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장난감 수집가 손원경
『더 토이북』 손원경
‘거의 모든 장난감 이야기’라는 부제는 다소 겸손하다. 『더 토이북』은 모든 장난감 이야기를 다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다루는 소재가 넓다. 더 대단한 점은 책에 실린 사진을 저자가 직접 찍었다는 사실이다.
『더 토이북』 을 펼쳤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진이었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이 책이 다루는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을 사진만으로 알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책에 실린 사진이 손원경 저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어떻게 그 많은 장난감을 구할 수 있었을까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손원경 저자는 자타 공인 한국 최고의 장난감 수집가다.
몇 점의 장난감을 소장해 봤냐는 질문에 “40만 점인지 50만 점인지 정확히 헤아려 본 적 없어 모르겠다”라고 답할 정도로 그는 수집광이다. 얼핏 생각해도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쓴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테지만 그에게 장난감 수집은 화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성스러운 취미다. 이런 그가 장난감 사전이라 할 만한 『더 토이북』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
『더 토이북』은 부제인 ‘거의 모든 장난감 이야기’가 말해주듯, 장난감에 관한 책이다. 장난감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각각 장난감의 탄생과 성장을 다뤘다. 장난감의 역사란 곧 산업사이자 경제사, 문화사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으면 19세기부터 21세기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도 생긴다. 중구 정동 경향아트홀에 최근 개관한 토이키노에서 손원경 저자를 만났다.
장난감 역사는 경제사이자 문화사
네. 토이키노 준비와 광주, 마산 전시까지 겹치면서 4개월 정도 집에 못 들어갔어요. 2014년에 했던 전시만 10개가 넘었으니, 정말 바빴죠.
그렇게 바쁜 와중에 책까지 쓰셨는데요.
원래는 에세이를 쓰다가, 에세이보다는 장난감을 설명하는 책이 먼저 나오는 게 순서일 것 같았어요. 항상 메모를 해서 책 쓸 준비는 되어 있었죠. 책에 실은 사진은 2004년에서 4년 정도 많이 찍어놨는데, 그 때 찍은 게 많죠. 『토이북』은 다양한 장난감을 소개하면서도 사진이 많으니 그림책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책이에요.
장난감 교과서, 참고서 같은 느낌도 들던데요.
너무 낯 간지러워서 감히 참고서라고 하지는 못하겠고요. 이쪽에도 숨은 고수가 많거든요. 장난감이 아직은 낯선 사람들에게 교두보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산업 측면에서 접근했으니 20세기 경제사 같은 성격도 있고요.
평소에 알던 내용이지만 책 쓰시면서 자료를 다시 보셨을 것 같은데요. 혹시 자료를 보시다 토이산업에 관해서 놀라웠던 점이 있나요?
많죠. 대표적인 걸 하나만 꼽는다면, 초반에 장난감 산업이 태동할 때 시작은 대부분 가내 수공업이었습니다. 레고 창립자도 마찬가지고요. 목수, 약재상, 삽화가 등 중소상인에서 시작해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과정이 신기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캐릭터 산업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주도했잖아요. 그런 면에서 장난감의 역사는 앞서도 말씀하셨듯 경제사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밖에 장난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장난감의 역사는 20세기 문화사죠. 18세기부터 태동한 근대 미술, 회화, 공학이 20세기에 결실을 맺는 게 장난감 산업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은 20세기의 총아이자 21세기 미래 산업이죠.
키덜트 문화는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잉여, 퇴행 이런 부정적인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잖아요.
잉여는 오히려 다른 제품이 많지 않을까요? 잉여에는 과다 생산이라는 뜻이 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요. 퇴행은 어른이 아기처럼 행동하는 것인데 키덜트는 그렇지는 않아요. 어른이 숨겨 놓았던 어린 자아를 끄집어내는 거죠. 긍정적이라고 봐요. 성숙한 어른이 어린 자아를 찾는다는 데는 의미가 있어요. 어른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동심의 회복이죠.
손원경 저자의 소장품을 전시한 토이키노
중학교 때부터 모으던 장난감이 50만 점까지
장난감 수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보통 그 또래는 무선조절 자동차, 프라모델 이런 거에 끌리는데 저는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본 고무 인형을 보고 1주일을 전전긍긍했어요. 갖고 싶어서요. 처음 산 인형이 가필드였죠. 그렇게 해서 모았어요. 조부님이 엄청난 컬렉터여서 어릴 때부터 사서 모으는 걸 숭고한 취미로 생각했습니다.
장난감은 갖고 놀기도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편이에요?
갖고 놀기보다는 디스플레이 해 놓고 감상해요. 처음에는 책상 위에 놓다가, 책장 하나가 가득 차고 나중에는 방이 차고, 그렇게 됐죠.
수많은 장난감을 보다 보면 직접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 텐데요.
네, 지금도 캐릭터 만들려고 계획 중이에요. ‘시어러’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serious에서 나왔고, 한국말로는 ‘시러’랑 비슷해요. 보통 아이들에게는 ‘예, 좋아’를 강요하지만 저는 ‘싫어’라는 말이 좋더라고요. 이 캐릭터에 여러 가지 옷을 입히는 그런 걸 개발 중입니다.
장난감 수집 분야에서 한국 최고잖아요. 장난감 박물관도 최초로 만들었고요. 지금도 꾸준히 수집을 하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수집하시나요?
다 제 취향이에요. 제가 재밌게 봤던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중심으로 모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수집 목록이 세계 전체죠. 장난감 말고도 책, 음반 등도 많이 모아요. 책도 다양하게 읽어요. 인문사회도 보고 동화책도 많이 봐요. 장난감도 결국 인문사회로 이어지는데요. 최근에는 『도시의 역사』를 재밌게 봤어요. 인문사회가 없으면 애니메이션도 없어요. 애니메이션에 인문사회적 통찰력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지죠.
40~50만 점에서 지금은 20만 점으로 줄였는데 아쉽진 않았나요?
40만 점인지 50만 점인지 정확히 세어보진 않아서 수치는 모르겠지만, 아쉽지는 않았어요. 레고,직소퍼즐을 많이 정리했어요. 나이 들어서 조립하고 놀려고 했는데,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바쁠 것 같아요. 시간, 물리적 한계 때문에 수집 범위를 좁혔어요.
수집을 많이 하다 보면 주변에서 달라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 같아요.
안 줘요. 제가 필요 없을 때 팔 때는 있어도. (웃음)
딱 한 점만 남긴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시겠어요?
진짜 힘드네요. 한 점만 남긴다면, 아예 한 점도 안 남길래요. 다 처분하고 새로 모으기 시작하겠죠.
단순한 수집가가 아닌 문화 레시피어
삼청동에서 7년, 파주 헤이리에서도 장난감 박물관을 운영하셨고 지금은 정동에 토이키노를 개관하셨는데요. 수많은 전시를 하면서 도난을 당했다든가 하는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순회 전시할 때는 도난, 분실이 없을 수가 없어요. 이사하면서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이건 어쩔 수 없죠. 제일 아쉬운 점은 제 건물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작게라도 있으면 옮겨다닐 필요가 없는데 건물이 없으니 계속 임대를 한다거나 동업을 해야 하죠.
전국 전시도 많이 하시잖아요. 지방에도 저변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제일 먼저 헤보고 싶은 지역이 있었나요?
제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라서 박물관이 진도에 있어요. 진도에는 진돗개 박물관도 있고요. 몇 번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는데, 전시 쪽으로 좀 미흡한 거 같아요. 진돗개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싶고, 박물관을 크게 해서 관광객이 몰려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진도에는 먹거리도 많고, 삼별초라든지 울들목 등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거든요. 진도 아리랑도 있고 유명한 예술가 집안도 많고요. 그런데 지금은 인구 수가 줄고, 관광하려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제가 장난감이라는 미끼로 진도에 활기를 좀 불어넣으면 어떨까 생각은 해 봤어요.
전시를 위해서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잖아요.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검색 많이 하죠. 외서도 많이 보고요. 서점 가면 제일 먼저 가는 코너가 외서쪽이거든요. 그런데 전시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예산 때문에 좌우가 많이 되죠.
토이키노를 보니 한국의 캐릭터는 많지 않은데요.
현실이 전시에도 반영된 거예요. 그쪽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이 많지만 아직 한국 토이 산업은 미약해요. 한국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많이 나왔어요. 라바라든가 타요, 또봇, 카봇이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문제는 이런 캐릭터가 어덜트의 사랑을 받느냐에요. 어른의 사랑을 못 받으면 캐릭터가 아니라 토이일 뿐이거든요. 발전하고 있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장난감이 많은 상황이죠. 어른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외국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게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장난감 덕택에 결혼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장난감 박물관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소개 받아 아내를 만났고요. 집사람은 장난감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아내는 제가 장난감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책 쓰고 사진 작업하는 일을 독려해줘요.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콘텐츠로 용광로에 녹여내는 일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선생님의 동창회 풍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이 외제차에 비싼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선생님은 백팩 메고 장난감을 가득 사서 들어갔다고요. 선생님의 가치관을 말씀해주신다면?
대리석이 깔려 있는 고층 건물에서 통유리 너머로 강남 한복판을 바라보며 멋진 벽걸이 TV를 바라보는 삶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 삶은 잠깐 여행가서 하루 정도 누리면 돼요. 삶의 나머지는 사서 모으고, 만들고 글 쓰고 살아야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게는 뭔가를 만드는 게 땅 사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장난감도 많이 모으고, 전시도 하지만 책을 많이 쓰려고 해요. 장난감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이번 책이 정보 전달이 위주였다면 나올 책은 정말 재밌을 거예요. 그리고 에세이를 소개하는 책, 동화책을 소개하는 책, 이런 책도 쓰고 싶고요. 바람이 있다면 '손원경의 컬렉션 시리즈'를 계속 써내려가는 거예요. 가능하다면 『토이북』도 재쇄를 찍을 때 ‘손원경의 컬렉션 시리즈 1’을 붙이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음반, 소설, 동화, 영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생각하는 제 직업은 문화 레시피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더 토이북 : 거의 모든 장난감 이야기손원경 저 | 매일경제신문사
저자 손원경은 국내 최대의 장난감 수집가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하여 마흔 중반까지 수집한 장난감은 현재 소장하고 있는 종수만 20만여 점에 이른다. 장난감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정은 토이키노(TOYKINO) 장난감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장난감 참고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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