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지 않은 디지털 세상에서 잊힐 권리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 999년과 무제한은 분명히 다르다
한 대학생이 이른바 ‘몸캠 피싱’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다. 연예인이 SNS에 적은 몇 마디 말로 구설수에 오른다. 유명 카드사가 해킹을 당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누출된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광고 전화와 문자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까.
최근 구글이 ‘구글 포토’를 발표하고 무료로 무제한의 사진 저장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시간으로 업로드 할 수도 있고, 업로드 된 파일들이 장소와 날짜별로 정리되는 등 편리한 기능도 함께 설명했다. 인터넷 저장 장소에 용량 제한이 있거나, 더 많은 용량을 사용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었다. 뉴스는 빠르게 내용을 보도했고, 사람들은 소중한 정보가 없어질까 걱정했는데 이런 서비스가 생겨 다행이라며 반겼다. 만일 송명빈 저자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더라면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지만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저장에만 집중했지, 소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은 디지털 시대가 진화함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더 큰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는 대재앙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 다시 뉴스를 들여다보자. 한 대학생이 이른바 ‘몸캠 피싱’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다. 연예인이 SNS에 적은 몇 마디 말로 구설수에 오른다. 유명 카드사가 해킹을 당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누출된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광고 전화와 문자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까.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이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디지털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저장되고, 무한히 복제된다. ‘디지털 장의사’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멀지 않게 느껴진다. 소설에만, 영화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길 권한다. 디지털 세상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디지털의 장점은 곧 단점
소설, 영화 등에서도 문제제기를 많이 해왔지만 실제 생활에서 온라인 프라이버시에 관해 체감하는 정도는 아주 미미한 것이 현실입니다. 저자가 처음 ‘잊혀질 권리’에 집중하게 된 건 언제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인터넷 1세대인데요, 그동안 그 누구도 지우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최근 몇 가지 이슈들로 ‘잊혀질 권리’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잊혀질 권리’라는 단어에 혹시 갇혀있지는 않는지 의구심을 가지고요. 그것이 왜 등장했는지, 인터넷이란 무엇인지, 문제가 그것에만 있는지 묻는 거죠. 좀 더 근본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디지털’이라는 속성에서 시작합니다. 디지털의 장점은 영구불변, 무한복제가 가능한 것이죠. 이는 역사적으로 영세했던 인류에게(웃음) 엄청난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이게 장점일까요? 단점이지 않을까요? 생각을 바꾸면 거기서부터 단점이 나오기 시작해요. 영구불변한 것이 우리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댓글이 무한히 보존되는 것이 문제가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10년 이상 인터넷 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느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책에도 다루셨지만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사생활 노출 자료가 웹에 퍼져서 곤란을 겪기도 하고, SNS로 대중의 뭇매를 맞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었죠. 이미 퍼진 자료는 아무리 지워도 계속 복제됩니다. 말씀처럼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검찰에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사건이 생기면 검찰이 PC, 휴대전화 등을 다 조사하잖아요. 사람들은 수사하기 전에 삭제하고 없애지만 검찰은 모두 복구해내요. 그게 디지털 포렌식인데요. 검찰만 가능한 게 아니라 해커들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도 되죠. 지운 게 모두 살아난다는 이야기에요. 파일을 삭제하고 휴지통 비우기까지 하면 완전히 삭제된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게 아닙니다. 콘텐츠는 그대로 남아있고 연결하는 다리만 붕괴시켜놓은 거예요. 다리만 놓으면 복구할 수 있겠죠? 검찰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모든 PC는 복구가 돼요. 심지어 세 번 정도 포맷한 것까지도 복구가 돼요.
그와 관련해 책에서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세 번 이상 포맷을 해야 한다고요.
10GB의 저장소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용량 가득 덧씌우기를 세 번, 네 번 해야 해요. 제가 5년 전쯤에 PC가 고장이 나서 복구가 되는지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두 시간 있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두 시간 만에 복구가 됐는데 깜짝 놀랐어요. 훨씬 이전 자료들까지 모두 복구가 된 거예요. 머리가 쭈뼛 서더라고요.
인류에게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어요.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이 많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었죠. 종이를 만들어 제본해서 책을 만들기까지 굉장히 힘든 일이었잖아요. 부피도 크고요. 그런데 디지털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아주 작은 것에 많은 정보를 넣기 시작했어요.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 저장과 기록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싼 거죠. 흔해져버린 거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은 계속 쟁여 넣어요. 그렇게 쟁이는 것을 제 3자가 관심 있게 보는 거예요. 바로 해커죠.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디지털 주권’을 말씀하잖아요. 디지털 주권이 개인에게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고 한 저자의 주장에 큰 공감이 갑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려요.
패러다임을 봐야 해요. 잊혀질 ‘권리(right)’잖아요. 이 권리는 소비자의 것이에요.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나 인터넷진흥원 등에서 공청회를 하면 소비자는 없고 서비스 사업자만 있어요. 서비스 사업자들은 잊혀질 권리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 않거든요. 지우고 싶지 않아요. 돈이 되니까요. 정보통신망법 44조라든지 하는 것들이 잊혀질 권리를 대변하는 법안이라고 하잖아요. 서비스 사업자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소비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얘기를 하고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소비자가 포털에 올렸던 게시글을 지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구글의 경우는 전화번호도 없고 이메일로만 접수하게 되어 있어요. 전화를 할 수 있는 경우도 담당자 찾는 데만 2~3일이 걸릴 거예요.
근본적으로 지우는 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회원수와 저장소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포털사의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인적 자원, 자산 등과 더불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저장용량을 보유하고 있느냐거든요. 썩은 데이터라도 보유하고 있으면 그것이 자산 가치로 인정받는다는 것이죠. 자산이 소멸되는데 지울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하루에 받는 이메일 중 80%가 광고인데, 그걸 왜 없애지 않고 계속 쟁여 놓느냐는 거죠.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높은 자산 가치를 유지해서 수익이 나는 것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기업들은 온갖 정보를 계속 가지고 가는 거예요.
기업의 논리에서만 본다면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텐데요.
국내 거대 포털사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국민 기업이란 말이죠. 저장소가 돌아가려면 막대한 전력이 들어가잖아요. 저장소는 또 발열이 되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디션 시스템이 들어가요. 거의 수력 발전소 하나의 전력이 들어갈 정도예요. 그것은 국민의 혈세로 돌아가죠. 저는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주장을 해요. 왜 썩은 데이터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이 많은 사회적 비용과 기회 요소와 자산이 들어가야 하느냐고요.
아마 스스로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될 거예요. 아직 인터넷의 1세대, 30년이 다 지나지 않았어요. 이제 사후 문제가 발생합니다. 죽은 사람이 여전히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어요. 블로그, 카페, 이메일 계정이 그대로 남아 있죠. 그것들을 포털들은 자산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이에요.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생겨날 테고 계속 누적이 될 텐데, 기업에서는 대책이 있느냐는 거죠. 저도 죽고, 2세대, 3세대가 되면 그때도 이런 자산, 정보를 계속 보존할 거냐는 거예요.
디지털 공간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비용은 무료에 가깝다. 하지만 한번 뿌려진 정보를 회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따라서 모바일 분산 네트워크 공간에서 소멸시효를 정하지 않고 올린 글이나, 아무 장치 없이 게시한 정보를 완전하게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88쪽)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 Digital Aging System)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 많은 정보를 더 적은 공간에 담을 수 있게 되었어요. 저장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 기대할 수 있고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겠네요.
‘무어의 법칙(Moore's law,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은 18개월마다 반도체는 2배씩 성장한다는 내용이에요. ‘황의 법칙(2002년 당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이 발표)’은 12개월마다 2배씩 성장한다는 내용이고요. 그 말은 18개월, 1년 마다 반도체 가격이 반값이 된다는 얘기에요. 8GB짜리 USB가 지금 3만원이라고 하면 내년에는 1만5천원이 된다는 얘기잖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쌓아도 되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인터넷 기록물들이 대부분 텍스트였어요. 몇 킬로바이트면 끝났죠. 지금은 사진, 동영상, 동영상도 SD급, HD급, UHD급으로 바뀌고 이제는 3D까지 나왔어요. 용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용량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정말 계속 가격은 낮아질까요? 황의 법칙은 깨지지 않을까요? 반도체는 물리적으로 30나노미터 이하까지도 줄일 수 있는데요, 그것보다 더 줄이게 되면 혼선이 발생하기 시작해요. 반도체 자체의 신뢰도가 깨지겠죠.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종이를 반씩 접어보세요. 더 이상 접지 못하는 때가 오잖아요. 저장소 값이 내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제부터 대란이 일어나는 거예요.
다만 ‘잊혀질 권리’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훨씬 큰, 지구적인 관점을 갖고 계시는군요.
‘잊혀질 권리’와 ‘디지털 소멸’의 포함 관계를 잘 모르시더라고요. 디지털 안에 인터넷, 그 안에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것이 잊혀질 권리예요. 디지털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게 70년 정도 되었고, 현재는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되어 있죠. 컴퓨터, 휴대전화, MP3, 자동차에 들어가는 CPU와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속성을 가지고 있죠. 잊혀질 권리는 디지털과 관련된 커다란 재앙 중 작은 전조증상이라고 책에 썼는데요. 앞으로 디지털 재앙이 어떻게 오는지 상상해봅시다. 휴대전화를 많으면 12개월에 한 번 씩은 바꾸거든요. 노트북도 2~3년 되면 바꾸고요. 버리기 아까우니까 중고로 10만 원이라도 받고 팔아요. 2020년에는 자동차가 무인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요.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위를 달리게 된다는 말이죠. 앞으로는 시동을 걸면 OS(Operating System)가 부팅될 거예요. 주인이 다녔던 10년, 20년 치 기록이 온전히 폐기될까요? 차는 폐차하더라도 메모리는 아까우니까 시장에 되팔잖아요? 사생활 문제가 다 노출될 거 아닙니까. 자동차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기겠어요. 가장 큰 문제는 빅데이터예요. 빅데이터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데이터까지도 정보로 가공하겠다는 것이잖아요.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주는 이점만 엄청나게 강조되어온 것 같아요.
이제 마이크로로봇이 나온다고 해요. 혈관 안에 들어가서 암세포를 잘라내고, 막혀있는 혈관도 자른대요. 그 로봇이 역할을 다하면 죽어서 몸 밖으로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오류가 났다면 어떨까요? 혈관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혈관을 자른다면 말이에요. 과연 관리가 되겠느냐는 거죠.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 Digital Aging System)이라고 하는 것은 시한을 둬서 언제까지만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도 물론 있어요. 또한 ‘에이징’이라는 것은 갱신의 의미거든요. 좀 더 사용해야겠으면 ‘YES’라고 신호를 줄 테니 계속하고, ‘NO’라고 신호를 주거나 또는 아무 말이 없다면 그때까지만 임무를 수행하고 소멸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규정이 없으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동차, 의료용 로봇, 디지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문제가 되겠죠.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도 큰 문제예요. 팬티만 입어도 당뇨가 체크된다고 하잖아요. 그 모든 개인정보가 제대로 관리가 되겠느냐고요. 그걸 다 확인하고 싶은 게 빅데이터잖아요. 큰 문제예요.
지금까지 디지털은 생성하고 저장하는 측면만 봤지만 데칼코마니 같은 거예요. 소멸에 대해서 이제부터는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으로 디지털 소멸 특허를 세계최초로 취득하셨어요.
제가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요. 특허로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 나 혼자만 쓰겠다는 게 특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허의 첫 번째 요소는 공개하는 거예요. 등록하면서 다 알게 되잖아요. 그 대신 공개한 사람에게 권리를 인정해주는 거죠.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공개했으니까 가져다 쓰라는 거예요. 엄청난 돈을 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참 이상한 게, 기업은 창의력에 대해 협의하거나 인정해주지를 않고 그걸 피해서 똑같이 만들려고만 해요.
이 특허는 ‘스냅챗(수신자가 메시지를 읽으면 사라지는 휘발성 SNS)’과도 다릅니다. 그곳 역시 삭제 방식이 아니거든요. 사진을 찍어 보내면 상대가 읽었을 때 5초 이내에 사라지잖아요. 사진을 동영상 5초 간 재생하고 멈추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서버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요. ‘플레이스톱방식’이죠.
특허를 내서 ‘공개’를 하려고 했다고 하셨는데요. 디지털 소멸과 관련한 저자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디지털 소멸은 디지털 생성 전체와 맞먹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장이에요. 그 중에 인터넷 시장은 일부인데,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죠. 소멸에 관한 시장이 이제 시작되었다고 하면 엄청나게 큰 시장이겠죠. 저는 거기에 비즈니스 모델들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타이머를 단다든지, 어떤 것은 남기고 어떤 것은 소멸시킨다는 식의 로직, 논리구조를 생각하는 거죠. 그것을 인터넷에 적용할 때는 어떻게 한다, SNS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 블로그나 카페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격들을 제시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주 시작단계예요.
최근 추가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작년 1월에 카드사에 있던 개인정보가 다 유출되었잖아요. 동사무소, 은행 등에서 작성한 가입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크게 문제가 된 적도 있었고요. 코어 데이터만 관리한다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9급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PC 뒤져보세요.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에 해커들이 접근해요. 얼마든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요. 디지털 소멸 문제는 시급합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수명 관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SSO, 클라우드 서비스, 심지어는 A/S를 통해서도 나의 소중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짐작은 했지만 사뭇 충격적입니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리함과 소중한 개인정보를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어떻게 믿어요? 어이없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기업에서는 관심이 없어요. 한 은행에 제 특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정보보호의 필요성을 강변한 적이 있어요. 열흘 동안 고민하고 온 답변이 “너희 시스템을 적용할 때 은행 업무가 불편해진다”는 거였어요. 너무 화가 났어요. 은행 편하라고 제안한 게 아니었거든요. 불편하라고 제안한 거죠. 고객을 보호하라고요. 그런데 기업이 편해지는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여전히 정부나 법제 관료들은 서비스 사업자에 포커스 되어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책을 내게 된 것도 좀 읽어보고 소비자들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알게 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66쪽)고 하셨는데요. 위기감을 느끼면 결국 어쩔 수 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죠. 그래야 한다는 것일까요?
안심하고 하기가 어렵죠. 자기 검열을 해야 해요. 비밀번호를 건다든지, 자료를 주고받을 때 필요 이상으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유럽과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글로벌 기업 간 ‘잊혀질 권리’에 관련한 법정 다툼은 우리에게도 주요한 논쟁거리를 안겨줍니다. 바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반론 때문인데요. 이것에 대해서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것이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인 거예요. 고객에게 자기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키보드에 엔터키가 있잖아요. 그 위에 선풍기처럼 드르륵 돌려서 시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만들어 넣자는 거예요. 한 달 설정하고 엔터, 두 달 설정하고 엔터를 누를 수 있도록 하자고요. 지금까지는 업로드, 다운로드 외에 뭐가 있었나요. 업로드할 때 시한 설정의 선택권을 준 적이 없잖아요. 나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거예요. 내가 글을 올리는 것이니까요. 기업은 한 번도 글을 올리는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올리는 순간 주홍글씨가 되는 거잖아요. 999년과 무제한은 분명히 다른 거예요. 999년은 언젠가 없어진다는 의미예요. 오래 걸리지만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무제한은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일기를 쓰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이 저장되어 있는 기간은 100년이면 족해요. 송도 IT 센터에 가면 뭐라고 적혀있는 줄 아세요? ‘당신의 자료를 천 년 간 보관해드립니다’라고 걸어놨어요. 대체 왜 그래야 하나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우리에게 한 번도 없었던 선택권을 이제는 달라는 거고 자기 결정권을 달라는 거지 알 권리, 표현의 자유와는 관계가 없어요.
‘올리는 순간 주홍글씨가 된다’는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다른 거예요. 기자들이 쓴 것까지 지우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디지털 콘텐츠의 수명 관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자료를 올릴 때 언제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예측하고 결정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악플을 달았다고 해도 그게 십 년 갈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교사인 아내에게 제자가 찾아와 “개명하고 싶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이 그래서 오는 거죠.
저는 사는 동안 인터넷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들은 태어나보니 인터넷 세상인 거예요. 휴대전화도 아이들이 더 잘 다루잖아요. 그 아이들은 인터넷이 뭐가 문제다, 이건 이렇게 사용해야 한다고 이해하기 전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이 돼요. 인터넷에 욕을 쓸 수도 있고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올렸던 욕 때문에 취업이 안 되고, 결혼도 못하고, 대대손손 딱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일련의 위험성들을 고려해 저자가 습관처럼 하는 작업들은 어떤 게 있나요? 독자에게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면 말이에요.
톡 하는 친구들과 가끔 만나면 다 같이 지우자고 해요.(웃음) 나만 지우면 안 되거든요. 함께 지워요. 굉장히 피곤하죠. 또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문제 있는 것들은 지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언젠가 자료 삭제 요청을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정말 힘들게 한 적이 있어요. 회유, 부탁, 애원을 해서(웃음) 일주일 만에 지웠어요. 아마 그 경험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여기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잊혀질 권리와 디지털 소멸 관련해서 서비스 사업자와 소비자 구조를 앞서 말씀 드렸는데요. ‘as is’와 ‘to be’로 나뉘어져요. as is는 평판관리회사처럼 용역 베이스로 지우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 지우는 것도 한계가 있죠. ‘퍼가기’ 한 것은 애원을 하거나 정말 돈을 많이 주거나 해서 지우는 수밖에 없잖아요. 여러 사람이 퍼갔다면 그들 모두에게 연락을 해야 해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이런 형태는 귀찮음을 대신할 뿐이죠. 지금까지 디지털 소멸과 관련해서는 표준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to be는 자동화 시스템이에요. 과거 30년 간 잘못해 온 부분을 100%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규격을 적용한다면 이제는 관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특허 논리 구조대로 실행을 하면 퍼가기도 관리가 돼요. 태그값이 남으니까 내가 없애면 퍼가기도 없앨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제한적으로나마 관리가 되는 스탠다드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걸 우리나라가 먼저 만들어서 국제 표준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전략) 즉 ‘DNA 그리고 이것의 생명주기를 관장하는 이른바 텔로미어의 도입이 바로 디지털 미래의 근본적 해법은 아니겠는가?’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213쪽)
깊이 생각할수록 이것이 무척 철학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에 관한 문제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인간의 유전자 안에 텔로미어(telomere)가 들어있는 것처럼 디지털 안에 수명 관리 소자를 넣겠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요. 디지털에이징시스템은 지금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디지털이라고 하는 작은 소자 하나하나에 수명 관리 유전자를 심겠다는 것이니까요. 디지털은 앞으로 무한히 변모할 거예요. 오감에 대해서 다 기록하는 날이 올 거고요. 앞으로는 1GB짜리 ‘ㄱ’도 나올 수 있겠죠. 그 글자 안에 냄새나 다른 개념이 들어갈 수도 있고요. 디지털 안에 텔로미어를 넣겠다고 하면 흔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시겠지만, 그건 지금 얘기죠. ‘ㄱ’ 하나가 1GB인 상황에서는 당연히 텔로미어를 넣을 수 있어요. 디지털에게 아이덴티티를 주고 대신 우리가 정한 시간에 죽어야 한다는 거예요. 책에는 이런 부분을 뒤에서 아주 조금 다루고 있는데요, 다음 책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송명빈 저 | 베프북스
이 책에서는 일상에서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를 줄이는 예방법 및 디지털 흔적을 지우는 방법부터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우리가 미처 몰라서 이용하지 못했던 인터넷 사이트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잊혀질 권리의 개념과 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 더 나아가 디지털 소멸이라는 한 차원 더 높은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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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끄러운 과거와 화해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권리가 있다! 무심코 누른 ‘좋아요’, 무심코 올린 사진 한 장, 무심코 가입한 홈페이지… 이 모든 것들이 디지털 낙인이 되어 당신의 삶을 옭아맨다면? 디지털 망망대해 속에 당신의 개인 정보가 이리저리 떠다니며 누군가의 범죄 수단이 되고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