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고향의 맛, 화합의 맛
하루 한 상 – 열 번째 상 : 만두
만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 만두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빚어 먹으면 더 맛있는 새 해 첫 상이자 열 번째 상은 만두.
대대손손 내려온 만두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군이다. 22살이 되던 해, 광복이 되고 먹고 살길을 찾기 위해 남쪽으로 오셨다. 그리고 다신 고향을 밟아보지 못하셨다. 가족을 이루신 후 겨울이 되면 자주 해 먹던 음식은 만두.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어릴 적부터 만두를 같이 빚었었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6~7살부터다. 왜 어린아이도 만두 빚기를? 한 사람의 손도 절실한 음식이 만두이기 때문이다. 설이 되면 잘 팔리는 책에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만두빚기를 책으로 접한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아쉬웠다. (얘들아 우리 집에 오면 직접 만두를 빚어볼 수 있단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비해 한 입에 쏙 없어지기 때문에 만두 속 준비를 도맡아 하는 엄마는 만두 만들기를 싫어하셨지만 그래도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맛’이 있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만두 빚기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만두를 매우 많이 좋아하는 남쪽에서 온 사위가 들어와서 9월부터 월 1회로 정례화되는 분위기이다. 할아버지에겐 고향의 맛. 우리에겐 화합의 맛.
가지런한 만두들. 이 모양들이 우리의 최선이다.
만두는 이렇게!
만두의 첫 맛을 좌우하는 ‘피’는 과감한 시설투자로 인해 그 맛이 한 결 업그레이드됐다고 할 수 있는데, 약 30여 년 전, 할아버지께서 이태리산 파스타 기계를 남대문 시장에서 들여오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계로 파스타를 해본 적은 없다.) 기계는 반죽을 얇게 만드는데 큰 혁신을 안겨다 주었고 밀대로 밀어야 했던 고됨에서도 해방시켜 주었다. 그렇게 기계의 존재는 지금껏 만두를 빚어 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피’ 다음은 ‘속’ 이다. 그 속은 ‘김장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겨울 음식의 맛은 대부분 김장 김치의 성패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 집은 거기에 만두를 추가해야 한다. 속을 만드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적당히 잘 익은 배추김치를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물기를 꼬옥 짠다. 데친 숙주나물, 두부도 꼭 짜서 준비한다.
2. 1에 돼지고기와 파, 참기름 등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살짝 간을 보고 취향대로 소금 및 후추를 넣는다. 각 재료의 양은 마음대로.
엄마는 1의 단계가 너무도 힘들어 한창 만두를 많이 먹는 시즌엔 팔목이 시큰거릴 지경이셨다. 그래서 들여놓은 것이 일명 ‘짤순이’. 음식물의 물기를 제거해주는 기계인데, 이 기계는 ‘만두피 기계’ 만큼 만족을 주지 못했었고 결국 사라졌다. 사람 손만큼 물기를 꼭 짜주지 않는 다시며 다른 사람 손도 싫다 시며 지금도 엄마는 만두 속을 굳이 본인 손으로 만들고 계시다. 지금의 유산을 물려준 시아버지를 떠올리며.
새해맞이 만두 빚기. 온 가족 총출동! 만두피 제조기인 파스타 기계도 살짝 보인다.
만둣국 한상. 이 날은 귀한 손님이 오셔서 만두와 어울릴 다른 음식들도 준비했더랬다.
세계 어디든 있는 만두
집 만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국식 만두의 느낌이 가끔 생각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찾는 곳은 ‘ㅊㅈ포자’ 이다. 바로 빚어 증기로 쪄내는 만두피의 쫄깃함과 속을 가득 채운 육즙의 환상적인 조화에 둘이서 세 판을 먹은 적도 있다. 얼마 전엔 새로 떠오른 숙대 입구역 근처 ‘ㄱㅂ만두’에도 가보았었다. 저녁 6시쯤 갔었는데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메뉴는 단 하나 중국식 군만두. 약 15분 뒤 만두가 나왔고 카운터 옆자리에서 조용히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진이라며 주인아저씨가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미안해하셨다. 만두는 어디든 인기인 걸까. 이태원의 ‘ㅈㄴ덤플링’도 풍문을 많이 들어서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남편님에게 말하니 본인이 직접 맛보았던 콜롬비아식 만두 ‘엠빠나다’를 이야기하신다.
그러고 보니 만띄, 만트, 라비올리, 교자, 뻴메니, 피에로기 등등 세상엔 다양한 만두와 만두를 뜻하는 단어가 있다. 언젠가 그 만두를 모두 맛볼 수 있길 바라본다.
포자와 군만두
(부록) 남편의 상
안녕하세요. 새해 첫 남편의 상은 애석하게도 쉽니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꽉 찬 만두 속처럼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날 남은 만두 속과 모닝빵으로 ‘꼬마손버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채인선 글/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1998년 어린이 문화대상 수상작. 해마다 설날이면 무엇이든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손이 큰 할머니는 숲 속 동물들과 만두를 빚는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한 소쿠리씩 싸주고도 남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 년 내내 꺼내먹을 수 있는 설날 만두다. 할머니는 김치와 숙주나물, 두부와 고기를 커다란 함지박에 쏟아붓고 만두소를 버무린다. 다음은 만두피를 만들 차례이다. 밀가루 반죽은 방 문턱을 넘어 툇마루를 지나 울타리 밖 소나무 숲까지 이르렀는데, 다음날 아침 동물들이 와서 언덕같이 솟은 만두소를 보고는 입을 쩌억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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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않습니다.
<채인선> 글/<이억배> 그림8,550원(10% + 5%)
1998년 을 수상한 작품으로 무엇이든지 엄청나게 크게 하는 손 큰 할머니가 설날을 맞아 만두를 만드는 이야기이다. 커다란 책을 펼치면 손 큰 할머니가 만든 엄청나게 많은 만두를 숲 속의 동물들이 모두 함께 몇날 몇일동안 함께 먹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 민화풍의 정감있는 그림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