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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독자] 아름답고 쓸쓸한 ‘미야모토 테루’를 소개합니다

『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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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각국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각자의 언어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서점에 놓인 책들은 아직 한국 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번역자일 것이다. 그리고, 번역자야말로 한 줄 한 줄 가장 꼼꼼하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맨 처음 독자, 번역자가 먼저 만난 낯선 책과 저자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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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 저/송태욱  | 바다출판사

 

『환상의 빛』이 나오기 전에도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은 의외로 많이 번역되었다. 『사랑은 혜성처럼』, 『아침의 환희』 등 10여 편이 출간됐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거의 절판됐다. 어느 한 작품도 읽어보지 않았고 작가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나는 출판계 지인의 소개로 『환상의 빛』을 처음 접했다. 맥없이 사로잡혔다. 그래서 『금수(錦繡)』까지 구해 읽었다. 문학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던 시절,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던 그 무렵의 기분으로 거슬러올라간 듯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도저히 빼앗길 수 없는 소설의 존재 이유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소수이긴 해도 여전히 이런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출판사에 『금수』를 소개했으나 번역은 번번이 막혔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환상의 빛』이 알려졌고 팔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금수』까지 번역할 수 있었다.

 

이동진이 『환상의 빛』에 대해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작품에 대한 다른 말들을 모조리 사족으로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무진의 안개처럼 『환상의 빛』에는 물고기 떼가 비늘을 드러내며 팔딱이듯 반짝이는 잔잔한 바다와 거친 파도소리, 음울한 해명, 쌓일 새도 없이 황량한 어촌에 흩날리는 눈바람 속에 주절거리는 멍한 중얼거림이 있다”고 변죽만 울리는 감상을 써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환상의 빛』에는 중편 『환상의 빛』과 단편 『밤 벚꽃』, 『박쥐』, 『침대차』가 실렸다. 『환상의 빛』도 좋지만 단편 『밤 벚꽃』도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훈훈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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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

 

이번에 번역한 『금수』는 사랑을 추억의 자리로 돌리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나는 후기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이 소설은 환상을 잃어가고 그 자리에 현실이 들어오는 과정을 담았다. 그것은 바로 독자가 이 소설, 또는 아키(여주인공)와 아리마(남주인공)의 관계에 대한 환상을 잃어 가고 그들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키에게 아리마가 특별한 사람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듯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특별한 느낌에서 평범한 느낌으로 변해간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고 사랑이다. 추억의 자리, 즉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려는 안간힘을 담은 이 편지들(이 작품은 14통의 편지로만 이루어졌다)은 달뜬 연애편지보다 차분해서 서글프고 애달프다. 사랑을 얻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추억의 자리로 돌리기 위한 안간힘의 표현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연애와 편지가 주는 식상함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젖은 안개처럼 낮게 깔리며 밀려드는 문학적이고 고상한 분위기, 이것이 바로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다.        

 

미야모토 테루는 이미 쉰 편이 넘는 장편을 발표한 소설가다. 아쿠타가와상을 비롯해 다자이 오사무상, 요시카와 에이지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여러 문예지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많은 상을 받았고 문예지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어쩐지 『환상의 빛』이나 『금수』의 작가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걸 받지도, 맡지도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진으로 본 외모도 지나치게 번듯하고 말쑥해서 좀 실망했다. 구겨지고 가려지고 그늘진 부분이 많은 외모이길 바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무턱대고 내가 한 게 아니라 전적으로 『환상의 빛』『금수』를 통해 작가가 풍긴 분위기 탓이다.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소개되는 미야모토 테루는 “빗속에 잠깐 들른 서점에서 모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하고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너무 가뿐해서 멋진 동기가 아닐 수 없다. 재수가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거리감과 함께.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퇴근하는 길에 비를 만나 잠시 비를 그으려고 들른 서점에서 어느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었더니 일본어가 ‘당황스러울 만큼’ 너무나도 지독해서 도저히 마지막까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일찍이 문학작품을 많이 읽은 자신이라면 좀 더 재미있는 것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동기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가 가까이 느껴졌다. 이쪽을 믿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독자’가 번역자인 경우는 많지만, 사실 번역자는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고 많이 읽지도 못한다. 나도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는 게 전부다. 가끔 잠들기 위해 읽다가 날을 새우게 하는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면 다음 날 일을 못한다. 미야모토 테루의 다른 작품도 이제야 읽을 생각을 한다. 어떤 작품을 골라 읽을지는 내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수』가 잘 팔리면 출판사에 다른 작품을 소개할 수 있을 뿐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대표작은 ‘강 3부작’으로 불리는 『흙탕물 강』, 『반딧불 강』, 『도톤보리 강』, 그리고 내가 번역한 『환상의 빛』『금수』, 자전적 대하 작품으로 영화화되거나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진 『유전의 바다』, 『도나우의 여행자』, 『유슌(優駿)』 등이다. 번역가도 어떤 작가 앞에선 ‘그냥 독자’로 돌아간다. 일단 『아침의 환희』와 『혜성 이야기』를 읽어볼 생각이다. 20년쯤 전에 나온 번역본도 구할 수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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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미야모토 테루 저/송태욱 역 | 바다출판사
20세기 후반 일본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에서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현대 일본 서정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환상의 빛]을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금수》는 [환상의 빛]을 모티브로 삼은 본격 서간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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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태욱(번역가)

  •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저/<송태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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