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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봤자 소용없고

전인권 - 걱정 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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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음악이 없는 삶은 되게 지루하다. 너무 평면적이라 그럴 것이다. 길은 길이고, 운전은 그냥 이동이고 카페는 목을 축이는 데고 로또 판매점은 걸리지 않을 종이쪼가리를 파는 곳이며 식사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새해가 시작되고 몇 주가 훌렁 지나버렸다. 그동안 새로 시작한 건 없고 걱정만 늘었다. 작년엔 매너리즘에 빠져 못 웃겼는데 올해는 어떻게 웃길까, 어우 올해는 또 뭘 해서 먹고 사나, 과연 다시 연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금연을 해버리면 확 웃길까? 왜 나는 웃기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사는 걸까 등등 참으로 중대하고 막중한 고뇌들이 머리통을 무겁게 만들었다.

 

 문득 전인권 아저씨의 폭탄파마 머리가 생각났다. 왜 그렇게 연상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 말아요 그대>를 갑자기 듣고 싶었다. 음악을 검색하자 작년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필, 곽진언 씨가 다시 부른 버전이 먼저 나왔다. 듣다보니 너무 좋아 한참 따라 흥얼거렸다. 그리고 홀린 듯 전인권 아저씨의 오리지널 넘버를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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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음악이 없는 삶은 되게 지루하다. 너무 평면적이라 그럴 것이다. 길은 길이고, 운전은 그냥 이동이고 카페는 목을 축이는 데고 로또 판매점은 걸리지 않을 종이쪼가리를 파는 곳이며 식사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음악이 거기 끼어들면 입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현상들의 의미가 확장된다.

 

 길은 시가 되고 드라이브는 이벤트가 되며 카페는 이야기와 향기가 되며, 로또 판매점은 꿈을 파는 상점이 되며 식사는 쾌락이 된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세상과 내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음악적 감각이 더해지며 아름답게 쩍 벌어지는 것이다.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니 내 쓸데없는 걱정들 또한 새해부터 마치 사색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로 멋져 보였다.

 나는 아직 베트남이다. 베트맨이면 돈 걱정 안 해서 참 좋겠는데 그냥 베트남이다. 슬슬 여비가 떨어져 가니 걱정이 많다. 내 숙박비 예산(하루 만 원)으로는 정말이지 형편없는 곳뿐이었고 잠을 잘 잔 적이 거의 없다. 하긴 방이 싼데 상태가 좋으면 주인이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도미토리에선 꼭 옆 사람이 코를 골았고, 어떤 방은 습기와 곰팡이 냄새와 벌레가 지배적이라 사람이 거기 끼어 자도 되나 싶었고, 어떤 방은 옆 건물이 나이트클럽이라 새벽 5시까지 쿵쾅거렸고, 또 어떤 방은 창문 앞이 닭 농장이라 울음소리 때문에 잘 수 없었다. 베트남 닭은 깡다구가 상당하다. 울다 말겠지 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목이 쉬어 꼬끼오~ 에서 `끼`가 자꾸 삑사리 나는데도 계속 울었다. 그쯤 되면 끼 부리려고 우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울고 싶고, 울 수밖에 없는, 뭔가 처절하고 지독한 근성이 느껴졌다. 계속 잠을 설친 나도 따라서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어떤 창 없는 캄캄한 방에선 자꾸만 귀신이 나왔는데 내가 베트남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뭐라 그러는지 알 수도 없고, 발음이 웃기기도 해서 그냥 잤다. 공통적으로 모든 침대에서 고린내가 났으며, 베갯잇엔 땀이 배어있고, 허리 부분이 꺼져있거나 매트에 쿠션이 없고,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오거나 하수구 물이 안 내려갔다. 그럼에도 나는 숙박비 예산을 전혀 올리지 않았다.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면 자꾸만 괜찮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라는 가사에는 어쩐지 가스펠송 같은 종교적 위안과 당부가 있다. 그러니까 음악이 있는데 왜 걱정했지? 하면서 풀어지는 것이다. 그래선지 암만 안 좋은 숙소에서도 이어폰을 꽂으면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편하고 좋은 침대에 잘 거면 집에 있지 여행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짧고 굴게 훌륭한 리조트나 근사한 호텔에 묵는 휴양 여행이 아니라 나는 베트남 지도처럼 최대한 가늘고 길게 버티는 중이니 숙소 사정은 신경 꺼야 했다.

 

 그동안 하노이에서 다낭, 호이안을 거쳐 호치민까지 남하했다. 호치민은 수도 하노이에 비해 훨씬 세련된 도시였다. 시내버스 차창이 더러워 거의 반투명이던 하노이와는 달리 이곳은 창이 깨끗해 바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차량이 훨씬 많지만 경적소리도 하노이보다 덜하다. 뭔가 하노이에선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경적을 마구 누른다면 호치민 시민들은 필요한 이유가 있을 때 누르는 편이다. (그 이유가 좀 많긴 하지만.) 그런데 나름 하노이에서 오토바이 퍼레이드 사이로 횡단하는 데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토바이와 차량이 하노이보다 많은 호치민에선 그게 오만이라는 걸 알았다. (얼마 전 아시안컵에서 붙은 오만OMAN 얘기가 아니다.) 도로가 넓고 교통량이 많아 도저히 도로로 발 디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넓은 대로엔 신호등이 있기도 하지만 벤탄 시장에서 로터리를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 했을 때 신호등도 없고, 어휴 이건 내가 건널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건너지 않으면 버스를 탈 수 없다. 타국의 도시에서 시내버스 타는 걸 좋아하는 건 궁상을 떨어 웃기려는 게 아니라 현지 생활에 깊숙이 동화되는 재미가 상당해서다. (라고 쓰지만 엉엉 택시비가 없다 엉엉)

 

 어쨌든 길을 건널 때 오토바이를 피하는 건 쉽다. 차폭이 작아서 피할 수 있는 각도가 크고 서로 리듬만 잘 맞추면 천천히 한 발씩 디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버스나 자동차가 문제다. 차폭이 크고, 피할 수 없을뿐더러, 멈춰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차와 오토바이가 섞여 있고 자기들끼리도 복잡하게 엉키는 로터리에서 관광객 수준의 초보 보행자가 길을 건넌다는 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절망하고 있는데 현지인 한 명이 쓰윽 길을 건넜다.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그는 마치 그곳에 차가 한 대도 없다는 듯 도로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차와 오토바이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고수였다. 그것은 마치 초식이 없는 무공으로 알려진 ‘독고구검’과 흡사했다. 로터리 안쪽으로 갑자기 회전해 온 버스에 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내력을 이용한 ‘허공답보’를 구사한 듯 순식간에 길 건너편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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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흉내 내고 싶었지만 걱정되었다. 택시비를 아낄까, 목숨을 아낄까. 당연히 목숨이 더 아까운 건데 돈도 걱정이고, 아아 그 순간 <걱정 말아요 그대>를 입으로 웅얼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음악이 입체적으로 그 로터리의 카오스를 재구성하는 것을 보았다. 항상 무언가를 소극적으로 걱정하느라 내 인생이 지금까지 진취적인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게다가 위험하긴 해도 어차피 사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며, 희미하긴 해도 바닥에 횡단보도 표시까지 있는데 건널 수 있다는 희한한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나는 전인권 아저씨처럼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걱정 말아요 그대>의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부르며 도로에 한 발을 디뎠다. 오토바이 한 대가 발 앞을 쌩 지나갔지만 오토바이들과 눈을 맞추며 한 칸씩 전진했다. 아, 그런데 갑자기 버스 두 대가 겹쳐 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엔 몸을 옆으로 세울 공간뿐이었다. 두 대가 동시에 경적을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딱 멈췄다. 그럴 때 피하려 하면 더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버스 두 대는 나를 사이에 두고 부르릉 지나갔다. 인간이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 그 순간 생각했다. 그리고 오토바이 5대와 롤스로이스 한 대를 더 피한 뒤 건너편 육지에 상륙했다. 건너고 보니 등에 식은땀이 나 있었고, <걱정 말아요 그대>의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부분을 종교의 기도문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달콤한 성취감이 와르르 밀려왔다. 기어코 해낸 것이다.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법은 거의 없다. 걱정 그만하고 문제 속으로 한 발을 쭉 내디뎌야만 어떻게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더구나 시작이 반이지 않은가. 호치민에서 길을 건넌 뒤 나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헉 그런데 오늘 결론이 너무 교훈적이라 심히 걱정된다. 아아 다시 쓰라고 하면 큰일인데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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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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