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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책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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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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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도가 사라진 시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이를 대신한다지만 과거와 수능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때까지 갈고닦은 자신의 역량을 검증받는다는 점에서 억지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으나 중요한 차이는 ‘시대’에 대한 물음의 여부다. 과거가 자신이 갈고닦은 학문과 오랫동안 수양과 인격과 정신을 사회에 펼치기 위해 필요한 관문이었다면, 수능은 속된 말로 학벌을 결정하기 위한 국영수 점수 경쟁이다. 인격과 정신도 없고, 시대에 대한 물음도 없다. 과거제는 특히 마지막 관문으로 ‘책문’이 있었는데, 이는 시대가 출제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최종 심급이었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하는 것.

 

“더러 책문을 대입 논술시험에 견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입 논술시험과 책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대입 논술시험은 글자 그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지금 논술을 공부하는 목적은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분석의 능력을 길러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부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의 하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483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시대의 물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300명 이상을 태운 배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했으나 최고 통치자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자 묵묵부답으로 일삼고, 이 땅을 공포로 몰아넣는 바이러스가 돌아도 누구도 손쓰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만 있는 박제된 단어가 됐고,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일이 정치라면 이 땅에는 정치가 없다.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려고 하지만 백성의 실정이 위로 통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백성을 보호한다지만 정치의 혜택이 아래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성과에 만족하여서 먼 장래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은 한때의 이익에 연연하여서 장기 계획을 소홀히 합니다. 위에서 직무를 게을리하면 아래에서는 생업을 잃고, 위에서 혜택을 베풀지 못하면 아래에서는 분노가 쌓입니다.”

 

광해군 3년 별시문과 최종시험에서 임숙영이 제출한 대책이다. 놀랍게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400년 전에 제출한 과거시험 답안이 지금의 현실을 다룬 듯한 기시감이라니. 그래서 고전저술가 김태완은 다시 ‘책문’을 꺼내들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출사표이자 당대의 대책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불통과 모순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 있는 해법으로까지 읽힐 수 있다는 데에 착안했다. 2004년 첫 출간했었던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다시 세상과 만났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중림동 중림사회복지관에서 김태완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 묻는 책문정신’이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만났다. 

 

“책문은 시대의 물음이다. 시대가 출제한 시험이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한다. 그리하여 책문이란 권력을 갖고 권력을 행사할 사람의 권력에 대한 이념과 철학, 권력 운용의 역량과 비전을 묻는 시험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수많은 문신관료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적어도 관료로 출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때는 관료로서 자기가 처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성찰, 학자관료로서 세계를 보는 자기의 세계관을 책문을 저술함으로써 치열하게 점검하고 성찰했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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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정신, 과거에나 지금 모두 필요한 무엇

 

그는 기원전 206년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세운 중국의 한(漢)나라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나라는 지금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한 나라이다. 앞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나라가 중국 대륙에 뿌린 영향력이 워낙 컸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중국인들에게 한나라가 들어섰던 것 자체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한나라의 시조 유방은 그야말로 미천한 신분의 잡놈이었기 때문이다.

 

“유방의 방자는 ‘나라 방(邦)’자다. 그는 사실 이름도 자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냥 불렸던 이름이 ‘유씨네 막둥이’로 수표교 바닥에서 굴러먹던 사람이다. 반면 유방과 싸운 항우는 뼈대 있는 가문의 귀족이었다.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항우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유방은 그야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다. 전통적인 귀족 가문이 아닌 듣보잡이 왕이 된 거지. 당시 사람들이 왕을 존경할 수 있었겠나?”

 

그런 마당에 유방이 황제가 되자, 골치가 아파졌다. 유방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놈이자 듣보잡을 필연적으로 황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타고 난 것으로 포장해야 했다. 즉, 정통성을 만들어야 했다.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이 ‘현량대책(賢良對策)’이었다. 그것이 책문의 출발점이었던 것. 백성들에게 하늘이 내린 천자가 황제가 됐다는 논리를 제공해야 했다.

 

‘어떻게 통치하면 좋겠는가’를 주제로 지금으로 보면 장문의 논술을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모든 유학자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동중서가 그 논리를 제공했다. 『춘추』를 전공으로 했던 동중서는 세상을 양과 음, 위와 아래, 정통과 이단 등으로 구분하며 위계질서를 세웠다. 그렇게 해야 세상이 바로 돌아간다고 봤던 것. 특히 그는 천인, 하늘과 사람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을 내세웠다.

 

“여기서 천(天)은 자연이라는 뜻이고, 인(人)은 인간 사회를 총칭하는 말이다. 사람의 살림살이는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대책을 써서 동중서는 장원을 했고, 한나라의 통치 기반을 만들었다.”

 

저자는 왕의 이름을 붙일 때 조(祖)와 종(宗)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조(祖)는 공적이 많은 사람에게, 종(宗)은 덕이 많은 임금에게 붙였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조선시대 가장 공적이 큰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세조, 영조, 순조 등은 ‘조’가 ‘종’보다 더 끗발이 높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후대 왕들은 조를 붙였다. 원칙적으로 중국을 보면 조는 한 왕에게만 붙고, 나머지는 종을 붙인다. 중국에서는 한고조라고 부르고 그 이외의 왕에게는 한무제, 한문제 등으로 불렀다. 당은 고종, 현종 등으로 불렀다. 규칙은 없으나 원칙적으로 시조는 고조, 태조라고 붙이고 나머지는 효O황제 등으로 붙였는데 일부를 생략해서 ‘O제’ 등으로 불렀다.”

 

저자는 책문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중국에서 과거 제도는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나 수당 시대 때 생겨났고, 송나라 때 정착됐다. 명실상부한 권력집중화, 왕권집중화가 이뤄졌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과거 제도이자 책문이었다. 책문은 글짓기, 상식, 교양 등을 점검한 뒤 최종심에서 자질 평가를 위해 낸 시험이었다. 한 사회가 직면한 현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내놓은 인재를 뽑았다. 따라서 책문을 보면 당대의 문제와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책문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볼 수 있다. 인간은 생물이 가진 모든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 사회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문제가 비슷하게 반복된다. 조선 책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었다. 천리는 보편적인 욕망이고, 인욕은 나만의 구체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왕들이 인욕에 몰입하기 쉽다. 행정을 맡은 사람이 어떻게 인욕을 억누르고 천리를 확보하게 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했다. 늘 주입하고 각성하고 자각하고 코치를 받아야만 습관이 된다. 천리를 지향하고 인욕을 억누르는, 그것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지향이었다. 조선의 책문을 보면 지금도 반복되는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책문은 젊고 싱싱한 넋을 가진 지식인이 시대의 부름에 대답하는 주체적 결단의 절규이다. 그것은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대의 부조리에 반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는 시대의식의 투영이었다.”(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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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김태완 저 | 현자의마을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책문의 정신’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공자가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 노릇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조선시대의 옛것인 책문을 어떻게 오늘날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읽어낼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책문을 읽어보면 책제나 대책이나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현안과 문제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는지 실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공자의 온고이지신이라는 설교는 여전히 우리에게 천둥 같은 울림을 울리고 있다. 책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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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저19,800원(10% + 5%)

책문, 위기의 시대에 묻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13가지 근본 정책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출사표지만, 단순한 출사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건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선비들의 대책들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불통과 모순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 있는 해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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