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후의 발칙한 런던산책, 두 번째 이야기
② 큰 책방, 작은 책방, 다른 책방Ⅰ
런던에 가게 되었을 때, 이 책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채링크로스의 고서점 거리와 마크스 서점의 풍경을 상상해 봤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런던의 서점이었다. 그곳에 가면 작가 헬렌 하프가 다른 대륙의 서점까지 편지를 보내 찾고 싶었던 책의 가치를 나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 ‘채링크로스 84번가’ 중에서
미국의 이름 없는 작가 헬렌 하프와 영국의 고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채링크로스 84번가’라는 소설이 있다. 처음에 헬렌과 프랭크는 일상적인 문의와 답변을 주고받는 직원과 손님의 관계였다. 그러나 헬렌과 마크스 서점 사이에는 점차 책과 책값뿐만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들이 오가고, 다른 서점 직원들과 헬렌 하프의 친구들까지 이 관계에 들어온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말이다.
런던에 가게 되었을 때, 이 책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채링크로스의 고서점 거리와 마크스 서점의 풍경을 상상해 봤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런던의 서점이었다. 그곳에 가면 작가 헬렌 하프가 다른 대륙의 서점까지 편지를 보내 찾고 싶었던 책의 가치를 나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국 자연사박물관이나 내셔널 갤러리쯤은(!) 쿨하게 뒤로하고 런던의 서점으로 먼저 향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몇 군데는 포기해야 했다. 찾아갔으나 체류 기간 내내 휴무인 곳도 있었다. (그곳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헤이우드 서점이었다.) 오늘은 런던의 ‘큰 책방’을 소개한다.
채링크로스의 ‘큰 책방’에 가다
이제 런던 채링크로스에는 소설 속의 그 작고 따뜻한 서점은 없다. 그 대신 런더너들과 관광객들의 복합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포일즈 Foyles 라는 대형 서점이 있다. 현재 포일즈는 채링크로스, 브리스톨, 버밍햄, 워터루 스테이션, 로얄 페스티벌 홀, 웨스트필드 스트렛포드 시티, 이렇게 런던에 5개, 런던 외곽에 1개 지점을 운영한다. 내가 방문한 곳은 번화한 소호 거리 한가운데 최대 규모의 포일즈 Foyles다. 토튼햄 코트 로드 Tottenham Court Road 역에 내려 복잡한 거리를 몇 분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새로 꾸린지 2년이 채 안 되는 8층 규모의 건물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서점이 무려 8층짜리라니!
런던의 겨울은 낮이 짧다. 춥고 어두운 런던의 밤에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은 서점이 거의 유일하다
포일즈 Foyles
107 Charing Cross Road, Lodon WC2H 0DT
영업 시간: 월-토 9:30~21:00
일 11:30~18:00 (카페는 서점 마감 30분 전에 닫는다.)
//www.foyles.co.uk/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구.
“welcome book lover, you are among friends.”
한국에 대표적인 대형 서점들은 단일 층을 넓게 써서 탁 트인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는 편인데, 이곳은 소비자의 연령과 취향을 고려해 각 층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이를테면 거리와 연결된 사실상 1층인 G(그라운드) 층에는 베스트셀러와 잡지, 조금 낮은 연령의 어린이 책을, 1층에서 몇 계단 내려가면 시작되는 LG(Lobby Ground)에는 높은 연령의 어린이들, 임산부들을 위한 책, 장난감, 취미, 팬시용품 등을 놓았다. 그 위층부터는 성인 소설, 예술, 논픽션 분야의 책들이 층별로 정리되어 있다. 다행히 안전하고 쾌적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식당
꼭대기 층에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맥주나 와인을 곁들인 메인 디쉬가 10파운드(한국 돈 18000원) 정도니 끔찍한 런던 물가를 감안하면 꽤 합리적인 가격이다. 시간대만 잘 맞춘다면 몸과 마음 모두 배부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포일즈는 포일 형제(윌리엄과 길버트)가 1906년 채링크로스 로드에 서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윌리엄의 딸 크리스티나 포일이 서점을 맡으면서 당대의 작가들을 위한 행사와 강연을 제공했고, 포일즈가 런던을 대표하는 서점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13-119 채링크로스 로드를 오랫동안 지켰던 포일즈는 2003년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4년 6월,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사전 조사에 의하면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장난감 부스를 들여오는 등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확대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 책 코너는 양장(hardback)과 무선제본(paperback)으로 서가를 나누었다.
미취학 유아들을 위한 공간에는 이렇게 놀 수 있는 매트와 장난감 등을 배치했다.
어린이 책 서가에도 담당자의 추천사를 놓았다. 컬러링북을 대표하는 ‘비밀의 정원’의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해리포터 책만으로 구성된 서가. 지팡이를 사고 싶은 마법사 어린이들을 위한 위트 있는 메모도 함께.
해리포터, 스타워즈 등 어린이들의 관심사 트렌드를 서가에 반영하고 있다.
세일
이날은 마침 세일 기간이었는데, 구간, 신간 상관없이 선정된 도서들을 반값에 살 수 있었다. 작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독자로서 저렴한 값에 책을 만나보는 기쁨은 줄었던 터라 (대신 이젠 서점에 가도 온라인 서점에 검색해보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 쪽을 할애하여 담당자 선정 도서와 베스트셀러를 진열하는 형태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채링크로스엔 소설 속 그 책방이 없다. 하지만 쾌적하고 편안하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으며, 손글씨 대신 점원이 컴퓨터로 작성한 추천의 글을 보고 책을 고를 수 있는 곳, 작은 것 하나까지 고객의 연령과 소비 행동을 배려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 있었다. 한국의 대형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책방이었지만, 삭막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궁금증을 품고 다음 책방으로 향했다.
<관련 책 소개>
포일즈의 베스트셀러 1위는 『사피엔스』
과학기술 담당 직원 스테판이 추천하는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다른 책방에서도 한국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반가웠다.
런던에 많고 많은 대형 서점 중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읽었다. 런던의 랜드마크를 소개한 사랑스러운 그램칙이다. 압도적인 그림에 매료되어 포일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한국판은 품절이다.
『This is London』
<작은 책방, 다른 책방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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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목소리를 듣고 정리하는 일을 합니다. (트위터 @tappings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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