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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마음 내키는 대로 걷고 싶은 도시라면, 서울은...

파리의 이방인이었던 나는 이제 서울의 이방인이 됐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저자 정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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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사는 정수복은 두 도시 모두에서 경계인이자 이방인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서울의 풍경은 어떨까? 걷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오늘의 서울을 읽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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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부터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정수복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오랫동안 파리 생활을 해왔다. 오랜 파리 산책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을 펴냈던 그는 2012년 다시 서울로 삶의 주요 근거지를 옮겼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은 파리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이방인의 기록이다. 낯설었던 파리가 점차 익숙한 장소가 될 무렵, 서울로 귀국한 그는 이제 서울의 이방인이 됐다. 정수복은 “이방인 산책자가 되어 도시를 걷다보면 도시가 나의 온몸으로 들어오고 내가 도시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은 그런 체험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사회학자이며 작가, 산책자인 정수복은 그간 『의미세계와 사회운동』, 『녹색 대안을 찾는 생태학적 상상력』,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등을 펴냈다.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

 

『파리를 생각한다』 등 파리 연작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서울을 생각한다’인데요. 파리가 아닌 서울을 걷고 이 책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2년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을 파리에 살다 귀국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외국에 살다가 서울로 돌아오니 낯선 풍경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어요. 1980년대 7년 동안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세월이 흐르면서 낯선 풍경은 점차 당연의 세계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에 돌아온 이후 눈에 새롭게 보이는 장면들을 하나 둘 스냅사진 찍듯이 적어 내려갔습니다. 붙박이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하게 스쳐지나가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라도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책의 1부에는 미세한 것, 하찮은 것,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는 33개의 장면들이 슬라이드쇼처럼 펼쳐집니다.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를 걸으면서 채집한 것들이죠. 이 책의 2부에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도시를 걷는 16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1부와 2부는 안과 밖을 이루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책의 1부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꼽은 서울 33경에 눈길이 갔습니다. 33경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풍경인가요?

 

앞서 말했듯이 서울에서 계속 살아가는 붙박이의 눈에는 내가 쓴 33개의 장면들이 시시한 장면들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방인이 되어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려 한다면 독자들도 나처럼 모든 장면들을 다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방인은 탁 트인 시선과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고 조감도를 그리고 싶어합니다. 파리의 일상생활에 익숙해진 이방인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보면 횡단보도의 붉은 신호등 앞에 아무 저항 없이 멈추어 서 있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마저도 이상하게 보입니다. 파리에서는 빨간불이라도 차가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죠. 남자의 양복 상의를 여자가 들고 그 대신 여자의 핸드백을 남자가 들고 다니는 모습도 신기하게 보입니다. 파리의 연인들은 결코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거든요. 어느 지하철역 통로에 펼쳐지는 성형외과 광고판들도 기이하고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붉은 십자가들도 신기하게 보입니다. 또 서촌의 인왕산 올라가는 길에 조성된 수성동 계곡은 17세기 정선이 그린 그림 속에서 몇 세기 동안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죠.   
 
‘한 도시의 이방인’으로서 그 도시를 알고 느끼는 과정으로서 걷기를 택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사회학자 정수복에게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면서 삶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드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행위입니다. 동물이었던 인간은 일어나 걸으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숲 속을 걷고 산속을 헤매던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 도시에 살며 도시를 걷게 되었죠. 숲 속에서 위험한 동물을 경계하고 먹을 것을 찾던 인간은 이제 자동차가 달리는 고층건물의 숲 속을 걷고 있습니다. 걷기는 기분 전환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세상과 인생을 아는 기본적 방법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홀로 걸으면서 마음을 달래는 것은 그래서일 겁니다. 걷기에는 마음을 다스려주는 심리적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걷기는 치유에서 한 걸음 더 나가 구도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구도자들은 사막과 숲 속을 걸으며 인생의 참된 의미와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냈습니다. 걷기는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걷다보면 분노나 질투심 같은 마음속의 쓰레기가 점차 빠져나갑니다. 걷다보면 내 마음은 나와 아무 관련 없이 그냥 거기에 있었던 길과 분수대, 하늘과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가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걷기는 자기를 비우고 버리면서 다른 사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프랑스의 시인 자크 레다가 이렇게 썼지요.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 저는 이 말에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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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들인 정대인 작가의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이 동시에 출판되었습니다. 서울을 걸은 아버지, 파리 에펠탑 주위를 걸은 아들, 두 권을 동시에 봐도 흥미로울 듯한데요. 아들 정대인 작가의 책은 어떻게 보셨나요?

 

처음 쓴 책이라서 심오한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지만 20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패기에 넘치는 책입니다. 에펠탑이라는 널리 알려진 건축물 뒤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잘 엮은 책이라서 마치 한 편의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잘 읽힙니다. 그러면서도 높은 건물을 짓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아들이 쓴 일기와 기행문 등의 글을 함께 읽으며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책을 통해 세대 간의 갈등과 단절의 시기를 지나 세대 간의 계승과 협력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느낌입니다.    

 

양쪽 도시에서 모두 이방인으로 사셨던 경험, 그리고 각 도시를 샅샅이 걸어본 사람의 경험에 비추어, 서울과 파리 두 도시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한 느낌을 줍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거기에 산이 있습니다. 파리는 평지에 펼쳐진 도시라서 밋밋한 느낌이 듭니다. 평지인 파리에서는 어디에서나 에펠탑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에는 변화가 계속되고 활기가 넘칩니다. 서울은 깨끗하고 살기에 편리하지만 분위기가 없고 쫓기는 마음이 듭니다. 파리는 오래되어 낡았고 다소 지저분하지만 세월의 이끼가 등나무처럼 붙어 있어 걷다보면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파리가 마음 내키는 대로 걷고 싶은 도시라면 서울은 아직은 마지못해 걸어야 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울도 점차 걷고 싶은 도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파리, 프로방스에 이어 서울을 걸으셨습니다. 앞으로 정수복 작가님이 더 깊고 길게 걸어보고 싶은 도시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제가 가보았던 도시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남단 타스메니아 섬의 호바트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 그곳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느림의 가치를 깨달았고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 한적한 거리와 부둣가 그리고 완만한 언덕길을 걷고 싶습니다. 또 도쿄의 골목길을 걷고 싶기도 하고 하노이의 호숫가나 오래된 시장 골목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낭트나 디종 같은 작은 규모의 도시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예술로서의 사회학, 문학과 인문학과 사회학이 접목된 독특한 글쓰기 형식을 실험하시는 것도 돋보입니다. 앞으로 사회학자로서, 작가로서 어떤 책을 집필하실 계획인지 듣고 싶습니다. 
 
파리 체류시절 2002년에서 2004년까지 쓴 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일기를 쓴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곧 ‘파리 일기’를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여러 번 가보아서 잘 아는 ‘스위스의 산골 마을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사회학자로서는 ‘공감의 메타사회학’(가제)을 탈고해서 올해 안으로 출간될 것입니다. 그에 이어서 ‘지식인의 사회학’과 ‘한국사회학의 역사’를 쓰고 있는데 언제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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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저 | 문학동네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겨웠던 서울의 풍경들이 파리에서 온 이방인 ‘정수복’의 눈에는 놀랍고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이 책은 그 명암을 특유의 문학적이면서도 냉철한 문장으로 그려낸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인 서울의 풍경화이다.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이 아닌,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건져올린 ‘정수복의 서울 33경’은, 서울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지만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현대인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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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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