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는 에너지를 촉진하는 노동요
metallica 「Whiskey in the jar」
그때 듣던 곡 중에서 <Whiskey in the jar>를 오늘의 주제곡으로 꼽는다. 슬슬 늙어버릴 줄 알았던 메탈리카가 1998년에 낸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이사를 때렸다. 굉장히 저렴한 반면 놀라울 만큼 상태가 안 좋은 집을 구했다. 싸고 훌륭한 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이사할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싸고 엉망인 집을 리폼해서 잘 버텨보는 걸로 선택했다.
이삿짐을 올린 직후부터 나는 정리할 겨를도 없이 집을 꾸며나갔다. 사람을 쓰면 돈이 드니까 페인트 몇 통 사서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 작업이었다. 친구들이 인테리어로 밥벌이를 하지만 그들도 먹고살기 빡세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암만 작가라도 친구들이 홍보 문구를 부탁했을 때 마감에 쫓겨 도움이 안 됐던 것과 마찬가지니 할 말 없었다.
서울 접근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집을 원룸에서 투룸으로 바꿨더니 넓어서 공사기간이 질질 끌렸다. 이사 오기 전 이 칼럼을 썼고 공사 끝난 뒤 이 칼럼을 다시 쓰니 2주를 잡아먹힌 셈이다. 더구나 집이 워낙 낡아서 손볼 곳이 많았다. 내 경험치와 기술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재료나 장비를 살 돈은 그보다 더 엽기적으로 부족했지만 핑크색이 난무하는 공간에 남자 혼자 살기는 너무 민망해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일하면서 나는 내내 중얼거렸다. 17년밖에 안 된 빌라가 어떻게 이만큼 낡을 수 있지? 아아 더구나 전에 살던 사람은 얼마나 삶이 각박했거나 방만했던 것인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내 17년전 과거를 떠올렸다. 집을 탓할 게 아니었다. 17년 전의 팽팽하고 총명하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대단히 각박하고 방만한 상태다. 특히 피부가 그렇다ㅠㅠ 그땐 열 번 웃기면 세 번 이상 성공했는데 지금은 한 번도 웃기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토록 형편없는 몰락이 어디 있다고 집이 좀 낡은 걸 탓하랴.
나는 곰팡이에 점령당한 베란다를 탈환하고, 미친 핑크색 문을 칠하고 때가 덕지덕지 탄 벽을 하얗게 만들며 지난 17년간 늙어간 내 나이를 덮고 싶다는 심정을 대입했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동기 가지고는 일할 당위성과 에너지가 쉽게 부여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지쳤고, 포기하고 싶었다.
아니 무슨 내 것도 아닌 월세집을 꾸미고 앉았지? 기술이나 감각 없이 일하다보니 예뻐지지도 않는데 회의감이 들었다. 가급적 쪽팔리지 않는 공간에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명제가 나를 채찍질했지만 작업 속도는 더뎠다.
결국 썩어서 뒤틀린 문짝을 방에 달다 아귀가 안 맞아 끝내 못 달고 주저앉아버렸을 때, 아 여기까지인가 느끼는 절망적인 순간이 왔다. 그때였다. 나는 음악이라는 영롱한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왜 빙다리처럼 침묵 속에서 일했지? 음악이 사람의 노동 에너지를 뻥튀기 시켜주는 걸 알면서 깜빡했다. 그냥 걸을 때보다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 좀 더 오래 걸을 수 있지 않은가. 음악은 언제나 무언가를 견디게 해 주지 않았던가.
문제는 선곡이었다. 자, 어떤 음악이 일할 때 듣기 좋을까 고르다 음악을 너무 기능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미안해 우선 최근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작업했다. 그런데 요즘 좀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들만 좋아해서 그런지 작업속도가 안 났다. 일이고 나발이고 차 마시면서 쉬고 싶어지기만 했다. 인테리어 노가다는 크리스 가르노나 다니엘라 안드레아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리듬감 있는 곡을 듣지롱 싶어 좋아하는 2NE1을 틀어보았다. 그제야 작업 속도가 났다. 2NE1의 좋아하는 곡을 모두 듣자 방 하나를 말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좋았는데 곧 한계가 왔다. 하루하루 공사만 하며 대충 먹고 쓰러져 자는 일과를 반복하다 보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몸살기가 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 끝내고 앓아야하지 않겠니? 몸을 다독였지만 몸은 자꾸만 배 째든가 하며 시위했다. 어릴 때의 무구한 체력이 그리웠다. 동시에 어릴 때 미친 듯 듣던 시끄러운 음악이 확 땡겼다. 지금 다시 들으면 힘과 스피드만 내세우거나, 왜 이렇게 부산스럽고 화가 나 있지? 하는 느낌이 드는 헤비메탈 넘버들이었다. 그러나 피로를 물리치고 체력을 뻥튀기해줄 음악으로 딱 적절할 것 같았다.
그렇게 헤비메탈의 제왕 메탈리카(METALLICA)의 플레이 리스트를 틀어놨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뭐 몸이 뿌아아 살아나면서 작업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젖 먹던 힘이 아니라 메탈리카 듣던 팬심이 다시 넘쳐 팽팽했다. 페인트칠이 마르길 기다리는 동안 쉬기는커녕 헤드뱅을 하고 슬램댄스를 출 정도였다. 물리적인 에너지 법칙이 뭔지 몰라도 무언가를 무구하게 좋아했던 심정적 에너지가 몸을 활발히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틀림없었다.
힘 있고 시끄러운 곡이 요즘의 트랜드는 아니지만 메탈리카의 빠워풀한 음악을 노동요로 삼은 초강수 끝에 나는 끝내 일을 끝내버렸다. (아... 라임이 어설프다)
그때 듣던 곡 중에서 <Whiskey in the jar>를 오늘의 주제곡으로 꼽는다. 슬슬 늙어버릴 줄 알았던 메탈리카가 1998년에 낸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내가 이사 온 집 준공연도와 같다. 그들은 젊었을 때만큼의 에너지와 광기와 음악성과 시끄러움이 건재함을 다시 보여주었다. 헤비메탈 인기가 저물고 그런 일탈이 시들해진 시대에도 그들은 여전히 힘 있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 것이었다. 거기엔 막강한 에너지가 있었다.
원곡인 아일랜드 민요를 씬 리지(THIN LIZZY)가 록넘버로 커버했고 그걸 다시 리메이크한 곡인데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그들이 어떤 하우스 파티에서 연주를 하며 집 하나를 작살내는 내용이다. 그런 파괴적인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집을 꾸미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재미있었다. (* 이 영상은 별 거 없지만 어째선지 성인만 볼 수 있다)
파괴와 일탈의 욕구는 재건과 복귀에 대한 열정과 비슷한 것일까. 만약 또 집을 셀프 인테리어 해야 한다면 우아한 음악보다는 가장 힘 있고 개판이고 폭발적인 음악들의 리스트부터 먼저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무튼 집은 이렇게 변했다.
별로 감각적이지 않지만 온통 싸구려 일색이었던 노동력, 페인트, 도구, 기술, 감각, 조명기구 등등으로 이 정도라도 만든 건 순전히 메탈리카 형님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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