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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철 “셰익스피어 씨, 운명이란 무엇인가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11월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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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우리 삶을 이끄는 힘은 복수심, 권력욕, 질투심, 사랑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에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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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스24와 민음사가 함께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11월 강연은 ‘셰익스피어 씨, 운명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강의를 이끈 이는 최종철 박사로, 그는 셰익스피어와 희곡 연구를 바탕으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 상인』 등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치기도 했다. 


지난 26일 저녁, 논현동에 위치한 북카페 ‘북티크’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최종철 박사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를 전후로 운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시각이 문학 속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었는지 설명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끌어가는 어떤 주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신화적인 세계, 종교적인 세계에서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죠. 더불어 도덕적으로 인과응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요. 최초의 인간은 모든 게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운명은 정해져 있고, 힘이 미약한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자신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돼요.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가 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퍼졌고요. 『햄릿』의 5막에도 섭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개념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주체는 인간에게 넘어왔어요. 초자연적인 힘과 인간이 맺는 관계는 비극을 해석할 때 굉장히 중요해요. 외부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을 집필하던 당시에도 종교적, 도덕적 관점에서 운명을 이해하는 시각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가는 인간이 아닌, 무의식의 어떤 힘에 의해 스스로를 비이성적으로 몰고 가는 존재로서 인간을 그렸다. 


“셰익스피어 비극에서는 주인공인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돼요. 비극적인 결론에 이를 수도 있고, 화해하고 희극적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죠.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고요.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어요. 선택이 본인에게 주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전 시대의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의지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아요. 햄릿도 신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결정이라고 말해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우리 삶을 이끄는 힘은 복수심, 권력욕, 질투심, 사랑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에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에요.”


이어서 최종철 박사는 셰익스피어가 보여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아주 현대적인 시각이라고 평가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설명은 아직도 유효한 거예요.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성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도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접근할 수 있는 거죠. 셰익스피어는 아주 현대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그 본성이 어디에서 왔는지 규명하지는 않아요. 셰익스피어는 그 부분에는 관심이 없어요. 일단 본성이 인간의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조건들이 맞았을 때 비극적인 결론으로 나타나는 건지’ 그것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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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메타포를 보여준 작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지른다. 햄릿과 맥베스는 많은 이들을 살해했고, 오셀로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만다. 리어왕은 두 딸의 감언이설에 속아 영토를 물려주는 바람에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었고 끝내 막내딸까지 잃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통쾌함이 아닌 측은함이다. 바로 이 지점에 셰익스피어만의 탁월함이 숨어 있다고 최종철 박사는 말한다. 


“결말에 이르러서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면 비극의 감정이나 카타르시스가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그 인물들에 대해서, 심지어 많은 사람을 죽인 맥베스에게도, 동정과 공감을 느끼도록 만들어놨어요. 일단 주인공들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죠.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걸 보면 완전히 시인이에요. 맥베스가 양심과 야심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 것만 봐도 기가 막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는 그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메타포를 보여줘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언어인데요. 셰익스피어는 어떤 작가보다도 영어를 뛰어나게 구사해서, 인간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고 세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했어요. 감동적이면서도 극적으로 구사했죠.”


4대 비극의 주인공들은 ‘극악무도한 괴물’이 아닌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운명의 갈림길 앞에서 치열하게 고뇌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햄릿』에는 복수를 해야겠다는 원시적인 힘과 복수에 저항하는 힘이 있어요. 두 개의 힘이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결국은 복수를 하게 되죠. 『오셀로』에도 질투를 끌고 가는 힘과 그 질투를 이기고 다시 데스데모나의 사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이 있어요. 둘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오셀로가 질투에 빠지고 데스데모나를 죽이게 돼요. 그러나 끝에는 자신이 질투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죠. 자신이 어떻게 하면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데스데모나의 사랑에 충실 하려면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자결하는 거예요.”


『리어왕』 『맥베스』에서 발견되는 고민의 흔적들도 다르지 않다. 


“리어왕은 딸의 사랑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과 딸을 잃죠.  처음에는 나쁜 일이 일어난 원인을 외부로 돌리지만 결국은 인정해요. 자기가 어리석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라고요. 하지만 비통해 하면서도 사랑을 놓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에 충실한 사람으로서 리어왕에게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되는 거예요. 맥베스 역시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끊임없이 시달려요. 도덕적으로 살인을 범하는 것에 반대하는 힘이 있어요. 그게 바로 맥베스 안에 살아있는 양심이에요. 맥베스는 죽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 야심에 저항하는 힘을 그대로 표현한 거예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는 유혹에 넘어가는 힘도 있지만 넘어가지 않으려는 힘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죠. 유혹에 넘어갔을 때 인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맥베스가 몸을 던져서 보여주니까, 맥베스의 죽음 앞에서 애석하다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셰익스피어 씨, 운명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날의 강연에서 최종철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대신해 우리에게 대답했다. 운명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끌고 나아가는 것임을. 아울러 그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안에 감춰진 해답을 들려주었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선택의 기로에 서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숙명임을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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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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