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면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고, 이 중에 히어로물이라면 질색을 할 정도로 지겨워하는 사람인데, <앤트맨>을 봤다. 이건 순전히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라기 보다는 지난주에 개봉한 여러편의 영화를 봤지만, 도무지 ‘영사기’에 쓸 만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이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심정으로 극장 의자에 풀썩 주저 앉은 채, 핫도그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영화를 봤는데, 보다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시나리오 작가를 찾아가 ‘우리 동업해보지 않겠소’라고 제안할 만큼 재미있었다(하지만, 영어가 짧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거절당할까봐 그런 건 아니다).
여러 매력 요소 중 가장 흡족했던 것은 바로 주인공의 친구였다. 그는 말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일상 생활에서는 말이 많은 사람을 끔찍이 싫어하는데,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하는 말은 대개 요점이 없고, 장황하며, 재미까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들이 입을 여는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루한 소재와 진부한 단어와 식상한 표현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재미없는 대화의 탑이 바벨탑처럼 쌓여간다. 물론, 상대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는 졸음을 참느라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눈치까지 없어서(눈치가 있다면, 길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설마, 내 이야기에 감동한거야?’라며 근거 없는 감격까지 해댄다(물론, 나는 소심하여, 이런 속내를 발설한 적이 없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영화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길게 말을 하면 반갑다(아마 아이컨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나도 소설에 대사를 굉장히 길게 내뱉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주인공의 친구 루이스(마이클 페나 분)는 좀도둑이다. 이 둘은 교도소에서 만났는데, 출소한 주인공이 새 출발을 하려고 하자 ‘한탕 하자’며 꼬득인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새 직장에서 해고 당한 주인공에게 그는 범죄 계획을 이런 식으로 풀어 놓는다.
“내 친구 A알아?”(주인공이 알 리 없다. 하여, 반응 않는 주인공.)
이에 아랑곳 않고, “내 친구 A의 사촌, B가 있는데, B가 굉장히 화끈한 여자 C를 만났어. 풀 파티에서 말이야. Yo ~ Man. Coool. Pool Party~! Man” 이쯤에서 이 친구는 흐뭇한 미소로 춤을 추다가, 주인공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고 다시 말을 잇는다.
“그 화끈한 여자가 아는 남자 D가 있는데, 그 D가 은퇴한 영감 E의 집에서 청소를 한다는 거야. E의 집이 굉장히 좋아. 수영장이 또 있어. Yo ~ Man. Cool. Pool~!
이에 주인공이 딱 한마디 한다.
“Cut the details!(디테일은 때려치우라고!)”
이에 주인공의 친구는 풀이 죽은 듯 의기소침했다가, 금세 기운을 차리고 다시 말한다.
“그 영감이 돈이 엄청 많은데, 집은 OOO 평이고, 차는 OOO를 타고…… (다시 눈치를 살핀 후) 어쨌든, 그 집 지하실에 금고가 있는데, 그 금고가 상당히 크대. 그리고 영감은 이번주 수요일에 집을 비운대!”
궁금한 주인공은 마침내 묻는다.
“금고 안에 뭐가 있는데?”
이제 주인공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몰라. 뭔가 있겠지. 뭐, 보석 같은 거!”
설마, 아이스크림이 있겠냐는 표정으로, 정작 중요한 핵심정보는 하나도 없으면서, 이 수사만 가득한 정보를 거들먹거리며 건넨다. 나는 이 ‘디테일’을 사랑했다.
소설가로서 한 마디 거들자면, 소설은 ‘디테일의 예술’이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만나는 날, 날씨는 어떠했으며, 옷은 무엇을 입었으며, 거울 앞에선 몇 분이나 망설였으며, 커피숍에는 몇 분 전에 도착했는지, 이 모든 게 중요하다. 소설은 핵심만 추려서 과학적으로 말하는 논문이 아니고, 핵심 정보만 추려서 간결하게 전달하는 기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술은 디테일에 주목하는 것이다.
영화 <앤트맨>에는 디테일에 관한 관찰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개미 크기로 줄어든 ‘앤트맨’은 장난감 토마스 기차가 달리는 미니 카페트 위를 거대한 초원의 풀밭사이를 헤집듯 달린다. 수도관의 물살은 거대한 급류처럼, 욕조의 바닥은 장거리 육상트랙처럼 보인다. 그가 움직이는 배경 모두가 디테일에 관한 것이다. ‘앤트맨’이라는 이 작은 사이즈의 인물 역시 디테일의 궁극적인 결정체이다. 감독과 작가는 예술은 결국 ‘디테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루이스는 또 한 번 주인공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번에도 ‘새로운 소식’이 있다며 설(說)을 풀어놓는다. 물론 이야기는 빙빙돌아간다. 디테일이라는 무수한 정거장을 거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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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