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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사라진 후 살아간 이야기 <바닷마을 다이어리>

모두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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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즈 감독은 줄곧 타인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누군가가 사라져도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속 다스 베이더는 검은 철가면을 뒤집어쓴 채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왜곡된 남성성 혹은 영웅의 이미지에 갇힌 아비를 상징해 왔다. 아들의 칼에 쓰러져 죽으며 그제야 자신이 그의 아버지라는 말을 저주처럼 내뱉는 다스 베이더는 가부장제라는 그늘에 갇힌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권력과 재물이 힘의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제 몸 하나 제대로 설 자리를 못 찾은 남자들이 가지는 또 다른 이름, ‘아버지’.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 할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아버지들은 그렇게 늘 주춤거리며 가족이라는 구심점에서 점점 멀어져 왔고, 어쩌면 늘 옆에 있지만 존재하지는 않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비를 잃은 가족들은 아비 없는 생존법을 터득해야 했다. 다스 베이더의 신화는 그렇게 가부장제의 뿌리가 깊은 동양에 오히려 더 적합한 상징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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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는 한결같이 아비가 사라진 후(혹은 제 아비에게 버림받은 후), 그래도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2016년을 시작하는 첫 영화로 선택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그렇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있자면 2005년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가 묘하게 겹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아이들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자란 이후의 후일담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부모 없는 아이들의 꿋꿋한 성장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고 차분하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던 히로카즈 감독이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아버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단 한 번도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료타가 비로소 가슴으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성장담은 그렇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신파적인 울림도 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덜 자란 아버지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그 시선에 있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모두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는 관조적인 시선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도 드러난다.
 
자그마치 15년이나 소식을 끊고 살아온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 자매-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가호)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기억도 추억도 없기에 슬픔도 감흥도 없지만,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는 그들에게도 혼란스러운 현실이다. 가장이나 다름없는 큰언니 사치는 홀로 남겨진 스즈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스즈를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혼란과 소동, 격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격정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여전히 호들갑을 떠는 법을 모른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오열과 머리 끄잡기 대신, 아버지가 사라진 공간에 함께 남은 네 여성의 변화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사실 한 번도 온전한 가족이었던 적이 없는 네 여성이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어조는 속삭임처럼 낮고 조용해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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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이야기를 하거나 격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우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바라는 딱 그만큼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색감을 지니면서도 요시다 아카미의 동명 원작 만화의 풍미도 살리려는 조심스러움과, 전체적으로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에피소드들이 엮이지 않고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네 자매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녀 사치와 이복동생 스즈에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나머지 자매들이 병풍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역할의 경중을 떠나 모든 인물을 보듬어 온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유의 섬세함과 느림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은 만화의 프레임이 담아내지 못하는 드넓은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더 큰 울림을 전한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는 당연히 악역이라 불릴만한 인물들-아이를 버린 엄마, 가족을 버린 아빠, 갑자기 등장한 이복동생, 친자가 아니라 고이 기르던 아이를 맞바꾸는 부모-가 등장한다.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고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드라마가 더 강해짐에도 히로카즈는 자신의 작품 속에 악인을 만들어 넣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들조차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2016년 처음 본 영화였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꼭 봐도 좋을 2016년의 첫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왜냐면 히로카즈 감독은 줄곧 타인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누군가가 사라져도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비가 내리면 호수에 여울이 지고, 햇볕이 쬐면 젖은 풀이 마르고, 눈이 내리면 더러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덮일 수 있다고 속살거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나처럼 격한 위로 대신 살포시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 같은 영화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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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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