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특집] 애주가들이 말하는 내 술, 내 추억!
채널예스 7월 특집: 술
술이 당기는 계절이 따로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운 여름날은 더 생각나는 술. <채널예스>가 7월을 맞아 준비한 특집은 술 이야기다. 우선, 애주가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술이란?
‘마짱’이 있는 술상
술을 마실 때 저마다 선택하는 안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그때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안주를 고르는 기쁨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주종은 선호에 따라 일정하게 선택되는 데 반해 수만 가지 안주는 그날그날의 입맛에 따라 애주가의 술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안주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마늘장아찌이다. 마늘장아찌는 안주보다는 반찬으로 익숙한 것인데, 술안주로서도 아주 그만이다. 특히 소주 안주에 그만이다. 달짝지근하면서도 간장과 어우러진 마늘 특유의 풍미가 그만인데, 그것이 소주의 휘발성 냄새를 적당히 잡아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에는 으레 그렇게 하듯이 나는 마늘장아찌에 나만의 애칭을 하나 붙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짱’이다. 내 주변 술친구들은 다 아는 얘기다. (김도언 시인, 소설가)
심야식당의 그 술 '가쿠 하이볼'
달고, 깔끔하고, 향이 좋다. ‘가쿠 하이볼’은 일본 술이라면 흔히 생각하는 맥주와 정종들과는 색깔부터 달랐다. 빛나는 황금색의 ‘가쿠 하이볼’은 1937년 처음 판매된 약 100년 전통의 ‘산토리 위스키 가쿠빈’ 원액에 레몬, 얼음, 탄산수를 섞어 마신다. ('하이볼'이란 위스키에 소다수를 타서 텀블러에 담아 마시는 칵테일을 뜻함) 제조법도 엄격하다. 가쿠빈과 소다수 비율은 1:4로, 머들러로는13회 반(반원만큼?)을 저어줘야 된다고 한다. ‘하이볼’을 처음 접한 곳은 일식 주점 ‘천상’이었다. 고소한 나가사키 짬뽕과 바삭한 새우튀김 사이에서 ‘하이볼’은 달짝지근한 맛으로 식욕을 돋우고 음식의 군내를 없앴다. 안주 없이 마실 때도 고급스러운 잔과(전용잔이 있음) 색으로 뭔가 ‘있어’ 보이니 홀로 마시는 처량함이 덜어줬다. 명작 만화 ‘심야식당’에서도 치킨 가라아게(닭 튀김)과 함께 소개돼 이름을 떨쳤으니, 스트레스 쌓인 월요일 점심이나 저녁 반주가 필요한 싱글 족들에겐 좋은 술친구가 아닐까. (강정국 JTBC 홍보마케팅)
홍탁 예찬
홍어 맛을 처음 본 건 20대 후반 무렵이다. 조그만 신문사에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게 됐을 때였다. 첫 회식메뉴가 삼합에 막걸리였다. 홍어만큼 호불호가 갈릴 음식이 또 있을까. 홍어와의 첫 만남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회식자리에 들어서자마자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퀴퀴한 냄새. 마치 며칠 양치를 안 한 아저씨의 입 냄새 같기도 했고, 배수관이 고장 난 하수도 냄새 같기도 했다. 맛 역시 냄새와 다르지 않았다. 톡 쏘는 맛이 어찌나 강한지 숨이 턱 막혔다. 콧속이 알싸한가 싶더니 입천장이 순식간에 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막걸리가 아니었으면 내상이 더 심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군기 바짝 든 신입이 아니었다면, 날 이곳에 데려간 선배들의 머리통을 강타하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몇 번을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끌려 다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난 그 퀴퀴한 냄새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렇게 싫던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로 느껴졌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안주다. 같이 곁들이는 술은 물론 막걸리다. 삭은 홍어와 신김치, 돼지수육 세 가지를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홍탁은 겨울이 제 맛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여름날에도 홍어 한 접시에 살얼음이 낀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간절하다. (이시종 문학사상 잡지팀장)
혼자 마시면 죽습니다
술친구와 나눠 마시면 좋은 ‘연태고량주’
음주가 법으로 허락되기 전부터 나는 몰래, 그리고 꾸준히 술을 마셔왔다. 그만큼 애주가라는 자평을 내려본다. 혼자 마시면 주종으로 맥주나 와인을 선택하지만, 오랜만에 술친구와 만날 때는 연태고량주를 마신다. 보통 사람들과 만났을 경우, 이과두주를 마셨으면 마셨지 연태고량주까지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양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간다. 그러니 나와 연태고량주를 마셨다면, 그건 나의 좋은 술친구가 되었다는 증거. 당신과 함께 술잔을 짠하고 오래 이야기를 나눠도 좋다는 말. 물론 이자카야나 맥주집도 좋아하고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술친구라면 허름한 중국집이나 양꼬치집에 단둘이 마주 앉아서 고량주 2병은 기본으로 서로의 잔에 부어주는 미덕이 있어야지 않을까. 내가 영화를 너무 봤을 수도 있다. 이제는 내 술친구들도 각자의 업무 때문에 예전처럼 자주 마시진 못한다. 하지만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날 때, 나는 카톡을 보낸다. “야, 빼갈이나 한 잔 할까? (끄덕양 예스24 페북지기)
브룩클린 세레나데
기억에 오래 남는 술의 맛을 되짚어보자면, 사실 술 자체가 지닌 미각적 완성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날씨, 시간, 장소, 사람, 그 날의 내 기분과 상대의 기분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야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술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브룩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Five Leaves’에 도착했을 때가 그랬다. 볕은 잔디에서 단잠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포근했고,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정말 잘생긴) 포토그래퍼와 수줍게 인사도 나누고, 모자 가게에 들러 소중한 사람에게 줄 마음에 드는 선물도 하나 고른 후에 그곳에 갔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는 히스레저가 바 구석에 쓸쓸히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실제 ‘Five Leaves’는 고 히스레저가 운영했던 곳이다). 모퉁이에 자리 잡은 가게 안에는 작은 바와 테이블 몇 개가 전부다. 오고가는 동네 사람이 언제든 바에 턱 걸쳐 앉아 에스프레소나 독한 보드카를 한 잔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곳에서 난 브룩클린 라거를 마셨다. 브룩클린 라거는, 코와 혀에서 느껴지는 풍미는 에일맥주의 그것과 비슷한데 목을 톡 쏘는 청량감을 가진 매력적인 녀석이다. 리코타치즈, 올리브오일, 벌꿀 버터, 메이플시럽, 무화과가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샐러드는 이곳의 인기 메뉴로, (거의 타기 직전까지)바싹 구운 바게트와 곁들이면 최고의 맛이 난다. 여기에 브룩클린 라거를 더하면 그 맛은 그야말로 ‘행복감’ 그 자체다. 우리(나와 여행친구)는 그렇게 한참이나 그곳에서 얘기를 나눴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브룩클린 라거를 몇 번 더 마셨다. 역시나 브룩클린에서의 그 맛은 도통 나질 않는다. 브룩클린도, 히스레저도, 그곳에서 마신 브룩클린 라거도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오래된 흑백필름이 된 것만 같다. (김은향 프리랜서 기자)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맥주
역시 국물엔 소주라는 사람도 있고, 우아한 자리에선 와인이 제격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술이나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나에게 올타임 넘버원은 맥주다. 살얼음이 살짝 낀 잔에 가득히 채워진 시원한 맥주만한 것이 있을까? 1990년대 중반 하*트 맥주는 맥주병 라벨에 특수잉크로 온도가 내려가면 나타나는 마크를 인쇄하여 마케팅을 했는데, 난 맥주병에서 그 라벨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수첩 속에 넣고 다니면서 맥주의 온도를 재는 짓을 하고 다녔다.
나 : (라벨을 조심스럽게 맥주잔에 대어보고) 야 시원하다 마셔 마셔!
친구들 : 와 마시자!
맥주는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린다. 바싹 구운 고기도 좋고, 치킨과 감자와의 조합은 진리다. 팝콘이나 오징어처럼 짭조름한 안주도 좋고, 국물 요리에도 그럭저럭 괜찮다. 개인적으로는 짭짤한 과자류와 함께 한 캔 정도 마시는 걸 좋아한다. 혼자라도 좋고,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다. (조선영 예스24 도서팀장)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술을 더 마셔둘 걸
친구들보다 일찍 군대 갔다 복학한 덕에 동기는 없었고 친했던 후배 한 놈 있었는데 맨날 나만 보면 술 마시자고 덤빈다. 솔직히 돈도 없고 군대까지 갔다 온 놈이 인생 탕진하고 사는 것 같아 이제 술은 그만 마시고 싶었다. 글 쓴답시고 모여 앉아 ‘누구 시가 어떻고 이번에 문학상 받은 소설이 어떻고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안 되네, 어쩌네, 미문인데 감동이 없네’ 이런 말들이 정말 쓰잘머리 없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자취방에 통닭 한 마리 가운데 놓고 1.8리터 소주를 물컵에 부어 마시는 것들이 어디 인간인가. 마시고 나면 뒷날 종일 골골거리다 또 어두워지면 어슬렁 기어나와 다시 술을 찾는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술 맛도 몰랐고(지금도 모르지만).
강의실 복도에서 후배를 만났다.
나: 술 끊었다, 요즘 간이 좀 안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베지밀 먹는다. 이따 수업도 있고.
후배: 누가예? 행님이예? 아이고야 차라리 밥을 묵고 똥을 안 싼다 하이소. 이런 날 수업은 무슨 시끄럽고 고마 한 잔 하러 가입시다!”
그러다 장판에 철썩 붙어서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요즘 마시는 술은 비즈니스 같아 더러 실수한 건 없는지 뒤끝이 찝찝할 때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해도 추억이나 되새김질하다 자리를 파한다. 생각해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술을 더 마셔둘 걸 싶다. 자고로 술은 편한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셔야 제 맛이니까. 하지만 이젠 어느 술자리든 내 자신이 제일 불편하다. (신정민 교유서가 대표)
부산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시는 술
술 한 모금에도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쓰디쓴 줄로만 알았던 술의 진정한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은 요 몇 년 사이! 그래서 나의 지난날 알코올 지수를 잘~아는 이들은 “너, 술 먹고 안 취해 매력 떨어진다”는 농담을 할 정도. 그런 나의 ‘알코올 매력’ 에너지가 절정에 달하는 곳은 ‘부산의 한 게스트 하우스’. 3년째 최소 한 달에 두어 번씩 꼬박꼬박 방문하다 보니 ‘부산집’이라 칭하는 이곳의 매력은 밤새 함께 이야기 나눌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 마음 맞고 이야기 통하는 사람들과의 즐겁게 술을 마시고 싶은 내게 딱 맞은 ‘술집이자 안주’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 답답해질 때면 일을 마치고 서울역을 찾아 부산으로 달려가다 보니 새벽에 도착해 밤새 술을 먹고, 다시 아침이면 서울로 출근하는 어마 무시한 모험도 이루어진다.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한 술자리. 파도 소리가 들리고 낯선 이들과 익숙한 이들의 재잘재잘 수다와 깔깔깔 웃음소리를 안주로 아침 햇살을 맞이하다 보면 다디단 술자리가 완성된다고 할까? (배미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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