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우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 얻은 작품은…”
『달리는 조사관』펴내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는 유영철 사건에 착안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두 명의 신원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두 피해자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고, 시체는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는 설정을 떠올리게 됐죠.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송시우 작가가 선보이는 두 번째 소설 『달리는 조사관』은 미스터리 장르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에 충실한 작품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허를 찌르는 반전이 거듭되며, 그 끝에서 마주한 실체는 묘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기존의 추리소설이 애용해온 이러한 얼개는 『달리는 조사관』 안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독자들을 흡입력 있게 빨아들이며 이야기를 추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송시우 작가는 낡은 문법을 답습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추리소설이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 지은 데 반해 『달리는 조사관』은 애써 그 경계를 뭉그러뜨린다. 놀라운 사실은, 그 결과 남겨지는 것이 ‘사건이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미진함’이 아니라 ‘잊히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증명되듯 기억이란 왜곡되고 조작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확인된 사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자는 보호받고 피해자는 구제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을 수호하는 정의일까.
『달리는 조사관』이 선사하는 공포는 범행 방식의 잔혹성이나 미스터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범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가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의 우리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상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번 소설에는 다섯 편의 연작 이 실려 있다. 각각의 사건에는 성희롱, 위법한 체포, 강압 진압 등을 이유로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명의 조사관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 수사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 쉽지 않은 선택이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인물들 앞에 놓인 ‘문제적 사건들’이 낯설지 않은 까닭이다. 노조 내 성희롱, 연쇄살인범의 드러나지 않은 범행, 허위자백 논란 등은 과거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들을 환기시킨다.
데뷔작 「좋은 친구」와 첫 번째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단 두 편의 이야기만으로 ‘한국 장르문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 송시우. 그녀는 『달리는 조사관』을 통해 그 수식어가 허울에 그치지 않음을 입증해 보였다. 벌써부터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작가 송시우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민간인 사찰 이야기, 쓰고 나서 걱정 많이 했어요
『달리는 조사관』은 ‘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재가 독특합니다. 인권을 수호하는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질문을 당연히 받을 줄 알았어요(웃음). 제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소재를 찾기 좋은 직장에 다닌다, 그 이야기를 꼭 써라’라는 말을 계속 들었는데요. 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항상 하는 일이다 보니까 저한테는 재밌지 않은 거예요.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지만, 이야기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았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에 딱 한 곳뿐이니까 이 이야기를 쓰면 주변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다가 2012년에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시험 삼아 작품을 실었어요.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라는 단편인데 『달리는 조사관』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연작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매력적인 소재인 만큼 ‘이 이야기를 벌써 꺼내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마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좋아해주셨던 분들에게는 이번 작품이 굉장히 의외였을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계속 이런 이야기만 쓸 것도 아니고 새로운 소재를 계속 찾고 싶기 때문에, 더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의 현실을 잘 알고계신 만큼, 그 모습이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셨을 것 같습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조금씩 모티프를 따오기는 했는데요. 비슷하지 않게 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혹시나 내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 아니냐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거든요(웃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뤘던 진정 사건과 똑같은 건 없을 거예요. 등장인물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지 않았어요.
네 명의 조사관들은 각자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한 해결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데요.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달리는 조사관』의 인물들은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면서 협업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죠. 고전적인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탐정처럼 완벽한 인간은 아니에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다 단점이 있고 결함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살린 거죠. 특별히 결함이 있는 인물을 만들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고요(웃음). 현실에 가까운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여러 단편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실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작품도 예외가 아닌데요. ‘사회파 추리소설’을 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셜록 홈즈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작품들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에 일본 추리소설이 번역되어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될 때였거든요.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라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양한 작품들처럼 사회파적인 걸 반영한 소설들도 읽었는데, 그런 작품들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예전에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죠. 추리소설이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것 외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도 담을 수 있다는 점에 반했어요. 저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달리는 조사관』에는 민간인 사찰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실려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일 수 있는데, 염려하신 부분은 없었나요?
말씀하신 단편은 2012년에 발표된 작품인데요. 그보다 1년 정도 전에 완성했을 거예요. ‘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민간인 사찰 이야기가 한창 나올 때여서 소재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썼죠. 걱정은 나중에 했고요(웃음). 작품을 발표할 때는 모티프가 된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걱정을 많이 했죠. 저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작가 선배들도 괜찮겠냐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염려가 되었던 건 사실이에요. 실제 있었던 정치적인 사건이니까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이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달리는 조사관』에 실을 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사건이 발생한 시점 이후로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다른 작품들도 같이 실려 있으니까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 얻은 작품은…
『달리는 조사관』에서 각각의 단편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또 다른 연작에서 뒷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인가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제가 조금씩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버릇이 있어요(웃음).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완전히 결말을 짓는 게 잘 안돼요.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충실해야 하니까 이야기에서 제기된 중심적인 의문들은 해결해 놓는데요. 마지막 부분에서 이어지는 인물의 행동, 선택 같은 건 살짝 열린 결말로 끝맺죠. 그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소재도 독특하지만 중심인물들의 캐릭터도 뚜렷하잖아요. 연작으로 이어질 또 다른 에피소드가 기다려집니다.
또 다른 연작을 구상하고 있지는 않은데요. 시리즈는 작가가 만드는 게 아니고 독자가 만드는 거니까요. 독자 분들의 반응을 보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이 들면 얼마든지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달리는 조사관』 중에서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가 가장 애매모호한 결말로 끝났을 텐데요. 만약 시리즈를 이어간다면 다른 결말을 보여주고 싶어요.
집필하시는 동안 인권 혹은 정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름의 정답을 찾으셨나요?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요. 우리가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인권인지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윤리나 정의라는 개념도 마찬가지고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찾아나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권 침해를 둘러싸고 수사기관과 조사관, 진정인의 입장이 서로 다른데 누구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고 누구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아요. 작품 안에도 그런 특성을 담으려고 했어요.
작품 속 네 명의 조사관 중에서 특별히 애착을 갖고 계신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처음 만들었던 인물은 한윤서 조사관이었어요. 가장 주인공 격인 인물이기도 한데요. (지금은) 오히려 다른 인물들, 배홍태나 이달숙 조사관에게 더 애정이 가요. 한윤서는 저와 닮은 부분이 있어서 답답하고요(웃음). 조금 더 발랄한 인물이 좋아요. 좌충우돌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감정 표현도 하면서 상황을 만들어가는 캐릭터가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배홍태와 한윤서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홍태가 감정이 앞선다면 한윤서는 냉정할 만큼 이성적이죠. 중립과 정의의 문제를 두고 충돌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세요(웃음)?
두 사람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배홍태처럼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한윤서처럼 냉정한 태도로 사실 관계부터 정확하게 밝히려는 사람도 필요하죠.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서 균형을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배홍태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금 거칠고 편향적이고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죠.
『달리는 조사관』의 네 번째 단편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는 G.K. 체스터튼의 작품 「푸른 십자가」를 오마주한 작품인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부러 단서를 남기는 범인’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나요?
처음에는 오마주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말씀하신 설정은 집필 중에 생각난 거고요.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는 유영철 사건에 착안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두 명의 신원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해자들의 신원을 찾기 위한 수사는 계속되고 있을까’ ‘이미 재판도 끝났고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으니 수사도 멈춘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피해자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고, 시체는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는 설정을 떠올리게 됐죠. 쓰다 보니 「푸른 십자가」에 나오는 ‘단서를 남기는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요.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건 ‘울림이 있는 소재’
데뷔작 「좋은 친구」와 첫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으로 단숨에 ‘한국 장르문학의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큰 기대가 부담되지는 않으셨나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출간되기 전에도 1년에 2~3편씩 단편을 발표해왔지만, 저라는 작가가 알려진 건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나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죠. 첫 장편이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 돌아왔어요. 물론 굉장히 좋았지만 부담도 많이 됐죠. 특히 ‘두 번째 작품은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부담은 엄청났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구상에서 집필, 출간까지 3년이 걸렸는데요. 제가 쓰는 속도도 굉장히 느린데다가, 직업이 있으니까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속도로 쓰다가는 안 될 것 같았고, 1~2년 안에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사실 뭘 써야 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좋은 친구」를 쓰기 전까지 습작을 거의 해본 적 없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실 수 있었나요?
대학에서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는 주로 시를 썼어요. 소설도 써보기는 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거의 안 썼어요.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품고는 있었는데,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저절로 써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더라고요(웃음).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그걸 깨닫게 됐죠. 책상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지 않는 한 소설은 써지지 않는다는 걸요. 그때 쓴 작품이 「좋은 친구」인데, 좋아하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망의 힘이라고 할까요. 타고난 재능이 있다거나,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웃음).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출간과 함께 영화화가 결정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제쯤이면 극장에서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작년에 판권 계약이 성사됐고 지금은 시나리오까지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은 다르니까 저는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시나리오 작업이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랬고요.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다가 1980년대와 2010년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아마 저한테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웃음). 영화로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제가 만든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면 정말 신기할 것 같아요.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고심하시는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소재에서 울림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굉장히 기발한 트릭들은 이미 다 나왔고, 그런 걸 현대적인 이야기 속에서 변형해야 되는 과제가 있죠. 그러려면 지금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새로운 소재들을 써야 하니까, 그 부분에 제일 신경을 많이 써요. 계속 단편을 쓰다가 처음으로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쓸 때도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야 원고지 1000매 이상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물어보고 생각해도 답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 안에 울림이 있는 소재를 쓰면 긴 작업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렸을 때 살던 다가구 주택의 이야기를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도 저한테서 출발했지만 독자들도 원하는 이야기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달리는 조사관』의 소재에서 어떤 ‘울림’을 받으셨어요?
전작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이라는 역할도, 저한테는 굉장히 익숙하지만, 많은 분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추리소설 작가 중에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을 주인공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웃음). 쓰면서 찾아보니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더라고요. 범죄와도 연관시킬 수 있고, 인권위가 다루는 분야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까 경찰, 교도소, 성희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작품을 쓰는 동안 그런 부분을 느꼈어요.
이번 작품은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많이 다른 느낌일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고,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었다고 생각돼요. 『달리는 조사관』에서는 미스터리 장르에 조금 더 충실했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장르적인 특성이나 쾌감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조금 속상했거든요. 미스터리가 좋아서 미스터리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거니까, 거기에 점점 더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한국적인’ 서정을 담은 추리소설을 쓴다고 평가 받으시는데요. 외국의 추리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뛰어난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사회 문제를 끌어들여서 소설을 쓴다 한들 한국어로 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 작가들은 할 수 있어요. 지금 한국 추리소설은 이 중의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데, 일단 장르소설을 바라보는 편견이 있고 장르소설 안에서도 국내작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죠. 그래서 번역서에만 많이 열광하시는데요. 한국 작가만이 쓸 수 있는 한국 미스터리를 내보이면 번역서에서 얻을 수 없는 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저 | 시공사
《달리는 조사관》은 경찰도 탐정도 아닌, 다소 생소한 직업인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다루는 준사법기관인 인권증진위원회에서, 진정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움직이는 ‘인권위 조사관’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형사나 경찰과는 달리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서로 간의 엇갈린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추리소설의 공통된 부분이지만 《달리는 조사관》에서의 진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침해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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