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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트위터처럼 시 읽기] 정현종 『나는 별 아저씨』

하지만 시인의 노래는 이율배반이라기 보다는 정직한 고백에 가깝다. 왜? 사람이 천국이고 사람이 지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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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은 고독의 이면을 잘 간파하는 시인이다.

 

004 나는 별 아저씨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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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아저씨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섬」 中 17글자


#정현종
#사람들은누구나 #섬

 


단 두 줄짜리 시다. 언뜻 보면 낭만적인 듯 보이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무서운 시다.

 

사실 사람은 때로는 지옥이고 때로는 천국이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좋지만, 어느 날 문득 '아 세상은 혼자구나'라고 가슴을 치는 날이 있다. 당연하다. 인간은 혼자다. 누구도 내 대신 아파하거나 내 대신 죽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외로움이란 너무나 힘겹기에 사람들은 무리를 짓고, 곁에 누군가 두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무리 때문에 아파한다.

 

이 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다. 무리를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고독 선언문'인 셈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끔 그 섬에 가고 싶어한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까뮈의 스승이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이 생각났다. 그 산문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 씩만 바람소리를 떠나 보내고 그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정현종의 「섬」은 그르니에 식으로 말하면 '가만히 일어선 겨울나무 같은 문장'이다. 그만큼 고독하고 그만큼 단정하다. 살 빼고 피 빼고 뼈만 남긴 문장의 미학이 짜릿하게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모두 누군들 섬이 아니겠는가. 또 누군들 그 섬이 싫어지는 순간이 없겠는가. 그래서 어느 날 그 섬들 사이에 서 있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이 또 인생 아니겠는가.

 

이 「섬」이라는 시는 정현종의 두번째 시집 『나는 별아저씨』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집에는 「다시 술잔을 들며」라는 시도 실려있다.

 

이 편지를 받는 날 밤에 잠깐 밖에 나오너라
나와서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아라
네가 그걸 바라볼 때 나도 그걸 보고 있다
(그 별은 우리들의 거울이다)
네가 웃고 있구나, 나도 웃고 있다
네가 울고 있구나, 나도 울고 있다

- 「다시 술잔을 들며」

 

정현종은 고독의 이면을 잘 간파하는 시인이다. '다시 술잔을 들며'라는 시에서는 편지를 받은 누군가에서 밖으로 나와서 달을 보라고 권유한다. 사랑을 노래했던 예전 우리 시조에 종종 나왔던 메타포다. 낭만의 절정시대였던 중국 당나라 시인들인 이백, 두보, 이상은, 백거이도 달을 가지고 시를 쓰기 좋아했다.곁에 있을 수는 없지만 나도 달을 보고 당신도 달을 보고, 그렇게 해서라도 이 외로움을 달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니, 섬으로 도망치고 싶다고 했던 시인이 달이라도 함께 봐달라고 사정을 하다니. 이 무슨 이율배반인가 싶다.

 

하지만 시인의 노래는 이율배반이라기 보다는 정직한 고백에 가깝다. 왜? 사람이 천국이고 사람이 지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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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아저씨 정현종 저 | 문학과지성사
“시는 하나의 나라이다. 우리가 우리나라, 꿈나라, 자유의 나라 할 때의 뜻과 같은 뜻에서 시는 나라이다. 말하자면 시는 우리의 나라요, 꿈나라요 자유의 나라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시는 그런 나라들의 이미지이며, 이 이미지의 현실 속에 현실적인 나라를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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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연(시인,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 나는 별아저씨 <정현종>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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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그르니에> 저/<김화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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