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현정의 무엇이든 두근두근
<냄새를 보는 소녀> 원작, 그 이상의 이야기는?
SBS <냄새를 보는 소녀>
미스터리, 서스펜스, 로맨틱, 코메디 이 각각의 장르를 한데 버무리기 위해 영리한 노력을 한 드라마일까 하는 물음표를 아직까지 지우지 못했다.
원작의 매력이 재현될까?
코너명이 ‘무엇이든 두근두근’이긴 하지만 나의 개인적 취향은 로맨스보다 범죄수사물에 있다. 즐겨보는 미드나 일드의 라인업을 살펴볼 때에도 1순위는 어떤 수사물이나 탐정물이다. 수사도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관계가 형성되기에 범죄수사 시리즈에도 연애란 빠지지는 않고 등장한다. 캐릭터가 잘 잡힌 등장인물들이 수사과정에서 대립하거나 협력하고 각자 사건에 열정을 다하는 사이에게 미묘하게 감정이 싹튼다. 이야기 전개 전면에 연애 사건을 드러내고 다루진 않더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대사 하나에서 서로에 대한 지지와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기승전결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잠깐 흘러나오는 그런 것들에서 짜릿함과 두근거림을 느낀다.
덧붙여 내게 범죄수사물이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은 기상천외한 살해수법이 나오거나 잔인한 사건들이 나열될 때 혹은 뛰어난 수사능력이나 관찰력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낼 때가 아니다. 인의라는 도리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잘못된 선택이 이끄는 최악의 결말을 보여주거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아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나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합리화적인 인간의 태도를 들여다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냄새를 보는 소녀>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쫄깃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웹툰에서 다루고 있는 범죄의 스케일도 흥미롭지만 범죄와 범인 유형들이 한국 사회의 병폐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냄새를 보게 된 소녀의 인과과정도 납득이 될 수 있게 설명이 되고, 그 능력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범죄조직과의 관계도 드러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불안과 긴장감을 팽팽하게 안겨준다. 이런 근사한 이야기를 박유천과 신세경의 연기로 재현되다니… 그런 기대와 설렘을 안고 방영일만을 기다렸다.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
드라마의 시작은 긴장감 넘쳤다. 게다가 동명의 여고생이 같은 날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바람에 한국식으로는 '재수가 없어서' 미국 범죄수사물에서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Wrong time, wrong place)' 범인이 목격자라고 생각했던 소녀가 아닌 다른 소녀가 살해된다. 이러한 비극적이고도 운명적인 얽힘이 비록 원작과는 다른 전개이긴 하지만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여고생이 살해된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증인보호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오초림(신세경 분)과 그 사건으로 동생을 잃고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이 된 최무각(박유천 분)이 우연히 사건 수사를 위해 얽히게 된다.
문제는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은 범인에 대한 단서랄 게 없을 정도로 대범하고 잔혹하게 전개되는데 이 드라마에서 코메디 장르를 구현하기 위해 심어놓은 몇 가지 장치, 경찰서 강력계장 강혁(이원종 분)의 허당끼는 수사물로의 진지한 몰입에 종종 방해가 되었다. 한창 몰입해 있을 때 오초림이 개그맨 지망생임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 사람들이 등장하거나 최무각과 만담 콤비가 되는 등의 전개가 박장대소하게 웃긴다거나 지나친 긴장을 해소해주기 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 왜 흐름을 끊는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박유천과 신세경의 다양한 연기를 볼 수 있고 코믹함도 그 둘에게는 귀엽게 잘 어울리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좋은 장치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로맨스를 구현하기 위해 통각상실과 메마른 감정으로 로봇 같은 최무각이 의도치 않게 오초림과 스킨십을 한다거나 하는 장면에서 달콤한 BGM을 흘리며 화면을 느리게 돌리는데 그 순간들이 뜬금없음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다 각자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과거의 일을 겪었고 오초림은 심지어 무슨 일을 당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있으며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그게 드러날 경우 사람들에게 ‘괴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늘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최무각 역시 과거의 일을 늘 짊어지고 괴로워하는데 그 둘 사이에 로맨스가 생기려면 술에 취한 오초림이 최무각의 어깨에 기댈 때가 아니라 좀 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을 때에 감정선이 생기는 것이 납득되지 않을까 싶었다. (비주얼만 놓고 본다면 둘 다 첫 눈에 반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너무 많은 장르를 한 번에 담으려는 과욕?
원작 웹툰에서 차용한 것은 무후각증에 걸린 소녀가 냄새를 시각으로 본다는 것뿐이었다. 웹툰에서 냄새를 시각화한 기호들이 드라마에서 그래픽화되어 입체적으로 펼쳐지긴 하지만 원작팬들에겐 놀랄만한 것은 아니었다. 웹툰에서 냄새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앙증맞게 기호화했다라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원작을 즐겼던 팬들은 아마도 이야기의 무게감에서 아쉬움을 느낄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파 드라마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로맨틱 코메디나 신파적 요소를 담아내지 않으면 불안한 걸까? 그럼에도 미스터리, 서스펜스, 로맨틱, 코메디 이 각각의 장르를 한데 버무리기 위해 얼마나 영리한 노력을 한 것일까 하는 물음표를 아직까지 지우지 못했다. 1,2화에서 부족한 부분은 극이 진행되면서 개선되길 바라며 3,4화를 참고 보는데 정신줄을 놓고 두근두근거리기엔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드라마였다. 도리어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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