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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택시타기

김연수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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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부산의 택시 기사는 서울에 비해 평균 연령이 꽤 높은 것 같다. 옆에 앉은 손님이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연세 많은 부산의 택시 기사라면 뭔가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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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택시타기

 

언젠가 부산의 한 서점에서 강연회가 끝난 뒤,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작가님은 어떻게 그렇게 서울말을 잘하세요?” 한 번이라도 나와 대화해본 사람이라면 대단한 농담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진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거긴 부산이니까. 내가 부산에서 서울말을 그렇게 잘하는 까닭은 거기 사람들이 부산말을 진짜 잘하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된다. 그래서인지 부산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은 하나같이 “손님은 어떻게 그렇게 서울말을 잘하세요?”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그들은 단번에 내가 외지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부산의 택시 기사는 서울에 비해 평균 연령이 꽤 높은 것 같다. 옆에 앉은 손님이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연세 많은 부산의 택시 기사라면 뭔가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거대한 해운대 아이파크에 감탄을내뱉을 때 그들은 백이면 백, 그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교보문고 센텀시티점에서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들었다. 그 기사 말에 따르면, ‘부산 놈들은 멍청해서 공장을 다 빼앗기고 그 자리에 땅만 파고 있는데, 그렇게 지하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다가 결국에는 지구의 뜨거운 핵을 만나 불타 죽고야 말 것’이란다.


그에 버금가는 황당한 이야기는 남자 일행 몇 명과 함께 타고 가던 택시에서 들었다. 어쩌다가 부산의 밤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만히 듣던 기사가 해운대니 광안리니 그런 곳에 가서 돈 쓰는 건 외지인이나 하는 바보짓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귀가 솔깃해진 우리가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연산로터리라고 했다. 연산로터리의 술집에 가면 까만 비닐봉지에 맥주 몇 병을 넣어 건네줄 텐데 그게 있으면 아가씨랑 둘이 술 마시러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다.


술집 얘기가 나왔으니 식당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에 사는 소설가 김영하에게 서울에선 먹기 힘든 생우럭매운탕을 맛볼 수 있다는 식당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태종대에서 택시를 타고 그 식당 이름을 말했더니 기사는 외지인이 말하는 맛집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한 듯한 얼굴로 변했다. 위치 확인 차 식당에 전화해서 그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주자 사투리 몇 마디가 오가더니 전화를 끊었다. “다음부터 그 집에 갈 일이 있으면 부평시장 솔로몬저축은행으로 가달라고 하이소.” 그가 말했다. 부산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내가 감탄하자 그는 금방 자존심을 되찾았고, 가이드 투어가 시작됐다.


“영도다리를 넘어가면 거기가 바로 부산의 명동이고, 그 옆은 충무로다. 서울하고 똑같다. 쉽게 생각해라. 남포동의 건물이 허름해 보여도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갑부가 수두룩하다. 씨앗호떡은 국제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먹는 게 맛있다. 간혹 속초 씨앗호떡이 원조라고 매체에 나오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 다 속여도 나 같은 사람은 못 속인다.”


그는 부산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국밥집도 알고 있었다. 그 집은 내가 가려던 식당에서 가깝다고 했다. 텔레비전에도 안 나오고 낮이면 아는 사람만 예배를 드리듯 조용히 모여서 먹고 간다는데, 그런 집이 진짜 맛집이지. 하지만 이름이 뭐더라?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그는 식당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돼지국밥 맛도 모르는 외지인이 와서 북적댈까봐 일부러 안 가르쳐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어쨌거나 부평시장이라는 곳에 나를 내려놓고 그는 떠났다. 그런데 도대체 솔로몬저축은행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고.


부산의 택시 기사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말이 많았던 건 아니다. 한 번은 부산역에 내려 강연장이 있는 해운대 송정까지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하철이 느렸다. 하는 수 없이 중간에 내려 택시를 잡아탔는데, 기사는 나이가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연로해서인지 말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차, 알고 보니 카레이서 수준의 운전에 몰입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각하지 않고 강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산 운전계는 참으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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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부산에서 나는 왜 그렇게 택시를 많이 탔을까? 그 이유도 부산의 택시 기사에게서 들었다. 요즘 부산의 택시업계에도 외지 출신 기사가 많아졌는지 토박이임을 강조하는 분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분은 진짜 토박이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어렸을 때는 아이파크가 서 있던 곳이 바다였다는 사실로 그 건물의 허망함을 표현했으니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산에서 택시가 편한 이유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한 국회의원 때문에 휘어졌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 말 역시 내가 확인해보진 않았다.

 

김연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쉬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는 부지런한 소설가다. 그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를 통해 꼭꼭 숨겨두었던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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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3월 [2015]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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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3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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