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중년 남성은 괴로워
『남성 표류』
세상의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니고, 알만한 것은 알만큼 아는 연령대니 말이다. 그만큼 이미 늦었다는 미련과 아쉬움도 크고,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한채 여기까지인가하는 회한도 있는 나이다. 이럴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까? 여기에 꽤 적절한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왜 사는지 의미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회사 간부급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러 갔다. 요새는 시작하기 전에 미리 고민거리를 포스트잇 정도에 간략히 적어서 미리 제출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내가 준비한 강연 내용도 있지만, 생생한 그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같이 고민하고 풀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여러 장소에서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고민을 몇 가지로 취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도 쉬지 않고 울리는 카톡 메시지에 일일이 답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에서는 쪼이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며, 동기들끼리의 경쟁은 갈수록 격해진다. 이러다가 어떻게 될 것만 같단다. 둘째,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아이들은 사춘기고, 부모는 연로해지셔서 도움이 필요하다. 가정에 신경을 쓰고 싶지만, 도저히 여유가 없어서 그들과 자신의 정서적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는 것을 체감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바로 인생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앞만 보고 시키는 대로 숙제를 해치우듯이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이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앞으로 20년은커녕 5년 앞도 바라보기 힘이 든다. 의미를 모르겠으니 일을 해도 자존감이나 자아에 좋은 피드백으로 돌아오지 않고 소모되는 기분만 들 뿐이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요새 갖기 시작한 제일 큰 인생의 화두다.
‘나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 맞아?’
여기에 답을 해주기란 쉽지 않다. 나 자신도 바로 이 대상에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중이 제 머리를 깎기 어려운 것에 더해서 중년 남성의 삶의 의미를 찾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마음을 다잡는 것은 참으로 힘든 숙제다. 세상의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니고, 알만한 것은 알 만큼 아는 연령대니 말이다. 그만큼 이미 늦었다는 미련과 아쉬움도 크고,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인가 하는 회한도 있는 나이다. 이럴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까? 여기에 꽤 적절한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일본의 르포작가 오쿠다 쇼코가 약 10년간 일본의 중년 남성들을 200명이나 꾸준히 만나고 채집한 기록을 정리한 『남성표류』라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대상자를 한 번 만나서 그의 삶을 심층 취재하고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십년동안 정기적으로 취재대상을 만나 그들의 삶의 변화를 관찰하고 추적해 나갔다는 점이다. 200명 정도면 충분히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수라고 할만하다. 거기다 일본은 우리나라 사회변화의 궤적과 매우 비슷한 길을 약 10-20년 정도 앞서가고 있다.
일본의 전후 번영과 함께했던 단카이 세대가 1947-1949년생을 중심으로 한다면, 한국의 세칭 386세대는 1960년대 출생자들이다. 일본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다. 이제 포스트 단카이 세대가 은퇴를 고민하고 있고, 우리는 이제 386이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적 싱크로 율에서 일본에서 먼저 십 년간 이미 쌓아온 경험을 들춰보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십 년을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중년 남성이 삶의 좌표를 잃고 헤매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강, 효도, 가정, 애정, 직업이란 다섯 가지 주제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가 건강 표류다. 중년의 갱년기가 왔지만 이를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하면서 안티에이징에 최선의 노력을 한다. 젊어 보이려고 하고, 자기 밑의 세대와 경쟁을 해서 이기려고 한다.
그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한다. 의학의 발달 수혜를 병을 빨리 찾아내서 예방하는 방향이 아닌, 젊음을 잃지 않으려는 불로(不老)를 위한 노력이다.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고, 모발 이식을 하고, 성형수술을 불사하고, 그렇게 얻은 가면서 젊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한다. 사회에서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젊어 보인다는 인사가 신이 나고, 자신감이 막 생긴다. 그 결과 불륜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인생의 큰 파도를 의학의 힘으로는 잠시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런 안간힘을 쓰는 것은 나이 들면 골방 신세가 된다는 것을 선배들의 등을 보면서 학습을 한 결과물이다. 결국, 해법은 10년이 지나 다시 만나보니 오직 젊은 여성만 찾던 남성이 자연스러운 자리에서 만난 비슷한 연배의 여성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세월을 마주하는 사례가 등장한다.
두 번째가 효도 표류다. 부모가 남겨준 재산으로 경제적 여유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직업은 취미같이 살아가는 중년 기생 족이자 독신귀족인 사카모토 씨가 주요 사례자다.
그는 “결혼을 왜 해요?”라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몇 년 후 다시 만나자 그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이 관찰되었다. 고령인 어머니가 암으로 치료받으면서 그가 적극적으로 개호를 해야 하게 된 것이다. 6년이 지난 그는 46세였고 한눈에 봐도 공허한 표정이고, 초라한 옷차림은 일상의 피로가 전해질 수준이었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란 말을 할 정도였고, 개호만으로도 벅차서 결혼은 생각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중 노년이 된 아들은 결혼도 한 번 못 해보고 초 노년이 된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일종의 ‘노노개호(老老開戶)’의 사례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2013년 일본에서 65세 고령자가 있는 가구 중 부모와 미혼자녀로만 이루어진 세대가 20%로 25년 동안 2배가 증가했다. 부모를 돌보느라 인생에서 해야 했을 것들을 하지 못하는 인생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가정 표류에서는 육아를 전담하고 열심히 임하지만 공허하고 그 역시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남성,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채 중년에 도달해버린 애정 표류, 위에서 쪼이고, 밑에서 치받히면서 방향을 못 잡아 헤매고 있는 직업표류 등이 등장한다.
이 책의 장점은 르포 작가가 썼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랫동안 만나온 사례자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그저 지켜본다. 의사나 심리상담가, 혹은 시민운동가의 책에서도 사례자의 변화는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은 치료의 결과물이므로 자칫 해석에 주의를 요해야할 경우가 있다. 또 사회학자의 책이라면 그것에 대해 어떤 사회적 해석을 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자유롭다.
어떤 조언을 하거나, 그들의 삶에 어떤 중재를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세밀하게 관찰을 하면서 사례자의 생각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자연주의적 경과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비교할 때 큰 장점이다. 해석은 그저 이 책을 읽은 독자가 하도록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미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사회상황을 담은 이 책은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왜 이리 남는 것은 없고, 공허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여기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에게 일종의 교본이 될 수 있다. 일본의 한 세대 앞선 선배(!)들의 경험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얼추 그려볼 밑그림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해법을 찾고, 후회를 덜 할 선택은 이와 같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존재 덕분일 때가 많은 법이다.
남성표류오쿠다 쇼코 저/서라미 역 | 메디치미디어 | 원서 : 男性漂流
남자 마흔, 생애 처음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 성과 압박이 심해지고, 중간관리자라 위 아래 눈치 볼 일이 많아진다. 시대가 바뀌어 집에서도 ‘다정한 아빠이자 남편’ 역할에 대한 기대도 높다.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고 몸은 전과 같지 않은데….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말은 “회사에서 나가달라’는 말밖에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그러나 오늘도 남자라는 자존심 때문에 고민을 삼키고 하루를 버틴다. 외로움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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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오쿠다 쇼코> 저/<서라미> 역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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