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책은 사람을 만든다
적절한 공감의 거리, ‘소설가 은희경’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공감의 거리 만들기
은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권희철 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너무 가까워지면 ‘관계’가 개인을 삼키고, 너무 멀어지면 ‘거리’가 고립을 낳는다.”
소설가 박성천이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를 통해 만난 문화예술인 7인에 대한 인터뷰 후기를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은희경 작가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누군가가 자신이 쓴 책을 돈을 주고 사서 읽는다는 것은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서는 그런 호사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은희경 작가 또한 다르지 않을 터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소설을 써왔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특권과 성취감 때문이다.
“소설은 쓰는 것도 힘들지만 인정받기는 더 힘들지요. 물론 팔리는 소설을 쓰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요. 그럼에도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굉장한 성취감을 줍니다. 사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잖아요. 특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녹록치 않은 세상 건너기 위한 방편 ‘고독의 연대’
“냉소적 태도, 냉소적 시선으로 세상을 봤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거나 낙관적이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가 제시하는 위로의 방식은 고독을 인정하라는 거였습니다. ‘고독의 연대’라는 표현도 쓴 것 같은데, 마치 이런 거죠. 나도 고독하고, 너도 고독한 사람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자연스레 고독의 연대가 싹트는 거에요.”
그녀의 소설에 드리워진 ‘냉소’의 진원은 고독이다. 고독한 인물을 위로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감정 이입을 통해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작품들은 앞선 선배들에 의해 숱하게 다루어져 왔다. 그녀만이 다룰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고, 이것이 바로 ‘냉소’라는 태도였다. 물로 따지면 미지근한 물이 아니라,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이지 않은 상태다.
“작품을 쓰고 나서 고칠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 ‘거리’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특정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나 작가에게 절실하다고 해서 독자들이 그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을 온전히 수용하기는 힘들거든요.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려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아마도 이 과정에서 냉소적 시각이 발현되지 않나 싶어요.”
작품을 쓰고 나서 고칠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 ‘거리’입니다. 은희경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인물과의 ‘거리’에 적잖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작가에게 절실하다 해서 특정 인물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독자가 그 사람의 입장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물과의 적절한 ‘거리’가 오늘의 은희경 작가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에 충분히 공감했고 박수를 보냈다. 그녀의 객관화 방식이 그만큼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의미다… 일상의 사람과의 관계와 고립 또한 전적으로 ‘거리’에 의해 파생된다. 지나치게 밀착되거나 무관심해지는 게 일반적인 사람과의 거리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
은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권희철 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너무 가까워지면 ‘관계’가 개인을 삼키고, 너무 멀어지면 ‘거리’가 고립을 낳는다.”
“흔히들 소설은 아름답다거나 진실은 있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의 관점에서는 진실은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아는 것과 쓰고 싶은 분야를 써야 합니다. 잘 안다는 것은 진실에 근접해 있다는 의미죠. 그러나 어떤 틀에 갇혀 있으면 결단코 좋은 소설을 쓸 수 없어요. 소설은 기존의 틀과 낡은 인식을 깨뜨리는 작업이니까요. 그래야 인간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일 테니까요.”
은희경 소설가는, 30대 중반의 어느 날, 노트북 컴퓨터 하나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한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그려내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다.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 1997년 동서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타인에게 말걸기』,『새의 선물』,『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내가 살았던 집』,『비밀과 거짓말』,『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소년을 위로해줘』,『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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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광주일보 기자인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사람과 세상, 문화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는 인문학자다. 문학 기자와 『예향』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학 관련 기사뿐 아니라 우리 시대 화제가 되는 인물 인터뷰, 다양한 문화 담론, 인문학적 주제, 학술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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