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인간,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
『악의: 죽은 자의 일기』 정해연 저자 인터뷰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나오는 것이 소재가 되는 일이 많아요.
데뷔작 『더블』로 '놀라운 페이지터너'라는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의 유망주로 떠오른 정해연 작가의 최신작 『악의: 죽은 자의 일기』가 출간되었다. 영인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차기 유력 시장 후보에 오른 여권의 스타 정치인 강호성의 집안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망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의 수사 과정을 흡인력 있는 전개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담아낸 작품이다.
추악한 성욕과 사악한 야심 등이 맞물려 벌이는 권력자의 거침없는 질주와 권력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 그리고 작가가 숨겨놓은 놀라운 반전이 독자들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다채로운 등장인물과 짜임새 있는 구성,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투영하는 섬뜩한 묘사들로 『악의: 죽은 자의 일기』는 한국 추리 스릴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더블』 이후 2년만의 장편소설인데, 이번에도 형사가 주인공이네요. 형사를 특별히 주인공으로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특별히 무슨 이유가 있어 형사가 주인공인 소설만 쓴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연달아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형사가 되었네요. 사실 스릴러 작품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라는 주제를 빼놓기는 어렵고, 발생한 사건을 꼭 해결해 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것이 형사라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측면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공적인 직업이 갖는 사명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공적인 인간으로써의 자신과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 그 두 가지의 자아 사이에서 가지는 딜레마도 강렬하게 다가오고요. 그래서 『더블』에서는 자신의 범죄를 숨겨야 하는 형사, 이번 『악의』에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범죄자를 구해야 하는 순간에 고민하는 형사를 그렸어요.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받고 보니 다음에는 형사가 나오지 않는, 적어도 주인공이 아닌 작품을 꼭 써야 할 것 같아요. 하하.
독자들로부터 전작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후속작에 대한 부담도 크셨을 듯한데요.
전작에서는 과분한 칭찬도 들었고, 중국과 태국에 번역, 출간되는 성과도 얻었어요. 모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었고, 너무 감사하고 신기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스릴러 작품으로써 데뷔작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봐주신 점도 있으실 거예요. 그래서 꼭 첫 번째와 같이 칭찬을 들어야겠다 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너무 욕심인 거죠. 회사도 그렇잖아요. 신입은 실수해도 귀엽게 봐주지만, 그 뒤에는 용서는 없죠. 소설이라는 걸 처음 쓸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저는 열심히 썼고, 지금은 제 손을 떠났으니 평가는 제 몫이 아니에요. 성과가 좋지 않거나, 호평을 받지 못해도 반성은 하겠지만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번 작품은 정치인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작가 소개에도 적었지만, 저는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나오는 것이 소재가 되는 일이 많아요. 이 소재를 생각했을 때가 지방 선거가 있을 때였는데,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에 앉아있으면 적어도 하루에 네 번 정도는 후보들이 와서 악수를 청하는 거예요. 불편한 티를 내도 손 한번 잡아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요. ‘이 시즌이 지나면 이 사람들 중 시민들에게 진짜 손을 내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고요. 치열하게 선거 활동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이 지켜야 하는 건 뭘까 하는 상상을 하며 출발한 것 같아요. 물론 그분들이 다들 비리를 저지르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성실하고 진실 되게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냥 한 직업군을 보며 어두운 생각을 하는 작가 개인의 업무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강호성의 어머니 장옥란도 그렇지만, 서산댁이나 서동현 형사의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든 '어머니'라는 키워드가 소설 전반에 녹아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엄청난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의 범죄자들의 상당수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어머니의 부정을 목격하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방송이나 책들을 통해 알고 계실 거예요. 강호성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범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정이고, 서산댁은 자식이 원하는 것이면 그 범죄를 완성해주겠다는 모정이죠. 두 모정 모두 자식을 위한다는 보기 좋은 명분으로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에요. 그 비틀린 모정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산댁과 방옥순 두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소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요?
소설의 마지막쯤, 형사 서동현은 어떻게 해도 잡을 수 없는 강호성을 보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그 강호성이 죽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앞뒀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멈칫하며 고민합니다. 그를 과연 살려야 하는 것인가. 그를 잡아넣으려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쳤다. 그리고 그는 반성도 없다. 앞으로도 그를 잡아넣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그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능욕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과연 살려야 하는가. 그 주저를 가장 쓰고 싶었습니다.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서동현의 입장에서 그 주저함은 그가 가진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요. 그렇다면 이번 소설을 집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더블』때도 그랬고, 이번 『악의-죽은 자의 일기』도 그렇고, 초고가 나오는데 1년, 여러 번의 수정과 퇴고를 거쳐 책으로 나오기까지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보통 소재는 억지로 생각해내는 것보다, 평소 생활하면서 비열하거나(?), 무섭거나(!), 잔인한 생각(?!)들을 하며 만들어 내요. 그 뒤에는 엉덩이가 의자와 절친이 될 때까지 앉아서 초고를 쓰고 수정들을 해나갑니다. 전 기본적으로 제가 독자인 입장에서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할 때의 쾌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이번 글은 주인공인 형사가 수사를 하면서 계속 벽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장면을 써야 했고, 마지막까지 어떻게 보면 이기지 못한, 패배의 순간들을 써야 했던 점이 제일 힘들었고, 탈고하는 순간까지 마지막 장면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야 했어요.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해피엔딩이 아니고,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모든 끝이 해결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을 정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들려주세요.
정유정 작가님을 좋아해요. 완전 팬이에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정유정 작가님을 꼭 추천합니다.하지만 정유정 작가님은 이미 너무들 많이 알고 계시겠죠? 제가 추천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박지영 작가님의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과 정이현 작가님의 『너는 모른다』를 아주 재미있게 봤고, 최근에는 황희 작가님의 『월요일이 없는 소년』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독자님들이라면 아주 재미있으실 것 같아요.
앞선 두 작품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서,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분위기의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코믹한 부분도 있도록 해볼 거구요. 곧 출간되는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5에 단편작품을 싣게 되었는데요. 그것을 미리 보신 저희 에이전시 스토리마인 대표님께서 그 단편을 장편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작업을 해보고 있는데요,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을 생각이에요. 그동안 무거운 분위기를 써서 가벼운 분위기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한 2, 3년쯤 후에 신간이 나왔는데 다른 작품이 나왔다면 이 작가가 그 글은 포기했나 보다 라고 생각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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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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