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 베이커리 마약을 탄 빵, 60년 대구 빵집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냥 지나치기 드물지만, 대구에서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갓 구워내 뜨겁고 동그란 빵이란, 여름철 그 어디 부럽지 않게 열정적인 대구를 닮은 맛이 아닐까.
사람들은 맛있어서 도저히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음식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겨자 소스를 콕콕 찍어 코끝 찡해지도록 먹는 맛이,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가 뒤돌아서면 곧 생각나고 이내 또 먹고 싶어지는 광장시장의 ‘마약 김밥’이 그렇다. 수성못 <부바스>의 ‘마약 옥수수’는 옥수수에 막대기를 끼워 돌돌 굽고 치즈 가루를 가득 뿌려 마무리한 것을 나이프로 슥슥 잘라 레몬을 뿌려 먹는 맛이 중독적이라 주말이면 주차할 곳 없이 줄을 선다.
이 빵집의 ‘마약빵’도 원래 이름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통 옥수수’다. 그 모양도 둥글넓적한 것이 그리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이 빵을 먹겠다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마다하지 않고 길게 늘어선 줄이 끊일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이 빵에 무시무시한 ‘마약’이란 단어까지 붙여 부를 수밖에 없는 마성의 매력이 분명 한 빵집이다.
빵을 구워내기 무섭게 팔려 나간다. ‘불티나게’라는 말을 실감했다. 구워낸 철판이 채 식기도 전에 뜨끈뜨끈한 빵들이 기다리는 비닐봉지 속으로 연신 사라진다. 홈쇼핑 마감 찬스도 이것보다 더 긴장감 있지 못했다. 앞에서 모두 담아갈까 뒤에 선 사람들 절로 발이 동동거려진다. ‘마약빵’을 득템(!)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 걸음을 찾았다.
‘갓맛’ 마다할 사람 있을까. 갓 지은 것에는 특유의 구수한 내음이 있다. 솥에서 갓 나온 밥 한 공기, 방금 지져낸 부침개 한 판. 모두 좋지만 갓 구운 빵만큼 자극적인 것 또 있을까. 그 냄새 이기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호호 불어야 할 만큼 열기가 대단하다.
‘마약빵’은 속을 옥수수로 가득 채우고 옥수수 크림으로 한 번 더 덧발라 달콤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씹는 맛이 일품이다. 씹을 것 없이 부드럽게 호로록 넘어가는 ‘마약빵’이 무섭도록 중독적이다. 지나서는 길 다시 그 맛 떠올라 발걸음 머뭇거려지는, 그 이름 아깝지 않은 빵이다.
<삼송 베이커리>, 그 빵집에서 ‘마약빵’을 판다. 〈삼송 베이커리〉는 1957년 생긴,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오래된 역사의 빵집이다. 그 이름도, 그 자리도, 그 주인도 처음과는 달라졌지만 조금 달라진 이름과 옮겨진 자리와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주인 내외가 그 빵집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빵집에서 파는 빵의 종류란 한 손에 꼽힐 정도다. 종류를 대폭 줄인 대신 그 맛을 지켜내기로 한 것이다.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운 ‘구운 고로케’는 속 재료가 풍성하고 기름 맛 없이 담백해 잘 구운 야채 호빵처럼 느껴졌다. 느끼해 손이 덥석 가지 않는 것이 크로켓 아니던가. <삼송 베이커리>의 ‘구운 고로케’는 식사대용으로 먹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그 맛 담담하다.
집으로 가는 길, ‘찹쌀모찌’ 한 봉지를 더 골랐다. 여섯 개들이 ‘찹쌀모찌’가 제법 묵직하다. 달달한 카스텔라를 소복이 묻혀 만든 ‘찹쌀모찌’에 그 빵집 고소한 냄새가 깊다. 쫀득한 ‘찹쌀모찌’ 두어 개에 시장했던 배가 금세 누그러든다. 깊은 겨울 밤, 따뜻한 아랫목에 숨겨놓았다가 배 깔고 엎드려 야금야금 먹고 싶은 쫀득함이 고스란하다.
‘팥 소보로’가 좋다. 겉의 소보로는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삭한 맛이 한겨울 빙설처럼 사각거리고, 달콤한 팥소를 넣은 빵은 끝 맛까지 고소하다. 찹쌀이 갓 구운 피자 치즈처럼 쭉쭉 늘어나고, 팥을 더해 고소한 ‘크림치즈빵’은 또 하나의 별미다.
뜨거운 빵 한 덩이가 국밥처럼 후루룩 넘어간다. 언제든지 방금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삼송 베이커리>는 내게,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냥 지나치기 드물지만, 대구에서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갓 구워내 뜨겁고 동그란 빵이란, 여름철 그 어디 부럽지 않게 열정적인 대구를 닮은 맛이 아닐까. 그 빵집이 대구를 더 뜨겁게 한다.
A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95
T 053-254-4064 H 09:30-소진 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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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부산, 스무 살에 내려와 돌아서니 30대의 경상도 여자. 여전히 빵집과 카페, 디저트를 사랑하는 얼리 비지터. 2010~2012년 ‘차, 커피, 디저트’ 부분 네이버 파워 블로거. 『카페 부산』 저자. kisl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