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어 타임>, 거짓말이 허락되는 시간
뮤지컬 <라이어 타임>
거짓말이 통제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무한한 신뢰일까, 끝없는 침묵일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거짓 없는 세상’을 뮤지컬 <라이어 타임>이 펼쳐 보인다.
거짓말이 허락되는 시간 ‘라이어 타임’
세상의 모든 거짓말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하나의 질문에서 뮤지컬 <라이어 타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짓말이 낳은 사기와 기만, 강력 범죄로 뒤덮인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대통령 차대호는 ‘라이어 타임’ 정책을 실시하고, 사람들의 몸에 센서를 부착한다. 센서는 거짓말이 탐지될 때마다 요란한 경고음을 내면서 발각된 이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유일하게 거짓말이 허락되는 순간은 하루 중 단 두 시간,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이어지는 ‘라이어 타임’ 뿐이다.
이렇듯 진실이 강요되는 세상을 두고 차대호는 유토피아에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를 도와 시스템을 개발한 안 박사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라이어 타임>이 보여주는 현실은 유토피아나 완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거짓말이 없어진 세상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방금 출발했어요’를 입에 달고 사는 중국집 주인은 정확한 배달 시간을 알려주고 ‘내가 했다는 증거 있냐’고 발뺌하는 범인의 거짓말은 금세 들통 난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는 정말로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솔직하게 말해준다.
문제는, 때로 우리에겐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거다.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를 대신할 ‘빈 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소개팅에서 애프터 신청을 받았을 때 ‘미안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 예컨대 소설가나 시인이나 초현실주의 화가 같은 창작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거짓이 사라진 세상에 남은 것은…
‘라이어 타임’ 정책은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린다. 거짓말이 범죄가 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하고, 허구의 세계를 떠날 수 없는 예술가들은 망상증 환자로 분류되어 정신 병동에 수감된다. 정책을 실시한 대통령은 “이 모든 게 모두를 위한 것”이라 단언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점차 의심이 싹튼다. 거짓말이 사라지면 이상적인 사회가 될 거라는 믿음은 과연 옳은 것인가. 질문은 무대 위에서 시작되어 점차 객석으로 번져간다. 그리고 현실 속의 우리는, 거짓말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 묻는다. 거짓을 가려내야 한다는 강박은 어리석은 것 아닐까.
뮤지컬 <라이어 타임>은 후반부에 이르러 더욱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한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은 ‘라이어 타임’ 시스템에 균열을 가하는 인물인 안단테와 차대호의 대립을 통해 그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간다. 이야기를 지켜보는 내내 가슴 한 쪽이 무거운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현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의 선을 내세워 신임을 얻는 자의 모습, 그가 권력을 틀어쥠으로써 닥쳐오는 혼란이 이곳의 지금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어 타임>의 이야기는 거짓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진실의 의미를 물으며 끝을 맺는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 그 안에서 거짓을 걷어내고 싶다는 바람, 그 모두는 ‘불신’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날카로운 깨달음을 남긴다. 아울러 진실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진 사회를 보여줌으로써 서늘한 통찰을 요구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품고 있으면서도 줄곧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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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