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여성 서예가, 정명공주
역사학자 신명호 교수가 말하는 진짜 정명공주 이야기
정명공주가 쓴 ‘화정’ 두 글자에서 ‘힘과 기세가 펄펄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성난 고래가 돌을 할퀴는 듯하고 목마른 천마가 샘으로 치달리는 듯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힘과 기세가 뛰어났던 한석봉의 필체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 문이다.
드라마 <화정>속 정명공주
서궁 유폐 시절, 서예 공부에 몰두한 정명공주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 정명공주는 16살이었다. 그 정도면 아주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정명공주도 처음에는 분명 절망감에 빠졌을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걱정하던 그들에게우연히 온갖 씨들이 생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생겨나는 일들을 경험하며 정명공주는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희망 속에서 정명공주는 서예 공부에 몰두했다.
서예라는 측면에서 보면, 선조와 인목대비 그리고 정명공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들 3명이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서예가였다는 점이다. 수많은 어필(御筆)을 남긴 선조는 17세기 이후 국왕 어필의 전형을 수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인목왕후도 ‘민우시憫牛詩’로 알려진 뛰어난 서예작품을 남기고 있다. ‘화정華政’ 대자(大字) 를 비롯하여 몇몇 서예작품을 남긴 정명공주는 조선시대 여성을 통틀어 최고의 서예작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정명공주의 서예 작품이 대부분 서궁 유폐 시절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정명공주의 대표적인 서예 작품, ‘화정華政’
정명공주의 서예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화정華政’이다. 서예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화정’ 대자에서는 힘과 기세를 펄펄 느낀다. 그래서 이 글자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힘과 기세가 펄펄 느껴지는 글자를 여성인 정명공주가 그것도 서궁 유폐 시절에 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명공주는 바로 이 서예작품으로 조선시대 여성 중에서 최고의 서예가로 꼽힌다. 정명공주가 이 서예 작품을 정확히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궁 유폐 시절인 1618년(광해군 10년) 에서 1623년(광해군 15년) 사이에 썼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정명공주가 서궁에 유폐 되었을 때는 16살에서 21살 때까지였다. 10대의 청소년기에 그것도 암담한 청소년기에 이렇게 힘과 기세가 넘치는 서예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서예 작품은 정명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세상에 알려졌다.
암울한 시기, 선조의 필법을 본뜬 정명공주
정명공주의 필법은 남구만이 지적한 대로 선조대왕의 필법을 본뜬 것이었다. 그것은 곧 한석봉의 필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정명공주가 쓴 ‘화정’ 두 글자에서 ‘힘과 기세가 펄펄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성난 고래가 돌을 할퀴는 듯하고 목마른 천마가 샘으로 치달리는 듯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힘과 기세가 뛰어났던 한석봉의 필체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명공주는 왜 서궁 유폐의 암울한 시기에 서예 그것도 선조의 필체를 본뜬 서예에 몰두했을까? 남구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어 있었을 때, 정명공주는 아직 혼인 전이었다. 정명공주는 인목대비를 옆에서 모시면서 슬프고 비통하며 두렵고 위축되어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정명공주는 붓을 잡고 큰 글자 작은 글자를 써서 인목대비의 마음을 위로하고 풀어 드리고자 했다.”
남구만, 《약천집藥泉集》
정명공주가 쓴 ‘화정’, 공주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필체에서 기상과 힘이 넘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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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