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허은실
<이동진의 빨간책방>오프닝은 그날그날의 정보와 이슈를 소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매번 뭘 써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데, 마감 증후군이라고 닥치면 쓴다.
지난 2월 5일, 서울 합정동 빨간책방 카페에 자리한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 스튜디오에서는 평소와 달리 팟캐스트 녹음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열었던 이야기들을 다듬은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소소한 낭독회가 열린 것. ‘당신이 나를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작가이자 책의 저자인 허은실이 독자들과 감성의 주파수를 맞췄다.
이날, 가수 ‘시와’가 문을 열었다. ‘마시의 노래’가 소소한 낭독회의 오프닝으로 나왔다. 책 제목처럼 자신의 노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열린 마음을 드러내는 곡을 골랐다는 것이 시와의 설명. 이어 ‘겨울을 건너’라는 다음 노래에 이어 허은실 작가가 등장했다. 평소에도 시와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허 작가는 낭독회에 어울리는 음색과 가사가 생각해보니 자연스레 시와가 떠올랐다며 이날 초대 가수로 시와를 초청한 이유를 들었다. 유희경 시인(『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편집자)의 사회로 소소한 낭독회가 진행됐다.
시와는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를 읽고 전체적인 느낌이 어땠나?
시와 : 짧은 글의 연속인데, 한 꼭지 읽고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어렵더라. 한 꼭지를 읽고 소화시키지 않으면 얹힐 것 같았다. 속도를 느리게 읽을수록 좋은 책이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를 내 읽어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져서 소리 내서 읽게 되더라. 그 맛이 좋았다. 한 꼭지 읽을 때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도 했다.
허은실 : 내가 원하는 독법으로 읽어줬다(웃음). 화장실에 가서 읽으면 거사(?)에 도움이 될 것이니 독자들도 하루에 한 편, 혹은 천천히 곱씹으면서 자기 안에서 무엇이 우러나오는지 느끼면서 봐주면 좋겠다.
어떻게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동참하게 됐나?
3년 전쯤 일(라디오 작가)을 1년 정도 쉬고 있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책과 관련한 팟캐스트를 한다며 같이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더라. 그 전에 라디오에서 1년 정도 함께 한 경험이 있었고, 일을 다시 시작할 찰나에 제안이 와서 끌렸다. 다만 팟캐스트를 잘 모르고 관심이 없었는데, 이동진 작가는 나보다 더 모르더라(웃음). 그래도 해보자고 해서 하게 됐고, 지금까지 왔다. (이동진 작가가 허은실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는데...) 그건 아닐 거다. 마침 내가 놀고 있어서 그랬을 거다. 당시 1년 계약을 했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 중 기억에 남고 힘들었던 방송이 있었다면?
『위대한 개츠비』와 『백석 평전』 1부가 그랬었고, 힘들긴 매번 힘들다. 두꺼운 책이 나올 때 더욱 힘들다.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할 때도 힘들었다. 다른 게스트에 대해선 자료를 조사하거나 기본 원고를 주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객관화하기도 힘들잖나. 그래서 좀 힘들었다.
라디오와 팟캐스트의 차이가 있다면?
기본적인 프로세스나 청취자와 관계된 일이니 큰 차이는 없는데, 팟캐스트는 마음대로 방송을 할 수 있다. 라디오는 시간, 심의 등이 있는데, 팟캐스트는 마음껏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다만 게스트를 모시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이 있다면?
귀가 나쁘면 잘 듣게 된다(웃음). 내게 뭔가를 털어놓으려고 오는 사람이 많다. 어떨 때는 왜 나한테만 이러나 싶어서 힘들 때도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잘 듣는 편이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을 때 기쁨을 느끼는데, 최근 행복했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면?
지금 행복하다. 행복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지금이 좋으니까 행복한 느낌이 든다. 조금 더 전이라면 어제 술 마실 때(웃음)? 집에서 홀짝홀짝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 ‘나는 굳이 왜 행복해야하지?’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 같고, 고요한 상태가 내겐 행복한 순간이다. 이동진 평론가도 행복에 대해 부정적인데, 나와 세계관이 맞다. 이동진 평론가의 에세이를 읽으면 읽다가 안 보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이 비슷해서 책에 있는 것을 그대로 쓸 것 같아서 일부러 안 읽기도 한다.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다.
일단 밑줄 치고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읽는다. 특별히 내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면 접어놓거나 수첩에 옮긴다. 이게 왜 날 건드렸을까, 내가 왜 끌리고 있을까 등을 생각해본다. 답이 나올 때까지 생각해보고, 걸려 넘어지는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예민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어떤 구절을 수첩에 따로 적게 되는가?
정확한 문장과 표현일 때 밑줄을 친다. 일상의 결이 묻어있는 글을 좋아한다. 그런 것이 내 삶이나 생각 어딘가에 교집합처럼 맞물리는 부분이 있으면 정전기든 스파크가 일어난다.
좋아하는 국내외 작가가 있다면? 사랑하는 시인은 누구인가?
한국 작가 중에는 유희경, 외국 작가 중에는 파블로 네루다를 좋아한다. 정신적인 힘은 김수영 시인에게 영향을 받았고, 좋아한다. 처음 詩를 쓰게 된 것도 최승자 시인의 책 덕분이다. 백석 시인도 좋아한다. 예전에는 외우는 詩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감성적, 서정적이지만 내가 쓴 詩는 말랑함이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도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나도 모르는 채로 쓰는 경우가 많다(웃음). <이동진의 빨간책방>오프닝은 그날그날의 정보와 이슈를 소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매번 뭘 써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데, 마감 증후군이라고 닥치면 쓴다. 또 그동안 쟁여놓은 것을 보면서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쓴다. 단어를 갖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한다. 언어는 대상과 지시어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그렇게 약속을 해서 쓰고 있는 건데, 나는 그런 것을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양 우격다짐으로 여긴다. 단어를 갖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의미가 만들어진다. 기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받는 소스가 많다. 산책하거나 사람을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얻고 내 몸의 변화가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작은 것에서도 예민하게 뭔가를 포착할 수 있다.
소리 내서 읽기에 좋은 글을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래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체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쓰고 나서 읽어보는 것이다. 숨이 딸리는 부분이 없는지, 뭉쳐진 부분이 없는지 읽어보면 안다. 자기 호흡에 맞춰 읽으면서 감이 생긴다. 시 쓰기를 동시에 하다 보니 읽을 때의 느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소리 내서 읽진 않아도 속으로 흥얼거리면서 글을 주로 쓴다. 일반인들이 리듬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詩를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어 ‘소소한 낭독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허은실 작가의 낭독이 공간을 채웠다.
“(중략) 올해는 당신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요.
우리는 또 이렇게 시간이라는 강물 위를
흔들리면서 다만
흘러갑니다.” -흔적들, 우리를 흔드는(78~79쪽)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서러운 일입니다.
목소리는 영혼의 영역이기 때문일 겁니다. (중략)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평화로운 음악입니다.” - 목소리, 목소리(94~95쪽)
“(중략) 하지만 당신이라는 책을 해독하려는
그 헛된 일에 사로잡혀서
우리는 또, 가능한 모든 사전을 펼칩니다.
인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망한 노력에서 태어나는 것이겠지요.”_사랑, 당신을 번역하려는 노력(57~58쪽).
KBS FM 프로그램 ‘더 가까이 고민정입니다’를 진행하는 고민정 아나운서가 “낭독이 무척 좋았다”며 또 다른 게스트로 참석했다. 허 작가와 고 아나운서의 인연은 한 매체에서 시인을 남편으로 둔 아내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후 두 사람 공통의 지인의 아이 돌잔치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이어가게 됐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서로의 집을 오가는 사이가 됐다는 것.
두 사람이 라디오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라디오의 매력을 꼽아준다면?
고민정 : 입사 3년차에 라디오 DJ를 하다가 유학 등으로 그만뒀었다. 돌아와서 3년 정도 쉬다가 다시 하게 됐는데 TV보다 라디오에 대한 갈망이 더 강했다. 라디오는 내게 남편 같은 존재다. 되게 좋아서 결혼했는데, 살다보면 지겹고, 그렇다고 헤어질 수는 없고(웃음).
허은실 : 라디오를 한지 15년정도 됐다. 나는 라디오가 좋다. TV보다 따뜻하고 청취자와 1대1로 얘기하는 느낌이어서 좋다. 보여주지 않고 소리를 내어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것이 라디오의 매력인 것 같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고민정 : 책을 읽으면서 라디오에서 이런 오프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했다. 우리 라디오 작가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선물했다(웃음). 이 정도의 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허 작가가 앞으로 어떤 책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허 작가가 내는 책이라면 돈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이고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오프닝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허은실 :함께 한 라디오 MC들이 대부분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나로서는 빡세게 훈련한 셈이었다. 최소한 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고, 함량 미달이면 읽기 싫어할 것 아니겠나. 더구나 오프닝은 첫인상이니 작가로서는 가장 힘을 주는 부분이다. 돌이켜보면 오프닝 때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방송은 데드라인이 있어서 시간을 맞춰야 하니 뭐라도 써야한다. 그래서 쉽지 않은데, 오프닝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예전에도 오프닝 멘트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詩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아서 책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하면서는 좀 더 문학적인 것을 발휘해도 되니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낭독회는 계속 이어졌다. 고민정 아나운서가 ‘기적은 그러니까,’(29~30쪽)를 읊조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란다.”
어린왕자가 그랬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면서요.
여러분은 어떤 기적, 어떤 마법 같은 일을 기다리고 계신가요.(중략)”
독자의 낭독도 빠지지 않았다.
“(중략) 당신은,
당신의 당신을 무어라고 부릅니까.
저는,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라는 말
참
…‥,” -당신, 이라는 말(34~35쪽)
“(중략) 책을 쓰는 것은 실은 그런 행위입니다.
수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낯선 이의 안부를 물어주는 일.
그리고 독서라는 건 그 편지를 읽는 일일 테고요.
어쩌면
우린
오늘
같은 편지를 읽게 되겠군요.” -어쩌면 오늘 우리는 편지를(196~197쪽)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허은실 저 | 예담
인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오프닝 에세이들을 묶은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시그널 음악과 함께, 이동진 작가가 읽어준 이 글들은 청취자들의 감성의 주파수를 이동진의 빨간책방과 맞춰주며 본편의 방송 내용만큼이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다. 10년차 베테랑 라디오 작가이자 시인인 저자 허은실은 이 글들에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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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하고 다정한 문장들이 전해주는 온기 100회 동안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문을 열어온 오프닝 에세이 모음집 인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오프닝 에세이들을 묶은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예담, 2014)이 출간되었다. 시그널 음악과 함께, 이동진 작가가 읽어준 이 글들은 청취자들의 감성의 주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