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지우의 드라마, 당신의 이야기
<풍문으로 들었소> 갑(甲)의 가면을 깨는 재투성이 소녀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풍문으로 들었소>가 전제하는 변인은 매우 흥미롭다.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며, 그중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무수히 등장했던 신데렐라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순조롭게 왕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에서 재벌이라는 이름은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의 목표, 무지개 빛 색채의 왕성처럼 묘사되곤 했다. 드높은 성벽으로 무장한 채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입성에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미지의 요새. 고정관념과 신분의 차라는 벽이 높을수록 그를 뛰어넘은 뒤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라, 결혼과 출산이라는 정공법으로 그 일원이 되는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고전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근래, TV 드라마는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대중은 힘의 역학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로이득에 대해서도 예전과는 달리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대대로 이어지는 부와 권력의 세습, 그로 인한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과도 관계가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들은 점차 황궁 속 고귀한 성골이 아니라 탐욕과 이기를 드러내는 평범한 인간으로 변모했고, 재벌가 역시 부와 권력을 쫓는 인간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도 그렇다. 드라마는 아슬아슬하게 얼어붙은 그들의 우아함 위, 별안간 서봄(고아성)이라는 인물을 던져 그들의 얄팍한 유리가면을 깨부수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시쳇말로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의 위선과 가식을 냉소적 시선으로 묘사한다. 으리으리한 재벌집은 화사하고 보송보송한 색채는커녕 어둡고 침침한 무채색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섬세한 연출 속 점잔을 빼는 구성원들의 태도는 웃음을 부른다. 작품의 중심에 선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는 물론이거니와, 친구인 영라(백지연)나 재원(장호일), 소정(김호정) 등도 우아한 가면 아래 속물적 본성을 드러낸다. 연희는 아들 인상(이준)에게 재산이나 권력보다 지성과 자격을 물려줄 거라고 말하면서도 남몰래 무속인을 불러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이고, 친구들 앞에선 법리를 다루는 집안에서 어떻게 미신을 믿을 수 있냐며 발뺌을 한다. 남편인 정호 역시 다를 게 없다. 아들이 제 아이를 임신했다는 만삭의 소녀를 데리고 온 상황에서 가장 먼저 염려하는 것은 소문이다. 행여 입에 날까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도 거짓말로 구급대원을 돌려보내고, 애초에 봄을 며느리로 인정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한테 인도적 차원에서 선의를” 베푼다. “만에 하나 법적으로 모종의 인과관계가 성립됐을 경우에 대비”해 “물심양면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탄탄대로, 엘리트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아들의 앞길을 떡하니 가로막은 봄이 끔찍스러우면서도 법적으로 도의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랫사람을 시켜 출산을 돕기도 한다.
출처_ SBS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욕망에의 터부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황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정호와 연희는 선천적 욕구, 혹은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욕망은 추하고 하찮은 것 취급한다. 지성과 교양, 높은 식견과 빛나는 지혜만 좇는 양 하나같이 품위라는 가면을 쓰는 데 필사적이다. 계급사회가 아니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부적절하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우아함과 품위를 제일가치로 아는 귀족처럼 살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의아한 것도 잠시, 드라마는 슬쩍 그 까닭을 드러낸다. 우아함과 고상함, 소위 말하는 품위가 그들에겐 새로운 계급에의 증명, 블루블러드이기 때문이다. 돈도 명예도 이미 쥐고 태어났기에 대단한 것이 되지 못한다. 넘쳐 흐르는 것으로 자랑해 봐야 속물이라는 소리만 듣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들끓는 욕망을 뒤로 감추고 세련된 처신과 화술로 자신들의 태생적 고귀함을 강조하려 드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토록 우아한 가면 무도회 한가운데 서봄을 등장시킨다. 정희와 영호의 입장에선, 앞길 창창한 아들이 그저 풋사랑으로 지나갈 연애를 한대도 으악일 판에 심지어 봄이 애를 가져 이미 만삭이다. 게다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까무룩 뒤로 넘어가더니 대뜸 아이를 낳았단다. 장래 직업부터 결혼까지 완벽하게 인생 계획을 짜놓았건만 대뜸 아이가 붙었다는 것도 황당한데, 심지어 봄은 거칠 것 없는 성미다. 적당히 달래 떼어놓을 생각이었는데 제게 벌을 주는 거냐며 크게 잘못한 것은 알지만 아이는 자기가 보겠다 고집을 부린다. 수치심도 없냐는 질문에 제 수치심은 제가 이겨내겠다는 당돌한 대답에 연희는 드디어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고성을 지르고 만다.
반면 인성에게 봄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든 방아쇠다. 아버지의 완벽함과 어머니의 기품 사이에서 기침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살아온 그에게, 봄은 그 모든 것이 억압과 구속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존재다. 맑게 웃는 웃음소리도, 어물거리는 자신의 앞에서 대신 한강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강단도 하나하나 인상에겐 새로운 것 뿐이다. 아무리 집에서 고시공부를 핑계로 격리시키려고 해도 이미 인성의 인생에서 봄은 놀라운 균열을 일으킨 뒤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말에 저항해 본 적이 없건만 봄과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싶다. 봄은 존재 자체로 그들이 필사적으로 지켜왔던 품위의 가면을 쩍, 갈라놓는 것이다.
그럴 만하다. 당차고 야무진 봄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거니와, 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배우고 컸다. 아버지도 어린 딸을 임신시킨 상대를 두고서도 은근히 그의 배경이 좋길 바라고,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상이가 그런 집 자식이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아나운서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봄의 언니는 봄이 인상의 집에서 인권유린 수준의 모욕을 당하는 것을 알지만, 그 집 덕을 봐서라도 방송사에 들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인물이라고 소개된다. 봄과 그의 가족들은 정호와 연희에게 감히 상상치도 못한 유형의 사람들인 셈이다.
정호와 연희를 비롯한 기득권층에게 거침없이 분출되는 그들의 욕망은 저열하게 비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미 서봄이라는 인물로 고고한 그들의 가면을 깨부술 것임을 예고했다. 저열하다 비웃는 욕망과 똑닮은 것이 그들의 가면 아래 들끓고 있음을, 탄탄하게 깔아놓은 길에서 탈선한 기차가 어떤 폭주를 시작하는지도. 아닌 척 발을 뺐던 그들의 욕망이 백주에 드러날 때, 갑(甲)과 갑(甲)은 이전투구를 시작한다. 초반부터 그들의 위선과 가식을 비웃었던 드라마가 갑과 갑의 대결을 어떻게 그릴지 눈길이 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다. 적나라한 욕망 아래 발버둥 치는 인간군상이란 으레 비슷하지만, 우아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갑의 역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궁금하기 마련이니까.
<풍문으로 들었소>가 전제하는 변인은 매우 흥미롭다.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며, 그중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무수히 등장했던 신데렐라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순조롭게 왕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를 안고 장엄한 왕궁으로 입성한 재투성이 소녀의 수난기이며 나아가 그 때문에 혼란에 휩싸인 어리석은 왕족과 귀족들을 풍자하는 가면극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청해볼 만한 변주다. 동화이자 고전적 로맨스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역설이며 흥미로운 후일담이 될 터다. 게다가 깔끔하고 능숙한 터치로 기득권의 위선과 가식을 그리는 데 안판석-정성주만한 콤비는 드물다. 드라마는 커다란 배를 안고 위풍당당 재벌가에 입성한 재투성이 소녀, 서봄이 이미 태풍의 눈이 됐음을 유쾌한 솜씨로 설명했다. 당연히 여기서 끝나진 않을 터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필시 갑(甲)의 가면을 깨는 즐거운 신데렐라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관련 기사]
- <피노키오> 언론이 제 갈 길을 잃었을 때
- <킬미, 힐미> 그래도 아직은 차도현
- <하이드 지킬, 나> <킬미 힐미> 두 남자를 한 몸에 담아내는 궁극의 판타지
- <스파이> 한국식 첩보물의 흥미로운 예
- <트라이앵글> <빅맨>, 꼭 싸워서 이겨야 하나?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