에게 절을 한 뒤, 작은 쉬위안수를 사서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창간 5주년 축하 메시지를 적고는 은행나무에 매단다. 언젠가 다시 오면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톈허우 궁 무료 입장, 동절기 8am~5pm, 하절기 7am~7pm, 86 532 8287 7656
칭다오식 세트 메뉴
파이구미판(排骨米飯)은 칭다오 사람의 소울 푸드다. 그것도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즐기는. 간장 소스 베이스의 돼지갈비탕인데 고기에 간이 완전히 배어 야들야들해질 때까지 푹 끓여낸다. 완허춘(万和春)의 파이구미판 세트에는 양철 접시 위에 파이구미판과 흰밥, 콜라가 나온다. 조금 느끼하다 싶을 때 콜라를 한 모금 마시며 이것이 완벽한 세트 메뉴임을 깨닫는다.
*완허춘 지모루 시장 지점 86 400 716 1717
칭다오를 상징하는 석양 보기
칭다오 만 동쪽 해안에서는 칭다오의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해안가로 나가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게으른 갈매기 떼가 욕조의 고무 인형처럼 파도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너머로 칭다오 맥주 라벨에 등장하는 교량인 잔차오와 고층 건물이 솟은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정확히 말하면 맥주 라벨에 나오는 건물은 440미터 길이의 잔차오 끝에 있는 누각 후이수거다. 여기서 후이수거는 작은 그림자로 보일 뿐이지만, 동서양이 어우러진 칭다오다운 풍경에 확실한 화룡점정을 찍어준다. 그 왼편에는 독일 조계 시절 세운 샤오칭다오(小淸島)의 흰 등대가 쓸쓸히 서 있다. 샤오칭다오는 1940년대 방파제를 세우며 육지가 된 섬. 수평선을 짙게 물들이던 해가 잔차오 뒤로 저물자 묘하게 쓸쓸하고도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마치, 칭다오의 오늘에 마침표를 찍듯이.
중국의 사원에서 소원을 적어 매다는 나뭇조각 쉬위안수.
완허춘 지모루 시장 지점에서는 식사 후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다.
파이구미판은 칭다오 10대 음식 중 하나다.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임학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사진가다.
양기업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디자이너다.
셋은 칭다오에서 경악스러운 추위와 훌륭한 미식을 한 번에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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