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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푼크툼 그리고 디지털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바르트는 ‘사진을 찍는 자’가 아니라 ‘사진에 찍히는 자’와 ‘사진을 보는 자’의 입장에서 이론을 구성했다. 일종의 ‘수용자 미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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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기 전에 바르트는 “사진에 대해 어떤 존재론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는 “겨우 몇몇 사진들, 즉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그런 사진들을 내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이는 물론 “내 자신 안에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것”에만 의존하여 “모든 환원적 체계에 대한 결사적 저항”을 수행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는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믿음을 유예했던 데카르트를 연상시킨다. 이 방법적 회의를 통해 바르트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고유한 특수성이며, 최고의 고유한 우연성이며 (…) 순수한 우연, 고유한 기회, 고유한 만남, 고유한 현실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사진의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라는 유명한 구별을 도입한다. 라틴어에서 “스투디움은 어떤 것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애정, 열정적이지만 특별히 격렬하지는 않은 일반적인 정신 집중을 의미한다”. 사진에서 스투디움을 찾아내 읽는 것은 언제나 고전적 의미의 정보로 귀결된다. 이것은 통상적인 해석의 체계를 요구한다. 이때 사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것은 “평균적인 정서, 즉 거의 길들이기”에 가까울 뿐이다. 바르트가 사진에서 주목하는 것은 두 번째 요소이다.
이 두 번째 요소는 스투디움을 깨뜨리러 온다. 이번에는 내가 그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장면으로부터 화살처럼 나와 나를 관통한다. 뾰족한 도구에 의한 이러한 상처, 찔린 자국, 흔적 (…) 푼크툼은 또한 찔린 자국이고, 작은 구멍이며, 조그만 얼룩이고, 작게 베인 상처이며, 또한 주사위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푼크툼은 사진 안에서 나를 따르는 그 우연이다.
푼크툼은 이렇게 통상적인 해석의 체계를 전복시키면서 일종의 사건처럼 우리를 엄습한다. 이것은 “주제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상처로서의 사진”이다.
푼크툼의 조건
바르트는 푼크툼의 조건을 나열한다. 먼저 “푼크툼은 하나의 세부 요소, 다시 말해 부분적인 대상이다”. 대개 푼크툼은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그것은 코엔 베싱의 사진에서는 아이의 시체를 보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손에 들린 침대보이며, 제임스 반 데르 지의 사진에서는 흑인 여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이며, 루이스 하인의 사진에서는 정박아 소년의 당통식 칼라이며, 나다르의 사진에서는 흑인 견습 선원의 팔짱 낀 팔이며, G. W. 윌슨의 사진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탄 말의 고삐를 쥔 사내다.
하지만 디테일이라는 것만으로 곧바로 푼크툼이 되지는 않는다. 비의도적이어야 한다. “흥미를 끄는 세부 요소는 의도적이 아니거나, 최소한 완전히 의도적은 아니며, 의도적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촬영된 대상의 영역에서 무상한 보충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푼크툼은 우연히 거기에 있었기에 사진에 찍히지 않을 수 없었던 디테일이다. 또한 작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진작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푼크툼이 하찮은 것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그 의도하지 않은 디테일이 내 안에 무언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내 안에서 작은 전복, 즉 어떤 공의 지나감을 야기”시켜야 한다. 바르트는 이를 선(禪)에서 말하는 ‘사토리’(悟り, 순간적인 깨달음)에 비유한다. 나아가 푼크툼은 하나의 보충, “시야 밖의 미묘한 영역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가령 성기를 노출시킨 포르노 사진과 달리 성기를 노출시키지 않고도 보는 이를 프레임 밖으로 이끄는 에로틱 사진처럼, 푼크툼도 관객을 프레임 밖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바르트는 논의를 이끌어 가다 불현듯 중단한다. 자기에게 푼크툼으로 다가온 모든 사진을 검토했지만, 그저 “내 욕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았을 뿐, “사진의 본질(eidos)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내 즐거움이 불완전한 매체이고, 쾌락주의적 기획으로 귀결된 주관성은 보편적인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한 말을 모두 취소하고, 사진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기로 한다.
필연적으로 현실적인 것
미로에 빠진 그에게 구원의 빛을 던져 준 것은 작고한 어머니의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한 장의 낡은 사진이었다. 그 세피아 빛 사진은 바르트의 어머니가 다섯 살 때 오빠와 온실에서 찍은 것이었는데 “사진의 본질 같은 무언가가 그 특별한 사진 속에 감돌고 있었다”고 바르트는 말했다. 그는 “그 유일한 사진에서 사진의 고유성을 끌어내어 마지막 탐구의 안내로 삼기로 결심”한다. 이 사진은 그에게 “진정 본질적이었다”. “유일한 존재에 대한 불가능한 앎을 유토피아적으로 완수해 주었”던 것이다.
바르트가 그 사진에서 발견한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어머니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바로 이 단순한 사실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령 사진은 회화와 다르다. “회화는 현실을 보지 않고도 그것을 가장할 수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언어가 사실이 되려면 “논리가 소환되고, 그게 안 되면 선서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은 다르다. 사진은 “코드 없는 이미지”다. 사진에서 촬영된 대상과 관객의 시선은 일종의 “탯줄”로 연결된다.
내가 사진의 지시대상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나 기호가 지시하는 임의적으로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이 존재하게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카메라 렌즈 앞에 놓였던 필연적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이를 바르트는 ‘사진의 노에마’라 부른다. 물론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사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사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하이데거라면 이를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 혹은 ‘명제진리와 사태진리의 차이’로 명명했을 것이다). 바르트가 최종적으로 사진의 본질로 발견한 것은 공존의 단순한 신비, 즉 ‘그것이-존재-했음’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그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사진들의 일상적 폭발 속에서 ‘그것이-존재-했음’이라는 노에마는 (…) 당연한 특징처럼 무심하게 체험될 수 있다. 온실 사진은 이와 같은 무심에서 나를 일깨웠던 참이었다.
또 다른 푼크툼
이 깨달음에 힘입어 바르트는 디테일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종류의 푼크툼에 도달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푼크툼이다.
이제 나는 세부 요소와는 다? 또 다른 푼크툼이 있음을 안다. 이 새로운 푼크툼은 더 이상 형태가 아니라 강도인데, 바로 시간이고 노에마의 가슴 아픈 과장이며 그것의 순수한 표상이다.
바르트는 알렉산더 가드너가 찍은 청년 루이스 페론의 사진을 예로 든다. 사진 속 청년은 1865년 미국 국무장관의 암살을 기도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진은 아름답고, 청년도 역시 아름답다. 이것은 스투디움이다. 그러나 푼크툼은 그가 곧 죽는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절대적인 과거를 제시하면서 미래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바르트를 구원한 어머니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나의 어머니-아이를 촬영한 사진 앞에서 나는 어머니가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의 노에마는 단순하고 평범하다. 그것은 아무런 깊이가 없으며, 그것은 ‘존재했다’일 뿐이다.” 이 단순한 사실에서 나오는 푼크툼의 효과는 사진 속의 대상이 한때 존재했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지금은 살아 있으나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눈앞에 나타나게 한다. 바르트는 사진 속의 피사체를 “사진의 유령”이라 부른다. “사진은 나에게 이상한 영매, 새로운 환각 형태이다. 지각의 차원에서는 허위이지만, 시간의 차원에서는 진실한 환각의 형태다.”
도상, 상징, 지표
『사진적 행위』에서 필립 뒤바는 퍼스의 기호 클래스를 토대로 사진이론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초기의 사진 이론은 사진을 도상(icon)으로, 즉 세계의 ‘그림’으로 간주했다. 이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회화의 규정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사진은 세계의 그림이 아니라, 그것을 찍는 이의 관념의 그림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제 사진은 그 의미를 읽어야 하는 텍스트, 일종의 상징(symbol)으로 간주된다. 바르트는 바로 이 관념을 전복시키려 한다. 그는 지배적인 사진 담론에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다.
오늘날 사진 해설가들에게서 유행하는 것은 의미론적 상대성이다. 현실적인 것은 없고(사진이 언제나 코드화되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사실주의자들’에 대한 경멸이 대단하다), 다만 기교가 있다는 것이다. 피지스(Physis)는 없고 테지스(Thesis)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의 지시 대상은 “필연적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실제 존재했던 것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회화나 언어와 달리) 존재했던 것의 증명이 될 수 있다. 사진은 “코드 없는 기호”로, 그것의 기호적 본성은 지표(index)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르트의 『밝은 방』을 제3세대 사진 이론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술사에서도 비슷한 경로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세기까지 전통 회화는 도상(icon), 즉 자연의 모방으로 여겨졌다. 20세기에 추상 회화가 등장하면서 회화는 일종의 상징(symbol), 즉 그 의미를 읽어 내야 하는 텍스트가 된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추상 운동이 쇠퇴하면서 회화는 기호적 성격을 지표(index)로 바꾸게 된다. 예를 들어 추상표현주의(가령 잭슨 폴록)의 회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위로 움직인 손의 움직임이요, 앵포르멜(가령 장 뒤뷔페)의 회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화가의 손이 남긴 자취와 흔적이다.
“나는 야만인이고 어린아이다. 나는 모든 지식, 모든 교양을 몰아내고, 다른 시선을 물려받는 것을 삼간다.” 바르트의 말은 마치 아르 브뤼(art brut)의 선언문처럼 들린다. 시각성보다 촉각성을 강조하는 것은 전후 모더니즘의 특성인데, 바르트 역시 사진을 시각이 아니라 촉각의 문제로 본다. 푼크툼을 이야기하면서도 들었지만, “사진작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데에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사진 행위의 촉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촉각성에 대한 그의 취향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나의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견뎌내고 좋아하며 나에게 친숙한 유일한 것은 사진기 소리다. 나에게 사진작가의 기관은 그의 눈이 아니라 손가락이다. 손가락은 카메라 렌즈의 셔터 소리에 연결되어 있고, 금속성을 내는 건판의 미끄러짐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런 금속성 소리를 거의 관능적으로 좋아한다.
이것은 그저 우연한 평행선이 아니다. 바르트의 이론이 앵포르멜(informel) 운동의 정서적 분위기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관련이 너무 늦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유아론과 회고주의
『밝은 방』이 사진 이론의 역사에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는 데에 이견은 없지만, 그의 이론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역시 푼크툼 개념의 유아론적(solipsist) 성격이다. 바르트가 예로 제시한 여러 디테일에서 푼크툼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바르트 역시 이 문제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푼크툼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토로하는 것이다.” 어쩌면 바르트가 푼크툼의 예로 제시한 것들은 실은 그의 주관적 투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가 제시한 또 다른 푼크툼, 즉 시간의 푼크툼 역시 너무 향수론적(nostalgic)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을 푼크툼의 예로 제시하나, 그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주관적 향수를 사진의 객관적 효과로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르트 역시 그것이 오직 자기 자신만의 체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나는 온실 사진을 보여줄 수 없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여러분에게 그것은 별것 아닌 사진에 불과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의 수많은 표현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말이 잘 말해 준다. 또한 그는 묻는다. “왜 대상마다 새로운 과학이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왜 (더 이상 보편적이 아닌) 특수한 마테시스가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이 물음은 이론으로 가져야 할 보편성과 다루어야 할 체험의 절대적 개별성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바르트가 이 물음에 담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잖이 의문이 든다. 과연 『밝은 방』의 독자 중에서 바르트가 제시한 사진을 보고, 또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를 읽고 그가 했던 것과 똑같은 푼크툼의 체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근본적인 위험
이는 바르트 이론의 효용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바르트는 ‘사진을 찍는 자’가 아니라 ‘사진에 찍히는 자’와 ‘사진을 보는 자’의 입장에서 이론을 구성했다. 일종의 ‘수용자 미학’인 셈이다. 하지만 그 체험이 오직 바르트 자신에게만 이해되고, 그 이론이 오직 바르트 자신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수용자 미학이 될 수가 없다. 수용자 미학은 수신자인 수용자 대중의 보편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수용자 미학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예술가 미학’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푼크툼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사진은 “테크닉, 현실, 보도, 예술 따위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사진에서 전문가로 올라가 있는 것은 외려 아마추어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사진의 노에마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밝은 방』이 푼크툼의 연출을 위한 예술가 미학이 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이렇게 수용자 미학도 예술가 미학도 될 수 없다면 이 이론을 과연 어디에 써야 할까?
이 논리적 난점과 별도로 최근에 그의 이론이 처한 또 다른 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바르트가 회화와 언어에 대립시켰던 사진의 고유한 특성, 즉 지표성(indexicality)을 무너뜨렸다. 오늘날 회화와 사진의 경계는 사라졌다. 디지털 사진은 더 이상 피사체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진적 생생함을 가지고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제시한다. 디지털 사진의 지시 대상은 더 이상 “필연적으로 현실적”이지 않다. 이것은 바르트 이론의 존재론적 위기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