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정임 “카뮈 씨, 부조리란 무엇인가요?”
카뮈와 『이방인』과 뫼르소와 부조리와 반항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
카뮈를 안다면, 그가 작품에서 드러내 보인 부조리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방인』과 『페스트』를 거듭 읽어도 부조리의 실체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카뮈의 독자들은 묻고 싶었다. “카뮈 씨, 부조리란 무엇인가요?” 대답 없는 그를 대신해 소설가 함정임이 응답했다.
카뮈를 이해하는 키워드, 태양과 피에누아르
알베르 카뮈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를 단번에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카뮈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부조리는 무엇인지,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카뮈 씨, 부조리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지나치게 근본적인 듯 보였다. 그래서 늘 입속에서만 맴돌았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소설가 함정임의 응답을 듣기 전까지는.
지난 27일 저녁, 예스24와 민음사가 함께 마련한 ‘세계문학 고전학교’에 초대된 함정임 작가는 독자들을 대신해 카뮈에게 물었다. “카뮈 씨, 부조리란 무엇인가요?” 동시에 그녀는 침묵에 사로잡힌 카뮈 대신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설을 짓고 연구하고 소개하면서 자신이 발견하게 된 ‘카뮈식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카뮈의 소설과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소개했다. 태양, 피에누아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 스승이자 문우였던 장 그르니에, 이 모두가 카뮈와 그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조각들이다.
“카뮈는 ‘피에누아르’였어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인과 그 2세들을 ‘피에누아르’라고 하는데요. 카뮈의 아버지가 알제리로 이주해 온 프랑스인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인이었어요.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뮈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한 태양과 빛깔과 향에 둘러싸여 있었죠. 그러니까 태양을 숭배하는 헬레니즘의 혼이 의식을 초월해서 생리적인 감각으로 자리 잡았던 거예요. 그런 감각과 지력이 문장과 사유로 이어졌고요.”
알제리라는 변방의 공간은 카뮈에게서 ‘정오의 사상’을 낳았고, 피에누아르라는 경계인의 신분은 그에게 끊임없이 ‘명백한 태도’를 요구했다.
“카뮈의 정체성은 쉽게 설명될 수 없었죠. 프랑스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그를 키운 8할은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알제리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문제로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시대의 분위기는 지식인인 작가의 책무는 사회 참여라고 보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카뮈는 회색분자라는 강렬한 비판을 받게 됐죠.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나도 정의의 편이지만 정의와 내 어머니를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머니를 선택하겠다’고 말한 배경이기도 해요. 하지만 결국 카뮈는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어요. 파리의 지식인들에게 끊임없이 확실한 태도를 요구받았거든요. 루르마랭으로 떠난 것도 그래서예요. 가시방석 같은 파리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끌어안았던 고향과 가장 유사한 곳에서 집필을 하고 싶었던 거죠.”
『반항하는 사람』은 부조리 철학의 핵심
“카뮈에게 있어 부조리는 철학적인 개념”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리고 실존주의와 사르트르를 빼놓고는 카뮈와 부조리, 반항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르트르와 카뮈, 두 사람의 실존주의는 어떻게 달랐을까. 작가는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에다가 지성계의 중심에 있던 부르주아 출신의 사르트르와는 근본은 달랐으나 『이방인』 한 편으로 문학적으로 어깨를 겨누는 문우가 되었고, 실존주의와 다른 노선의 ‘부조리와 반항’을 독자적으로 표방하며 사상적인 라이벌이 되었다”
“부조리나 반항은 실존주의 사조의 한 항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실존주의로부터 반항과 부조리를 이야기하게 되죠. 카뮈는 항상 사르트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사르트르가 『이방인』을 두고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면서 끊임없이 논쟁을 했어요. 그때 사르트르는 <현대>라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잡지의 주필이었거든요. 카뮈의 부조리가 반항을 이야기한다면 사르트르의 실존은 혁명과 같이 이야기 되어야 해요. 자신이 가진 것을 타자와 세상에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 반항이라면, 혁명에는 분명한 이념과 신념이 있어요. 그 틀을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전복을 꾀하죠. 그래서 반항과 혁명은 그 출발과 과정에서 굉장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함정임 작가는 『시지프 신화』부터 『반항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카뮈 안에서 부조리가 싹트고 깨어난 과정을 추적해갔다.
“『시지프 신화』는 카뮈의 부조리 철학의 출발점이에요. ‘부조리란 무엇인가’라는 의식이 생기는 과정을 쓴 작품이거든요. 이후 10년 동안 『이방인』과 희곡 『오해』 『칼리굴라』 그리고 『페스트』를 거치면서 『반항하는 사람』이 탄생했어요. 『페스트』는 전쟁의 경험을 내면화해서 발표한 작품인데요. 『이방인』을 통해서 세계와 인간의 유대, 개인적인 죽음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페스트』는 집단적인 죽음, 공포라는 한계 상황을 인간애로써 돌파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안에 들끓는 다양한 군상들의 욕망을 다루고 있고요. 『반항하는 사람』은 부조리 철학의 핵심이에요. 『반항하는 사람』에 이르러서 부조리의 인식이 더 적극적으로, 각성의 하나인 반항으로 나타난 거죠.”
카뮈의 대표작인 『이방인』에서 발견되는 부조리는, 내 삶에서조차 나 아닌 다른 이들이 중심부를 차지한다는 현실에 있다.
“『이방인』에서 말하는 부조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에서 나는 빠져있다는 거예요. 나는 구경꾼이 되어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는 거죠. 나의 탄생이나 죽음과는 관계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내 삶의 재판에서조차 나는 빠져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고, 문득 내가 낯선 공간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런 모든 것들이 부조리예요. 부조리 문학에서는 이것들이 중첩되어서 불시에 나타나고요.”
뫼르소가 ‘증오의 함성’을 기다린 이유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부조리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그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이성이나 논리와는 한 발짝 비켜 서있다. 소설사에서 이토록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출현한 예는 없었다. 그러나 함정임 작가는 뫼르소에 버금가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태양을 꼽았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 주인공뿐만 아니라 ‘무드(mood, 情調)’라고 강조했다.
“『이방인』 같은 작품에서는 특히 무드(mood, 情調)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뮈의 부조리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태양과 지중해와 ‘피에누아르’를 이야기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작가가 세상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시선과 태도에 따라서 작품 전체를 감싸는 무드가 달라지거든요. 말할 수 없이 처참하고 부조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릴 수도 있고, 중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여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품의 무드를 감지하는 것이 곧 작가와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드 속에서 인물의 인생이 시작하고 끝맺는 거고요. 작가가 하나의 세상을 창조했다가 마무리하는 거죠. 특히 『이방인』은 부조리라는 카뮈의 사상 체계, 자연에서 얻은 감각적인 문장, 어머니로부터 가지고 온 침묵의 언어가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이방인』 속의 반항은 긍정과 부정이 혼재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뫼르소는 종종 ‘이런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에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함정임 작가는 “이런 문투도 작가가 기본적으로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실존주의에서는 선택, 책임,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죠. 그런데 카뮈의 작품에서는, 실존주의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 것 같다’는 표현들이 등장해요.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사르트르가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서 작품을 쓴 것과는 다른 점이죠.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반복적으로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이것이 정말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이기도 해요.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일치하지 않잖아요. 카뮈는 이런 현실을 문학이라는 거울로 비춰줌으로써 충격을 안겨준 거예요.”
『이방인』의 결말은 언제나 물음표로 남는다. 뫼르소는 왜, 자신이 죽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증오를 쏟아내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방인』 김화영 역, 민음사)
함정임 작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말은 정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카뮈와 『이방인』과 뫼르소와 부조리와 반항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결말에 이르러서 뫼르소라는 부조리의 희생물, 부조리의 전형은 세계와 자신이 닮아있다는 걸 깨닫잖아요. 그것이 오히려 전체를 전복시키는, 새로운 탄생이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뫼르소의 죽음을 보기 위해 몰려온 군중들도 미래의 사형수들이라고 볼 수 있죠. 점점 죽음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카뮈의 처음과 끝은 표리-안과 겉, 이면에 있어요. 뫼르소 역시 자신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모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과 같은 사형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와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형제애를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이방인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 민음사 | 원제 : L'Etranger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소설. 젊은 무명 작가였던 알베르 카뮈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다.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기존의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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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